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은 전통적으로 세단이 강세였다. 최근엔 SUV가 대세로 떠오르며 어느 정도 수요가 분산됐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SUV도, 미니밴도 아닌 세단이다. 그런데 세단의 인기를 감안하더라도 유독 눈에 띄는 판매량을 자랑하는 차가 있었으니, 오늘의 주인공인 현대 그랜저다.

그랜저는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뒤 판매량이 급증했는데 출시 당시 분위기는 역대 최악의 그랜저가 될 것 같았다.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혹평이 대부분이었으며, 기존 모델보다 오른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발도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랜저는 보란 듯이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대체 그랜저는 왜 이렇게 잘 팔리는 걸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특징과 그랜저가 잘 팔리는 이유에 대해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박준영 에디터

오래전부터 한국 자동차 시장은
왜건, 해치백의 무덤이었다
오래전부터 한국 자동차 시장은 왜건, 해치백의 무덤으로 불렸다. 그만큼 인기가 없었다는 뜻이다. 국산차뿐만 아니라 수입차 브랜드들도 다양한 왜건과 해치백을 출시했지만, 결말은 대부분 쓸쓸한 퇴장으로 마무리됐다.

현대차는 유럽 전략형으로 개발한 I40 왜건을 한국 시장에도 출시했는데, 초반엔 실용적인 왜건이 등장했다며 괜찮은 판매량을 기록하는가 싶더니, 얼마 가지 못해 월 판매량 9대를 기록하는 등 저조한 성적을 유지했다. 결국 I40 왜건은 쓸쓸하게 단종 수순을 밟았다.

르노삼성이 출시한 해치백 클리오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 시장에선 3년 연속 소형차 판매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상품성이나 성능이 정평 난 차였지만, 해치백이 인기를 끌지 못하는 국내 시장에선 모든 기록들이 무용지물이었다.

클리오 역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도로에서 보기 매우 어려운 차가 되었으며, 결국 단종되고 말았다. 현대 I30 역시 상품성과 성능이 뛰어난 해치백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국내에서의 판매량은 매우 저조하다.

세단의 편안한 승차감,
SUV의 공간 활용성 등
모든 걸 갖춘 왜건이 왜 안 팔릴까?
왜건은 일반적인 세단에서 트렁크 부분을 루프까지 확장한 자동차다. 덕분에 실내 탑승 공간과 트렁크가 넓어지고, SUV처럼 탑승 공간과 트렁크의 경계도 없어진다. 세단을 베이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안정적인 승차감과 주행성능, 거기에 SUV의 실용성까지 두루 갖춘 자동차인 것이다.

상품성만 본다면 왜건은 안 팔릴 수가 없는 차다. 세단과 SUV의 장점을 모두 갖추어 놓은 훌륭한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에선 어떤 왜건이 출시되어도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해외에선 상품성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았음과 동시에,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여건을 모두 갖춘 왜건이 왜 이렇게 안 팔리는 걸까?

“가끔 신발처럼 보이기도 해”
한국인의 취향에는
맞지 않는 왜건 디자인
국내 시장에서 왜건이 안 팔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디자인이다. 세단의 뒤쪽을 쭉 늘려놓은 외모를 가진 왜건 디자인은 확실히 한국인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한 네티즌은 “왜건 디자인은 가끔 신발처럼 보인다”라며 디자인에 대한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이 부분은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왜건 종류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눈에 익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도로에서 왜건을 만나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한국 실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류의 왜건들이 도로 위를 활보한다면 이를 바라보는 소비자들 역시 여기에 익숙해질 수도 있다.

“못생겼는데 가격도 비싸”
발목을 잡는 세단보다 비싼 가격
두 번째는 가격이다. 애초에 디자인이 못생겼다고 지적받는 차가 세단보다 더 비싸니 잘 팔릴 수가 없다. 대표적으론 BMW 3시리즈를 살펴보면 320d M 스포츠 패키지 세단이 4,990만 원이고, 왜건 모델인 320d 투어링 M 스포츠 패키지의 가격이 5,200만 원 수준이다.

