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불러일으키며 과거 모델을 언급하는 콘텐츠들은 조회수가 높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최근 뉴트로 디자인이 대세인 이유이다.

추억의 국산차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대표 모델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무쏘, 에스페로, 코란도, 체어맨 같이 90년대를 풍미했던 모델들이 자주 언급된다. 더 과거로 내려가면 대우 로얄살롱, 현대 그라나다, 신진 크라운 등이 언급된다. 지금처럼 극단적인 브랜드 훌리건이 없던 시절이다. 이 자동차들을 기억하고 아버지 어깨너머로 위 모델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별다른 논쟁 없이 미소와 함께 이 시대를 회상한다.

Joseph Park 수습기자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를
왕복한 무쏘

현대 갤로퍼와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는 국산 SUV라고 불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출시되어 2005년까지 생산된 사륜구동 SUV이다. 13년간 25만 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몇 안되는 순우리말 이름의 자동차이기도 하다.

일본 기업에서 기술을 받아오던 현대기아차와는 달리 쌍용은 벤츠와 손을 잡았다. 1994년 초반 생산분까지는 심지어 엔진 헤드에 삼각별 로고와 메르세데스 벤츠 레터링까지 새겨져있었다.

국산 4WD 차량 중 처음으로 ABS가 적용되었고 전자식 4WD 전환 스위치 또한 국내 최초였다. 경쟁 차종이었던 갤로퍼는 2H, 4H, 4L 전환을 위해 주행중인 차량을 멈췄어야 했다. 엔진 내구성 또한 뛰어나서 한국도로공사에서 무쏘를 가지고 누적 88만 킬로를 달렸다.

엔진 보링 없이 80만 km 이상 달린 무쏘가 한대가 아닌 10대 이상이라고 하니 당시 벤츠 엔진의 내구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달과 지구의 거리는 38만 km로, 달과 지구를 왕복한 것과 다름없다.

타도 쏘나타
대우 에스페로

대우자동차에서 1986년부터 1990년까지 약 4년간 자체 개발한 모델이다. 현대차 고유모델이 포니라면 대우에는 에스페로가 있었다. 타도 쏘나타를 외치며 출시된 에스페로는 이탈리아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루포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담당하였다.

중형급으로 설계된 세단으로 출시되었다. 그런데 대우의 진정한 주력 모델이었던 로얄 프린스의 풀체인지 모델이었던 프린스와 판매량이 양분화되며 의도치 않게 팀킬을 한 모델이기도 하다. 1997년 후속 차종 누비라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8년 수출 물량 단종까지 총 52만 대가 팔린 모델이다.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현대 스텔라

현재 쏘나타의 백부 격인 모델이다. 현대자동차의 후륜구동 중형 세단이다. 당시 1세대 쏘나타가 있긴 했지만 결국 스텔라의 차체를 그대로 공유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기존 승용차에 비해 넓은 공간과 편의 장비를 내세워 꾸준히 팔려나갔으며 현대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모델이다.

200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국산 세단형 승용차 중에서 최장수 모델로 기록되었으며 2008년 제네시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현대차가 생산한 최후의 후륜구동 세단이었다. 직선을 강조한 미니멀리즘 철학이 돋보이는 모델로서 웨지(Wedge, 쐐기) 형태의 디자인을 통해 세련된 느낌과 연비 향상을 도모했다. 포니도 디자인했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을 맡았다.

과거 자동차 모델들을 다루는 콘텐츠를 읽다 보면 댓글에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 디자인보다 예쁘다”, “리스토어 해서 타고 다니고 싶을 정도이다”라는 댓글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점점 사나워지고 날카로워지며 필요 이상으로 화려해지는 최근 자동차 디자인보다 담백하며 미니멀한 80-90년대 자동차 디자인이 그립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의 주관이 십분 반영된 의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당시 자동차 디자인이 별로라는 말도 아니다. 가뜩이나 최근 뉴트로 디자인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기하학적 조형미를 강조하며 미니멀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예전 모델들의 디자인들이 새롭게 보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촌스러워 보이기만 했던 과거 모델들이 다시 재평가 받는다. 원래 유행은 돌고 돈다.

뉴트로
디자인

앞서 언급하였듯이 현재 자동차 디자인은 뉴트로 열풍이다. 최근 출시된 포드의 브롱코가 좋은 평가를 받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피아트 500, 포드 머스탱, 도요타 FJ 크루저 메르세데스 벤츠 SLS AMG 등 제조사들은 여러 모델들이 복고풍 디자인을 현대적인 감각과 기술로 재해석하는 뉴트로 디자인을 꾸준히 해왔다.

관련 기술의 급진적인 성장과 스타일링의 변화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요즘 인간 감성을 자극하며 과거의 문화와 자신과의 연결을 회복하는 의미에서 레트로 디자인은 현대적 감각으로 재창조 되고 있다. 이는 향후 미래 디자인 영역을 확장시킬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로 지금은 완전히 자리 잡았다.

80-90년대 자동차 디자인은 과도기이다. 70년대 발생한 두차례의 오일쇼크로 인해 사람들은 연비 개선에 힘썼고 불필요한 장식 요소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차량들이 주를 이루며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이로 인해 곡선의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들이 하나둘 적용되기 시작했지만 70년대부터 이어져온 직선 위주의 디자인 트렌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과도기적 시기였다. 1세대 쏘나타부터 3세대 쏘나타의 외관 디자인을 보면 이해가 쉽다.

한국 자동차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탈리아 디자인

그런데 이시대 국산 자동차 디자인을 이야기하다보면 이탈리아인들의 이름이 자주 언급된다. 앞서 언급한 무쏘는 영국에서 디자인 되었지만 조르제토 주지아로와 쌍용의 협업은 렉스턴과 코란도 C가 출시된 2011년까지 이어졌으며 에스페로와 스텔라 모두 이탈리아에서 디자인 되었다.

이 당시 대한민국 자동차 디자인에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나라는 가장 가까운 일본이 아닌 유럽의 반도, 이탈리아였다. 20세기를 대표하며 전 세계 200대 이상의 차량을 디자인한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이탈디자인, 이탈리아 디자인 전문 스튜디오, 그루포 베르토네 등 이탈리아 회사가 디자인한 감각적인 디자인이 8,90년대 한국 자동차 산업에 녹아들었다.

그루포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맡았던 대우 에스페로는 C 필러까지 유리로 둘러싸인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직선적이면서도 쐐기 형태 차체와 C 필러까지 연장된 유리창 디자인과 노 그릴(no grill) 등 감각적인 당시 이탈리아 디자인은 최근 출시되는 전기 파워트레인 기반 콘셉트 모델과 여러 상용차에서 디테일만 달리할 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혁신적인 디자인들이 많았던 시절이였다.

이탈리아 디자인은 국산 자동차 디자인에 꾸준히 기여하며 자동차의 본고장 유럽의 기술과 조형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모던하지만 감각적이며 혁신적이였던 그시대 자동차 디자인이 최근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다시 한번 각광받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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