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쓰던 바가지가 깨져서 그 사이로 물이 줄줄 샌다. 그 바가지를 들에 가져간다고 해서 물이 새지 않을까? 집에서나 밖에서나 물이 새는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라는 속담의 내용이다. 흔히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로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속담이다.

최근 텔루라이드가 처한 상황을 보면 딱 이 속담이 떠오른다. 북미에서 집단 소송에 휘말린 것이다. 소송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니 역시 옛말은 틀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식을 접한 국내 소비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라는 반응이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기아차 텔루라이드가 처한 최악의 상황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이원섭 에디터

“없어서 못 판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기아차

당초 텔루라이드는 “없어서 못 판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차였다. 기아차의 북미 전용 모델로 작년에 출시된 이후 매월 5,000대 정도가 꾸준히 팔렸다. 이는 기아차가 예상한 판매량을 훨씬 앞서는 수치였다. 이후 텔루라이드는 줄곧 품귀현상을 겪어왔다.

정통 SUV 같은 듬직한 디자인과 뛰어난 가성비로 다양한 상을 받기도 했다. 2020 북미 올해의 자동차, 모터트렌드 주관 2020 올해의 SUV에 선정되더니 국산차 최초로 세계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만큼 많은 소비자들이 인정한 좋은 차라는 의미였다.

코로나 감염병 타격 있었지만
회복세에 접어들 전망이었다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 감염병의 여파로 판매량이 살짝 주춤했다.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에서 코로나 감염병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텔루라이드가 생산되는 기아차 조지아 공장도 가동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기아차 조지아 공장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하게 되면서 생산량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이로 인해 매월 5,000대 정도였던 텔루라이드의 판매량은 월간 3,000대 정도로 줄어버렸다. 심지어 지난 5월에는 2,500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기아차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7월부터 판매량이 회복되더니 8월에는 7,500대 정도로 크게 올랐다. 노동자들과 증산에도 합의하면서 하반기에도 좋은 판매량을 보일 전망이었다.

(사진=Kia Telluride Forum)

스톤칩으로 인한 충격에도
앞 유리에 균열이 생긴다?

스톤칩이란 작은 돌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차량에 상처가 생기는 현상이다. 최근 텔루라이드가 집단 소송에 휘말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스톤칩으로 인한 충격에도 앞 유리에 균열이 생긴다” 작년부터 일부 텔루라이드 차주들로부터 나온 불만의 내용이다. 이 불만이 이후 집단 소송을 야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집단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은 “설계 또는 제조상의 문제로 텔루라이드 앞 유리에 결함이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관련 내용에 대해 여러 번 불만을 제기했지만 기아차는 리콜 대신 외부 원인으로 책임을 떠넘겼다”라고 밝혔다. 쉽게 말하자면 앞 유리에 결함이 있는데도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는 것이다.

“외부 원인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이어지는 북미 소비자들의 증언

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텔루라이드를 구매한 한 차주는 아무런 충격이 없었음에도 앞 유리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차주는 리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기아차가 특정 차주들에게 우편을 보냈다는 것이었다. 우편에는 앞 유리에 균열이 생긴 경우 교환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 발견한 차주는 우편을 받지 못했다. 우편 발송이 끝난 이후 차량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이후 앞 유리 수리를 위해 기아차 서비스 센터를 찾은 차주는 “무상 교환이 불가하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심지어 “유상으로 처리하더라도 재고가 없어 교환이 불가하다”라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교환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겪은 차주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작년부터 꾸준히 관련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기아차에서는 적절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비자들이 하나로 뭉쳐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북미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차별적 보상이 아닌 공식적 리콜”

집단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다. ‘차별적 보상이 아닌 공식적인 리콜’이다. 차주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듯이 기아차는 ‘도의적인 차원’에서 일부 텔루라이드의 앞 유리를 무상으로 교환해 줄 뿐이었다. 공식적으로 외부 손상으로 인한 앞 유리 균열은 무상 교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번 집단 소송에서 소비자들이 ‘공식적인 리콜’을 원하고 있는 만큼 기아차는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승소하더라도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패소할 경우 리콜로 인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필 텔루라이드가 좋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던 중이라 더욱 안타까운 상황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북미에서도 저 모양이니 국내에서는?”

관련 소식을 접한 국내 소비자들은 “예상된 일이었다”라는 반응이다. 가장 대표적인 반응이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것이다. 한 소비자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하는 짓을 까다로운 북미 소비자들에게 하니 당연히 소송에 휘말리는 거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북미에서도 저 모양이니 국내에서는 얼마나 심한 거냐”라는 반응도 있었다. 소비자 보호법이 강력한 북미에서도 기아차의 태도가 부적절하니 소비자 보호법이 약한 국내에서는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는 것이다. 텔루라이드의 집단 소송 소식은 국내 소비자들의 걱정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북미 시장의 가장 큰 차이
“제조사가 증명해야 한다”

북미 시장과 국내 시장의 차이점을 꼬집은 소비자들도 있었다. “국내에서 하는 짓을 북미에서 하면 정말로 큰 타격을 입는다”라는 것이다. 북미의 소비자 보호법은 대부분 결함 여부 증명에 대한 책임을 제조사에게 물린다. 즉, 제조사가 직접 결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 소비자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보면 한국은 반대인 것 같다. 결함이 발생하면 제조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소비자가 직접 나서서 결함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보상이 이뤄지는데 이 보상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결함 해결을 포기한 이유다.

북미에서 기아차를 떨게 만든 것은
강한 법안일까, 소비자들의 힘일까?

이쯤 되니 북미에서 기아차를 궁지로 몰아넣은 게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누군가는 “강한 법안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소비자들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것이 먼저 앞서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다만, 확실한 것은 법안은 소비자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소비자들은 법안을 바꿀 수 있다. 북미에서 기아차를 벌벌 떨게 만든 것은 강한 법안과 강한 소비자들이 하나로 뭉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안이 변화하지 않으니 누가 먼저 움직여야 할까? 정답은 이미 말씀드린 것 같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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