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무대가 자국(自國) 한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세계를 무대로 삼는 자동차 제조사라면 소속 모델별로 역할이 부여된다. 베스트셀링카는 주로 세단이나 SUV같은 대중적인 모델들이 차지하며, 이들은 회사 매출뿐 아니라 연구개발비 측면에서도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한다.

잘나가는 자동차 제조사는 저마다 기술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편의 사양이나 옵션 정도라면 세단이나 SUV같은 대중적인 베스트셀링카로 충분하겠지만, 이들은 편의 사양이나 옵션을 넘어 힘과 운동성능, 그리고 경쟁자와의 대결에서 대표 주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현대차에겐 제네시스 G70, 그리고 오늘 이야기의 중심인 기아자동차에겐 ‘스팅어’가 대표적일 것이다.

김승현 기자

페이스리프트 한다며?
“판매량 부진해서 2세대는…”
기아차는 “사실무근이다”
뜬금없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미 페이스리프트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퍼졌고, 우리 기사를 통해서도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위장막 테스트 장면을 여럿 내보내드린 바 있다. 매체나 동호회,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소문도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난데없이 ‘스팅어 단종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용을 자세히 보니 이번 페이스리프트 모델과는 관계없는 풀체인지 모델, 즉, 2세대 모델은 등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기아차는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한 것이 수차례인데, 이번엔 어떤 이유로 단종설이 떠오르게 된 것일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번에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건너온 이야기였다. 요약해보자면, 스팅어가 한국 최고의 세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저조한 판매량 때문에 기아차 측에서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고심하고 있다는 것이 외신의 주장이다.

이미 스팅어에 대한 평가는 국내 소비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뛰어났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외신 전문 매체뿐 아니라 제임스 메이 같은 유명한 자동차 저널리스트까지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BMW M3만큼 완벽하진 않지만, 아우디 S4만큼은 발전했다는 것이 제임스 메이의 평가였다.

한결같은 네티즌 반응
“스팅어는 살려둬라!”
이렇듯 국내와 해외에서의 평가가 나쁘지 않고, 브랜드 입장에선 스포티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과시 역할까지 하는 중요한 모델로 자리 잡은 만큼 스팅어 단종설을 접하는 네티즌들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보통 대중적인 모델이 판매량이 부진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스팅어 단종설에 대한 반응은 온도차가 있었다.

“철학이 담긴 모델 하나 정도는 감당 가능한 수준 내에선 갖고 있어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애초에 볼륨 모델도 아니고 브랜드의 상징성 때문에 만드는 거다. 포기할 모델이 아니다”라며 스팅어가 갖는 의미와 존재의 이유를 강조하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팅어나 G70이 존재하는 이유
단순히 판매량과 매출 때문에?
오늘 기사 말머리서부터 언급했듯 세계 시장을 무대로 노리는 자동차 제조사들은 모델마다 역할이 분명하다. 현대차라면 팰리세이드, 아반떼, 투싼과 같은 차들이 세계 시장에서 베스트셀링카이자 연구개발 비용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제네시스 G70이나 현대차 N 모델들은 비용이 아닌 이미지와 기술력 과시 역할을 해야 한다.

기아차로 따지면 K5, 스포티지, 텔루라이드, 유렵 무대까지 생각한다면 해치백 모델들이 베스트셀링카와 더불어 연구개발 비용의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스팅어와 더불어 ‘GT’ 엠블럼을 다는 고성능 라인업은 “기아차는 지루하지 않은 스포티한 차도 만들 수 있다”라는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만약 끊임없이 단종 설을 내놓는 외신들의 근거대로 매출과 이익을 위해 스팅어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기아차는 애초에 스팅어를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차라리 그 개발 비용으로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있는 SUV를 개발하는 것이 더 현명했을 것이다.

스팅어는 돈이 안 된다. 오히려 회사의 돈을 깎아먹는 차일 수도 있다. 흔히 우리가 머릿속에 생각하는 스포츠카, 슈퍼카, 더 나아가 하이퍼카들은 개발비용과 리소스가 대중적인 차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년, 수십 년을 연구개발하여 내놓은 차가 팔 때마다 적자인 경우도 많다. 스팅어는 지금뿐 아니라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요구할 것이다. 단순히 판매량과 매출 때문에 탄생한 차라면 지금이라도 과감히 단종 시키는 것이 맞다.

포드 머스탱, 쉐보레 카마로
토요타 수프라, 혼다 NSX
많은 이들이 스팅어와 G70의 단종을 말리고, 오히려 돈 안되는 스포츠카와 심지어 슈퍼카를 개발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대중적인 브랜드에게 이런 차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이미 세계 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런 상징적인 모델을 적어도 하나씩 갖고 있다.

