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타임포럼 ‘moon5’ 님)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 ‘그 시절 부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현대 그랜저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자동차다. 성공한 사람이 타는 차가 가장 많이 팔린다니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거 같기도 하지만 이제는 쏘나타를 제치고 국민차라고 불릴 정도가 되었다.

제네시스라는 상위 브랜드가 생기면서 현재 판매되는 그랜저는 예전만큼의 위용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지만 1세대 그랜저가 출시될 당시엔 정말로 아무나 탈 수 없는 고급차였다. 차량 가격만 집 한 채 값에 가까워 그랜저를 타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부자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때 그 시절 그랜저는 얼마나 대단한 자동차였을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현대 각그랜저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박준영 기자

2020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현재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는 현대 그랜저는 6세대 IG 모델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으로 매달 국산차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워낙 인기가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랜저를 타다 보니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라고 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그랜저는 아무나 쉽게 탈 수 있는 자동차가 아니다.

가장 저렴한 모델도 취등록세를 포함한 실구매가격은 3천만 원대 중반이며 최고 사양은 5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직장인이 자동차에 이 정도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사실은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지금의 그랜저는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면 도전해 볼 수 있는 자동차이지만 약 30년 전인 1986년 등장한 1세대 그랜저는 출시될 당시 정말 부자가 아니라면 구매할 수 없는 고급차였다. 현시점에서 비교해보면 벤츠 S클래스와 맞먹는 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쯔비시와 공동 개발하여 만들어낸 현대 1세대 그랜저는 당시 판매하던 그라나다가 끝물이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새로운 고급차를 출시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온갖 첨단 사양들을 대거 탑재하고 집한채에 가까운 가격을 자랑했던 그랜저는 분명 지금 판매되는 그랜저와는 다른 위상을 자랑했다.

(사진=보배드림 ‘신사적인자동차’ 님)

MPI 엔진부터
ECS 서스펜션까지
당시 판매되던 1세대 그랜저는 수입차에도 대응할 수 있는 고급차였다. 국산차 최초로 컴퓨터 조절 오토 에어컨, 풀 플랫 시트, 4륜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브레이크, 수퍼 발란스 서스펜션, 풀도어가 적용되었고, 당시 고급차로써 활약했던 대우 로얄살롱 슈퍼를 단숨에 밀어내고 국내 대형차 시장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1세대 그랜저가 절정을 찍었던 89년 9월에는 최대출력 164마력을 발휘하는 V6 3.0리터 엔진을 적용한 모델도 출시하여 최고급 세단으로써의 명성을 이어갔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국산차에서도 볼 수 없는 에어 스프링 서스펜션 ECS를 장착했다는 점이 놀랍다.

(사진=보배드림 ‘신사적인자동차’ 님)

당시 그랜저는 당당하게 국산 최고급 자동차로 인식되었으며 사회 상류층에 불만이 많았던 범죄조직 지존파는 “그랜저 타는 놈들을 다 잡아 죽이려 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가격도 일반인이 넘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90년 당시 2.0 5단 수동 변속기를 장착한 기본 모델이 1,790만 원, 4단 자동 변속기를 장착한 모델이 1,890만 원이었다.

상위 등급인 2.4는 2,220만 원이었으며 최상위 등급인 V6 3.0은 2,930만 원이었다. 당시 판매되던 1988년식 쏘나타가 906만 원에서 1,206만 원에 판매되었으니 그랜저 풀옵션은 쏘나타의 세대 값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출시되는 고급차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사양
1세대 각그랜저에 이어 1992년 등장한 2세대 그랜저 LX는 고급차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보닛과 트렁크가 일자로 쭉 뻗어 90년대 고급차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2세대 그랜저 역시 미쯔비시와 공동 개발하여 일본에서는 데보네어로 판매되었다.

