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지엠의 움직임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쉐보레’보단 ‘한국지엠’의 움직임이다. 4일, 한국지엠이 쉐보레의 한국수입차협회 회원 가입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저 톨레도 부사장은 이에 대해 “수입차협회 가입으로 국내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의 정체성이 보다 분명해져 브랜드 위상이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간 비하인드 뉴스 코너를 통해 쉐보레 행보에 대한 비판 내용을 자주 다뤘었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한국지엠 쉐보레에 대한 비판보다는 기대, 그리고 기대에 섞인 우려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새로운 움직임을 바라보는 소비자 시선은 덤이다.

김승현 기자

쉐보레의 국산차 이미지
지엠대우 시절부터 이어져왔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포르쉐, 포드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브랜드가 한국수입차협회에 가입했다면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쉐보레는 조금 다르다. ