연예인, 대기업 회장 등 유명인들의 자동차로 국내에서는 특히 이름이 많이 알려진 자동차다. 판매량은 부가티까진 아니더라도 거의 맞먹는 수준이 아니었나 한다. 한때 세계 3대 명차로 불렸던 ‘마이바흐’ 이야기다.

고급차의 대명사로 어딜 가나 자리를 지키던 브랜드인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지금은 엠블럼과 브랜드 이름만 남은 상황이다. 오늘 오토포스트 스파이샷 플러스는 최근 국내에서 포착된 마이바흐 사진과 함께 마이바흐 몰락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오토포스트 디지털 뉴스팀

포르쉐 카레라 GT
롤스로이스와 마이바흐
2004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이 자동차들은 강남 고급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자동차들로 불렸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2004년 강남 최고가 주상복합 타워팰리스 35평형 가격이 8억 5,000만 원 수준이었고, ‘포르쉐 카레라 GT’는 8억 8,000만 원 정도였다.

‘롤스로이스 팬텀’과 ‘마이바흐’ 역시 포르쉐와 함께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자동차, 혹은 강남 아파트보다 비싼 자동차라 불렸었다. 이 당시 마이바흐는 7억 원 정도를 호가했었다. 공식 판매 두 달 만에 13대가 계약됐었고, 이는 당초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측 예상과 목표치를 훨씬 웃돌았던 것이었다.

(사진=오토포스트)

타워팰리스 가격은 아니지만
그 당시 고급 아파트 가격 정도
얼마 전 강남역 인근에서 포착된 자동차는 마이바흐 플래그십 모델이 아닌 ’57’이었다. 마이바흐 라인업 중에선 엔트리 모델, 보급형 모델로 통하는 자동차다. 마이바흐 라인업 중에서나 저렴한 편이지 다른 자동차들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아파트가 절로 떠오르는 가격이었다. 그 당시 ’57’의 가격은 6억 원 정도였다.

사진 속에 있는 57은 초기형이다. 국내에 마지막으로 정식 출시되었던 모델은 2011년식이다. 2010 베이징 모터쇼를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던 2011년식 57은 5.5리터 V12 바이터보 엔진이 550마력, 91.8kg.m 토크를 발휘했었다.

고성능 모델
벤츠는 AMG
마이바흐는 S
고성능 모델도 있었다. 메르세데스 고성능 모델에는 AMG가 붙고, 마이바흐 고성능 모델에는 ‘S’가 붙었다. ’57S’는 기본 모델보다 1억 원 정도 비싼 7억 원 정도를 호가했었다. 2007년 모델 기준으로 6.0리터 V12 바이터보 엔진이 612마력, 101.9kg.m 토크를 발휘했었다. 제로백 5초, 최고 속도는 275km/h를 기록한다. 공차중량이 2,740kg 임을 감안하면 매우 빠르다.

57S는 기본 모델과 다르게 20인치 스포티 스포크 타입 휠을 장착하고 와이드 머플러를 사용했었다. 프런트 그릴은 57S 전용 디자인이 적용되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마이바흐에 붙는 ‘S’는 고성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Special’의 앞 글자를 따온 것이다.

플래그십 절정에는
제플린이 있었다
’62 제플린’은 전 세계 100대 한정, 우리나라에는 3대 한정 판매되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메르세데스 벤츠와 함께 뛰어난 자동차를 선보였던 디자이너 빌헬름 마이바흐의 최고급 모델 ‘제플린 DS 8’의 혈통을 잇는 모델이다.

2009년 4월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고, ’62S’ 모델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디자인과 성능에서 약간 차이를 보인다. 6.0리터 V12 바이터보 엔진을 품는다. 이 엔진은 640마력, 101.9kg.m 토크를 발휘한다.

보닛 엠블럼 하단과 트렁크에는 제플린 로고가 들어갔고, 붉은색 리어 램프를 일반 모델보다 어둡게 처리하여 고급스러움과 특별함을 강조했다. 내부에는 최고급 자재와 장인 정신이 깃들었다. 캘리포니아 베이지 색상으로 통일되었고, 피아노 블랙과 어린 양가죽으로 만든 카펫이 자리한다.

마이바흐 최초로 다이아몬드 퀼팅 무늬를 시트 쿠션과 허리 받침 부분에 적용하였다. 뒷좌석에는 샴페인 잔을 비롯하여 제플린 로고를 추가해 안락함을 강조하였다.

그 당시 고객 성향과
맞지 않던 마케팅 전략
사치에 가까운 호화로움을 자랑하던 마이바흐가 몰락한 이유,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마케팅 전략이 그 당시 고객 성향과 맞지 않았고, 그에 비해 목표 판매량은 무리수에 가까웠으며, 경쟁 브랜드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느림과 동시에 라인업 수도 적었다.

마이바흐는 연간 2,000대를 판매할 것이라는 목표를 두었었다. 그러나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조차 1년에 겨우 150대를 판매하면서 위기를 맞닥뜨린다. 오늘 소개해드린 내용만 봐도 ‘아파트한 채 값’, ‘3대 한정 판매’등 매우 제한적인 말들이 많은데, 이 역시 독이 되었다.

그 당시 고객들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요즘은 정말 희귀한 자동차들을 보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이러한 자동차들이 더욱 각광받는 시대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자동차 업계 트렌드는 극소수 소비자층만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라인업 부재도 한목 했다. 롤스로이스는 ‘팬텀’뿐 아니라 ‘고스트’, ‘레이스’, ‘던’, 이제는 SUV ‘컬리넌’까지 다양한 모델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벤틀리는 ‘뮬산’, ‘플라잉스퍼’, ‘컨티넨탈’, 그리고 최근에는 SUV ‘벤테이가’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마이바흐는 ’57’과 ’62’ 정도가 전부였다. 이들을 기반으로 제작한 고성능 모델, 스페셜 모델, 렌덜렛 모델 등이 있었지만 이들도 어쨌거나 다른 형태, 다른 차가 아닌 그저 57과 62에 불과했다. 롤스로이스나 벤틀리에 비해 신차 소식도 더뎠을뿐더러 모델 라인업까지 많지 않으니 그들보다 성적이 뒤떨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애스턴 마틴과 교섭 결렬
단독 모델은 역사 속으로
2011년 애스턴마틴과 교섭이 결렬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2011년 가을쯤 독일 다임러 그룹과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애스턴마틴이 계획하고 있던 차기 마이바흐 개발 및 생산과 관련한 협력이 결렬되었다. 당시 외신 보도에 따르면 금전적 문제에서 서로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불발되었다고 한다.

협상이 성사되었다면 애스턴마틴은 SUV 플랫폼을 메르세데스 벤츠로부터 받을 수 있었지만, 이 역시 결렬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브랜드 완전 폐지 설도 돌았었다. 브랜드 자체가 완전히 폐지하진 않고. 오늘날 마이바흐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고급 모델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오토포스트 스파이샷 플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