첫 출시 땐 2.0과 2.4 시리우스 엔진과 고급차의 상징과도 같았든 V6 3.0 엔진을 탑재하여 판매하였으며 추후 최상위 트림인 V6 3.5리터 엔진을 장착한 모델도 출시하였다. 3.5 모델은 후방 엠블럼이 금색으로 되어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2세대 그랜저 역시 국산차 최초로 장착된 여러 가지 화려한 편의 장비들이 존재했다. 에어백과 열선시트, 쿨링 박스, 초음파를 통해 미리 감쇄력을 조절하는 첨단 제어 ECS 서스펜션, 뒷좌석 이지 액세스도 적용되어 요즘 출시되는 고급차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사양들이 대거 탑재되었다.

ECS 서스펜션과 쿨링 박스 같은 사양들은 2020년 현재 출시되는 그랜저에서도 볼 수 없는 사양이다. 현대차가 그랜저를 제대로 된 최상위 플래그십 고급차로 판매했던 것은 바로 이 2세대 그랜저까지였다. 1996년 5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다이너스티가 출시되며 그랜저의 운명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다이너스티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현대의 새로운 플래그십 세단은 2세대 그랜저 차체를 활용하여 만들었기에 동일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었으며 범퍼와 부분적인 디자인이 바뀌고 더 고급스러운 첨단 사양들이 대거 탑재되었다.

에쿠스가 등장하기 전까진 다이너스티가 현대의 최고급 세단 역할을 착실히 수행했다. 그 시절에도 2세대 그랜저는 계속 판매되었으며 다이너스티와의 판매간섭을 피하기 위해 V6 3.5 엔진을 장착한 최고급형 모델을 단종시켰다. 같은 차체를 사용했지만 서로 달랐던 그랜저와 다이너스티는 르노삼성 SM5와 SM7, 현대 HG 그랜저와 아슬란의 관계와 동일한 운명이었다.

마르샤가 성공했다면
그랜저는 사라졌을 수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최고급 세단 역할을 하던 그랜저는 다이너스티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 점차 판매량도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후속 모델이 없이 단종될 위기에 처했다. 현대차는 미쯔비시와 공동으로 개발한 에쿠스를 출시하며 쏘나타와 에쿠스 사이를 메꾸어줄 마르샤를 개발했으나 이는 처참히 실패했고 그 자리를 대신할 고급차가 필요했다.

당시 마르샤를 대체할만한 마땅한 차가 없었고 그렇게 현대차는 고급차로써 명성을 이어온 그랜저의 이름을 계승해 나가기로 결정한다. 3세대 그랜저인 XG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랜저가 현대 플래그십 세단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보단 조금 젊어진 디자인을 가졌었으며 당시 국산차에선 보기 힘들었던 프레임리스 도어를 장착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랜저라는 플래그십 세단으로써의 상징성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랜저를 고급차로 인정해 주었으며 소퍼드리븐보다는 오너드리븐 성향의 고급차로 변화한 그랜저 XG는 결국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그랜저 XG의 성공 요인은 중형차와의 완벽한 차별화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랜저는 전 트림에 V6 6기통 엔진 장착, 플래그십에 준하는 다양한 편의 장비의 대거 탑재를 통해 차별화를 이루어냈다. 그렇게 그랜저는 조금 젊어졌으며 ‘국내 최고급 세단’에서 ‘성공한 중산층의 상징’ 이미지가 되었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잘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XG로 대박 행진을 이어간 그랜저는 2005년 NF 쏘나타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TG 그랜저를 출시하며 4세대를 맞이한다. TG 그랜저는 XG보다 조금 더 커진 차체와 고급스러운 주행 질감으로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NF 쏘나타와 비슷했던 무난한 디자인은 호불호가 꽤 갈려 고급차로써는 조금 아쉽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랜저 TG는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라는 전설의 광고를 만들어내어 오랜 기간이 지나도 회자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자동차’라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었다.

그랜저의 네임밸류는 후속 모델인 5세대 그랜저 HG, 6세대 그랜저 IG에서도 그대로 통했고 최근 페이스리프트를 맞이한 더 뉴 그랜저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생기며 다시금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그랜저는 여전히 건재하며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성공의 보증수표 이미지를 이어갈 전망이다. 예전에 비하면 포스가 많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일반인 기준에서 그랜저는 절대 만만한 차가 아니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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