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년 전, ‘쉐보레 말리부’는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출시됐다. 당시 동급 최대 길이의 차체와 휠베이스, 준수한 디자인과 넓은 승차 공간, 현대기아차보다 강조된 안전성 등 여러 가지 매력 포인트와 함께 말이다.

쉐보레는 ‘말리부’를, 르노삼성은 ‘SM6’를 내놓음에 따라 국산 중형 세단 시장의 열기가 더욱 뜨거웠었고, 이들의 적극적인 행보 덕에 소비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현대차는 예정보다 훨씬 일찍, 다소 무리하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빠르게 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 ‘뉴 라이즈’를 내놓기도 했다.그러나 SM6와 말리부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말리부가 그러했다. 지난 3년간의 국산 중형 세단 점유율을 살펴보자. 말리부의 출시가 2016년 4월 말이었기 때문에 2016년 통계 기간은 5월부터 12월로 잡았다.

쏘나타는 뉴 라이즈 출시 당시 디자인 호불호가 극명히 갈렸지만, 택시와 렌터카 등의 수요 견인으로 지난 3년간 국산 중형 세단 점유율 변동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반면 SM6와 말리부는 3년간 꾸준히 하락세를 보였고, 말리부는 특히 제네시스 G70의 8.0%보다 낮은 6.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지난 3년간의 판매 실적도 간단히 살펴보자. 쏘나타는 앞서 언급했듯 택시와 렌터카의 수요가 큰 견인 역할을 했다. 쏘나타는 점유율 자체에는 변동이 크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판매 대수는 하락했다. 2016년에는 불과 7개월 만에 5만 대 넘는 판매 실적을 기록했지만 2017년에는 1년간 6만 2,109대를 기록했다.

SM6는 2016년에 4만 5,195대, 2017년에는 3만 9,389대를 판매했고, 2018년에는 판매 격차가 쏘나타와 크게 벌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말리부 역시 지난 3년간 계속 하락세를 보이며 올해에는 4개월간 4,122대를 판매하는 것에 그쳤다. SM6와 말리부는 같은 듯 다른 판매 동향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말리부의 인기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상대적으로 더딘 변화의 움직임

이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소비자들은 자주, 그리고 빨리 바뀌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자동차는 더욱 그렇다. 현대기아차는 분명 다양한 품질 이슈를 갖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입맛(빠른 변화)을 알고 있기 때문에 높은 점유율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식품 첨가제가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기 때문에 쉽게 끊지 못하고 오히려 더 찾게 되는 현상과 비슷하다.

말리부에 당장 맞서기 위해 현대차는 예정보다 훨씬 빨리 쏘나타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았다. 이러한 움직임에 비하면 한국 시장에서의 쉐보레는 변화에 둔감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변화가 없진 않았다. 그러나 한국 소비자들 입맛에 맞지 않는 변화였기 때문에 외면당했다. ‘쉐보레 블랙 에디션’은 인터넷상에서 조롱 대상이 된지 오래다. 말리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8월에 쉐보레는 블랙 외장 컬러와 블랙 전후면 엠블럼, 그리고 19인치 딥 블랙 알로이 휠을 적용한 말리부에 ‘퍼펙트 블랙 에디션’이라는 이름을 달아 시장에 내놓았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최근엔 말리부 페이스리프트 소식이 북미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한국 시장에 도입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지금껏 그래왔듯 아마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들어올 때쯤이면 현대자동차는 이미 다른 모델을 준비 중에 있을 것이다.

둘째, 시장 요구와 다른 그들의 움직임

현대기아차에게 엔진 결함, 품질 이슈 등이 끊이지 않았다면 쉐보레에겐 변속기 이슈가 끊이질 않았다. 일명 ‘보령 미션’으로 불리는 6단 변속기 이슈 말이다. 이 변속기가 북미 사양에도 탑재된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2016년 5월, 2017년형 말리부에 GM과 포드가 공동 개발한 9단 자동변속기가 최초로 적용된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다. 북미에서 최상위 트림인 2017년형 ‘Premier’ 모델부터 적용됐고, 2016년형은 아이신 8단 자동변속기가 적용되고 있었다. 당시 이 변속기는 말리부를 시작으로 크루즈, 이쿼녹스 등에도 적용될 계획이었다.

새로운 변속기는 동력 전달 효율성과 정숙성이 개선됐고, 연비 향상 효과도 있다고 GM은 설명했다. 국내 소비자들은 북미에서 들려온 소식에 한국에서도 새로운 변속기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GM은 “국내에 9단 변속기 도입 계획은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사진=News1, 편집=오토포스트)

새로운 변속기가 공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에 판매되는 차량들에는 6단 변속기가 적용되고 있다. 당시 한국 GM 관계자는 “9단 변속기는 당분간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할 계획이며, 주력은 여전히 6단 변속기”라고 설명했다.셋째, 한국GM 사태로 인한
사회적 인식 변화

올해 초에 벌어진 한국GM 군산 공장 폐쇄 사태도 한몫했다. 지난 2월 군상 공장 폐쇄로 불거진 한국GM 사태는 정부와 GM이 71억 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7조 7,000억 원 투입을 확정하며 3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일각에선 여전히 미래차 생산 계획이 확정되지 못하고 있고, 본사의 고금리 대출, 및 높은 거래가격을 완전히 해소하지도 못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GM은 지난 몇 년간 극심한 적자에 시달렸다.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로는 한국에 주둔하는 미국 본사 임원들의 고액 연봉이 꼽힌다. 일각에선 군산 공장을 기준으로 고위 임원들의 연봉이 전체 임금 3분의 1 이상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 외에 ▲둘째, 미국 GM 본사에 지불하는 대출 이자액, ▲셋째, 비정상적인 부품 원가 및 매출 가격이 꼽힌다.

최근 군산 공장의 가동률은 20% 안팎에 불과했다. 크루즈, 올란도 등 판매량이 적은 차량들만 군산 공장에 배정됐기 때문이다. (1) 수출 감소가 자연스럽게 (2) 공장 가동률 감소로 이어졌고, 이것이 (3) 생산성 감소로 이어지면서 적자가 계속됐던 것이다. 근시안적(近視眼的)으로 행동했던 노조의 문제도 있었지만, 단순히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엔 한국GM의 적자가 심각했다.

일각에선 미국 GM이 상황을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놓고 일명 ‘먹튀’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다. 근거 있는 주장이다. 2018년 2월 21일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한국 GM 사태에 대해 돈은 결국 아무런 발언권도 없는 한국 납세자들만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며 GM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GM은 예전부터 ‘생산 시설의 유연성’을 명목으로 이러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손해가 날 것 같으면 해당 지역의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거나 자산 매각 후 철수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어떤 선택이든 GM 에겐 손해가 없다. 우리나라에선 전자(前者)가 먹혀들어갔다.군산 공장의 생산율 저하가 불가피했던 것인지, 본사의 고의적인 행동이었는지는 정부 차원에서 조사를 해봐야 할 문제다. GM은 한국 정부로부터 최대한 지원을 받으려 하는 움직임을 이전부터 보여왔고, 결국엔 그들의 의도대로 결과가 나오게됐다. GM은 2008년 금융 위기 때도 지원금 협상에 성공한 협상의 귀재로 불린다.

‘한국 GM 공장 폐쇄는 절대 없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대기업의 강탈 법칙’에 휘말리게 된다. 우리가 강탈 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 과제를 정부가 원칙대로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였고, 이 과정을 지켜본 소비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는 고스란히 쉐보레 판매량에 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