국산 대표 왜건인 I40은 동급 모델보다 300에서 400만 원가량 비싼 고가 정책을 고수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그나마 다양한 왜건을 판매하는 볼보도 상황은 비슷하다. 볼보 V90 크로스컨트리는 하위 트림이 6,800만 원, 상위 트림은 7,400만 원 수준이다. 볼보 플래그십 세단 S90 최상위 트림이 6,600만 원인 점을 생각하면 훨씬 비싸다.

차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 주는 존재
세단 위주로 발전해 온
한국 자동차 시장
자동차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주는 역할을 했던 한국 시장의 특성 역시 왜건과 해치백을 기피하는 문화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가정에 차가 한 대씩, 많은 집은 세 대 이상 있는 집도 존재하지만, 과거엔 소형차 한 대라도 가지고 있으면 부자라고 인정받던 시대였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자동차 시장은 남들보다 더 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세단 위주로 시장이 발전해 왔다. 그랜저, 에쿠스 같은 차가 성공의 상징으로 불렸던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반면 왜건은 디자인 때문에 짐차, 또는 장의차로 인식되는 경향이 짙었다.

“국산차 최초 연간 15만 대
판매 돌파 유력”
현대 그랜저의 저력
세단이 유독 강세인 한국 시장에서 가장 잘나가는 차는 국민차 타이틀을 가진 쏘나타가 아닌, 그랜저다.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더 뉴 그랜저는 올해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어, 국산차 최초로 연간 15만 대 판매 돌파가 유력한 상황이다.

매월 1만 대 이상 판매되고 있는 것인데, 기본 사양 가격만 3,000만 원이 넘는 세단인 그랜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니 대단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겠다. 한때 그랜저는 성공의 상징이기도 했던 차인데 이제는 가장 많이 팔리는 국민차가 되어가고 있다.

가격은 기존보다 오르고,
디자인은 혹평이 이어졌으나
10만 명이 넘는 소비자들의 선택받아
더 뉴 그랜저의 흥행이 더욱 의아한 것은, 지난해 11월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될 때 당시 어마 무시한 혹평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디자인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전면부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호평보단 혹평이 주를 이뤘다.

가격 역시 기존보다 상승했다. 가솔린 모델은 트림별로 60만 원에서 80만 원 정도 인상됐고, 하이브리드, LPG 모델은 트림에 따라 각각 93만 원에서 225만 원, 15만 원에서 240만 원까지 올라 인상 폭이 큰 편이었다. 그럼에도 올해 10만 명이 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1. 중산층들에겐 성공의 상징
30년 이상 이어져온
그랜저의 네임밸류
한국 시장에서 그랜저가 이렇게 잘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랜저의 이름값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가되어 의미가 희석된 감이 있지만, 과거 그랜저는 성공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던 고급차다.

이런 고급차 이미지가 30년 이상 이어져왔기 때문에 여전히 그랜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쏘나타를 사려다가도 돈을 조금 더 주고 그랜저를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꽤 많다.

2. 과거보다 많이 젊어진
그랜저 이미지 덕분에
폭넓은 수요층을 확보할 수 있게 돼
과거보다 많이 젊어진 그랜저의 이미지도 판매량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데 크게 한몫했다. 과거 그랜저는 5~60대에게 어울리는 차였다면, 요즘 그랜저는 3~40대에게도 어울릴 수 있는 차가됐다. 그때 그 시절 그랜저의 고급차 이미지는 이제 상위 브랜드인 제네시스에게 넘겨준지 오래됐고, 그랜저는 그보다 젊은 층의 고급차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한때 그랜저의 이미지가 젊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도 존재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현대차의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그랜저의 이미지가 여전히 5~60대를 위한 자동차 이미지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어마 무시한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

3. “이 가격에 이만한 차 없어”
따져보면 훌륭한 가성비
마지막으론 가격이 기존 모델보다 올랐음에도, “이 가격에 이만한 차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가성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그랜저를 구매하려면 가장 저렴한 2.5 가솔린 기본 사양도 3,294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세금을 포함하면 3,5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최고 사양은 5천만 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격대로 그랜저를 대체할 만한 차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형제 집안의 K7이 있지만, K7은 확실히 그랜저의 네임밸류에 비비기 어려운 자동차다. 수입차로 고개를 돌려봐도, 최대 5천만 원 수준의 가격에서 그랜저만 한 실내 공간과 옵션, 고급차 이미지를 가진 차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그랜저는 많이 팔릴 수밖에 없는 차였던 것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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