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서커스 극단에서 무게가 수 톤에 달하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코끼리의 뒷다리를 말뚝에 묶어놓는 것이다. 새끼 코끼리는 스스로 말뚝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말뚝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며 자신의 한계를 규정한다. 이후 충분히 말뚝을 뽑아버릴 힘을 갖게 된 후에도 한계를 규정해버린 탓에 말뚝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최근 전해지고 있는 코나 일렉트릭 화재 사건에 소비자들이 보이는 반응도 말뚝에 묶인 코끼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결함에 대한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 체념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소비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코나 일렉트릭 화재 사고와 제조사의 결함 은폐 의혹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이충의 에디터

(사진=대구소방본부)

최근 또 한 번의
코나 일렉트릭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3일, 오후 4시경 대구 달서구의 한 택시 회사에 설치된 공용 전기차 충전기에서 충전을 진행하고 있던 코나 일렉트릭 차량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이에 소방 당국과 현대자동차 측은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였다.

더불어 국토부 관계자는 해당 사고에 대해 “배터리 문제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아직 피해 상태 등을 확인한 정도라 정확한 원인을 단정 짓긴 이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원인 규명을 위해 소방 당국과 제조사, 국토부까지 나섰음에도 소비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발생한 화재는
국내 11건, 해외 4건 등
총 15건에 달한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을 포함하면 2018년 이후 국내외에서 발생한 코나 일렉트릭의 화재 사건은 총 15건에 달한다. 해당 결함이 이전부터 꾸준히 전해졌던 이슈였다는 이야기이다. 앞서 현대차는 코나 EV 차량의 결함 문제에 대한 자체 조사를 진행하며 배터리 분리막 손상 문제를 결함 원인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해당 발표에 대해 배터리 제조사인 LG 화학 측이 반박하고 나서며 공방이 벌어졌으며,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에 대해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 코나 화재 사건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점차 커지자 현대자동차는 리콜 조치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원인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상수리는 의미가 없다”라며 불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국내에서는 단종
해외에선 버젓이 판매
이유는 내수 차별?
이후 브레이크 불량 문제까지 전해지면서 코나 EV는 결국 국내 시장에서 단종되었다. 하지만 유럽에선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하는 등 여전히 판매를 지속하고 있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럽형 모델에는 문제가 된 LG 화학의 배터리가 아니라 SK 배터리가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내수 차별이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한 이번에 전해진 화재 사고로 사건이 재점화되면서 앞서 진행했던 리콜 조치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고 차량이 리콜 조치를 진행한 차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선 리콜 조치를 떠나서 “애초에 원인 규명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동차 결함, “급발진”
결함에 대해 정확한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던 사례는 비단 이번 코나 EV 화재 사건뿐만이 아니다. 사고는 꾸준히 보고되고 있지만, 명확히 그 내용이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급발진 사고이다.

2016년, 부산에서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급발진과 관련된 여러 정황이 포착되었음에도 오히려 피해자에게 과실이 적용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해당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박용진 의원의 개입으로 피해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해당 사건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진=오토포스트 독자제공)

작년에는 오토포스트 측으로 LF 쏘나타 급발진 사고 제보가 전해지기도 했다. 사고 피해자는 EDR 자료, 블랙박스 등 급발진 정황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결함을 인정받지 못했다. 피해자는 인터뷰를 통해 ‘오히려 과실이 적용되고 있다’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해당 피해자는 30년 이상의 운전 경력을 지닌 베테랑이었음에도 제조사 측에선 “운전자의 조작 미숙” 등을 이유로 오히려 피해자에게 과실을 넘긴 것이었다. 이처럼 조작 미숙이나 운전자 과실 등을 이유로 결함 정황을 감추는 듯한 제조사의 태도에 대한 불만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허울뿐인 레몬법
기대조차 안 한다
물론 국내에는 제품 하자로 인해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이른바 “레몬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레몬법은 법적 강제성이 없고 단순 권고사항에 지나지 않아, 법에 의거하여 환불을 받기란 어렵다. 중재위원회를 통한 심의 과정도 간단하지 않으며, 진행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지치게 된다.

때문에 현재 국내에서 진행된 결함 심의 중 제품 결함이 인정되어 환불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그 외 진행된 사건의 경우 대부분 심의 진행 중 제조사와 합의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보고된 단 한 건의 환불 사례도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의 사례였다.

최근 개정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비판받고 있다
해외에 비해 징벌적 손해배상 규모가 작은 것도 미흡한 결함 대처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제품 하자로 인해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에 부과되는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피해액의 3배 정도였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액수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면서 법이 개정됐고, 올해 2월부터 그 액수가 5배 이하로 조정되었다. 더불어 결함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포착되면 매출액의 3%가 과징금으로 부과된다.

하지만 오히려 개정된 법이 기업을 보호한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5배 이하라는 항목이 손해배상 액수를 늘린 것이 아닌, 오히려 5배 이하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기업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정도의 금액이 징벌적 손해배상금으로 청구되고 있다. 때문에 손해 배상 강도를 현행보다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결함 내용에 대해 분노를 표했던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선 체념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리콜 조치도 효과가 없었다”, “역시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어떻게 안심할 수 있을까?”,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 “이번 사건도 지금껏 그래왔듯 흐지부지될 것이다” 등 사건 규명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제시하는 의견을 주로 찾아볼 수 있었다.

명확한 원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미흡한 법과 제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법이 보호해 주니 기업이 당당할 수 있는 것이다”, “원인 규명 전까지 해당 제조사의 전기차 판매를 중단시켜야 할 것이다”, “국가 기관이 기업 산하 기구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 같다” 등 현행법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거대한 기업 앞에서 개개인의 소비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의 미약한 힘이라도 집단으로 뭉칠 때는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결함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에선 보면 집단행동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사라진 것 같다. 심지어는 결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피해를 본 소비자에게 신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보내기도 한다.

이는 기업에게 고통받는 개인의 모습을 보며, 진실에서 눈을 돌리게 된 사람들의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현실을 바꿀 힘을 갖고 있음에도 말뚝에 묶인 코끼리처럼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는 부정이라는 말뚝을 뽑을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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