픽업트럭, SUV가 잘나가는 포드는 머슬카의 상징 ‘머스탱’을 만든 회사이기도 하다. 머스탱은 전 세계인들에게 머슬카의 상징으로 불린다. 간혹 경쟁 모델에게 뒤처지는 모습이 있어도 “어쨌든 머슬카는 머스탱”이라는 이미지의 힘이 크다. 머스탱뿐 아니라 미드십 슈퍼카 ‘GT’도 있다. 1969년 르망 24 내구 레이스에서 전설적으로 활약했던 ‘GT Mk.1’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미드십 슈퍼카로, 2015년에 2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한국에선 ‘말리부’와 ‘트래버스’같은 세단, SUV를 파는 대중적인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지만 머슬카 ‘카마로’, 슈퍼카로 발전한 ‘콜벳’이 쉐보레의 대표적인 기술력 과시용 차들이기도 하다. 카마로는 머스탱과 함께 머슬카 양대 산맥으로 불리고, 콜벳은 머슬카의 아이콘이었다가 최근에는 가성비 갑 슈퍼카로 불리기 시작했다.

더 대중적인 일본 차 브랜드들도 저마다 스포티한 차를 가지고 있다. 토요타는 최근 ‘수프라’를 부활시켰고, 혼다는 몇 년 전 ‘NSX’를 하이브리드 슈퍼카로 부활시켰다. 이들이 부활하기 전에도 토요타는 ’86’, 혼다는 ‘시빅 타입 R’같은 대중적인 스포츠카를 계속해서 생산해왔다. 이들 모두 회사 입장에서 돈이 되는 차들은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모델로 여겨지며, 제조사의 역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판매량 견인은 그랜저
팰리세이드 같은
대중적인 차들의 역할
스팅어를 비롯한 현대기아차에서 내놓은 스포티한 성격 강한 차들의 단종을 말리는 이들. 거의 대부분 그 차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단종을 말리곤 한다. 자동차 제조사 모델들의 역할은 간단하다. 현대기아차에서 판매량 견인은 그랜저나 팰리세이드 같은 대중적인 차들이 도맡으면 된다.

이들의 높은 판매 실적은 기업 입장에서 좋은 마케팅 수단, 예컨대 “역대급 판매량”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높은 판매 실적은 높은 매출로 이어지고, 높은 매출은 곧 회사의 내부적, 외부적 발전뿐 아니라 신차 개발 비용으로도 이어진다.

스팅어나 G70, 향후 나올
미드십 스포츠카의 존재 이유
브랜드 정체성과 기술력 과시
위에 언급한 팰리세이드나 그랜저가 끌어올린 매출은 스팅어나 G70 같은 스포츠 성격 짙은 차들의 개발 비용에 도움을 준다. 단순히 마력이나 토크 같은 수치적인 제원만 앞서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성능 차들은 얼마나 더 빠른지, 얼마나 더 민첩한지, 얼마나 더 효율적인지, 얼마나 더 안전한지를 따지는 예민하고도 고도의 설계가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스팅어나 G70은 지금 이 상황에서 “현대기아차도 이런 차를 만들 수 있구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세대를 넘어 3세대가 나올 때쯤이면 그 분야의 정석이라 불리는 차들, 예컨대 BMW M3 같은 차들과 나란히 비교하는 리뷰가 전 세계에 전파를 탈 것이다. 탑기어나 모터트랜드같은 영향력 있는 매체들이 한국에서 M3와 견줄만한 차들을 만들었다는데 무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꾸준하고도 예민한 설계 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는 과감한 모험과 손해도 포함되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일단 지금 상황만 놓고 보았을 때 현대차가 잡은 방향은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최근 알려졌듯 미드십 스포츠카 양산이 가시화되어 큰 이변이 없다면 올해 처음 공개가 될 예정이다. N 브랜드의 라인업 중 하나로 출시 예정인 미드십 스포츠카는 N 브랜드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RM19와 동일한 차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미드십 스포츠카의 출시가 임박했을 때, 혹은 출시 후 몇 개월이 지난 뒤 “판매량 저조하여 단종 계획”과 같은 기사 타이틀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스팅어를 비롯한 차들의 단종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 분야에서 현대기아차가 도드라지지 않았던 탓도 없지 않다.

보통 단종설은 외신에서…
판매량보단 마니아층 공략해야
단종설은 보통 외신에서 많이 들려온다. 국내에서 단종설이 처음 들린 적은 거의 없다. 이번 스팅어 단종설 역시 외신에서부터 들려온 소식이자 추측이다. 이들의 말에도 아예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도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종설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은 간단하다. 현대기아차가 스팅어나 G70 같은 차들은 판매량과 매출을 위한 차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주면 된다. 마치 스팅어가 나오기 전 제로백과 뉘르부르크링 관련 티저를 공개했던 것처럼 이들에겐 그 역할에 맞는 마케팅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주면 된다. 세대교체나 부분변경, 혹은 연식변경 보도자료에서 스팅어나 G70만큼은 얼마나 옵션과 장비가 풍부해졌느냐가 아닌 얼마나 더 잘 달리고, 얼마나 더 민첩하고, 얼마나 더 운동성능이 개선되었는지를 강조하는 내용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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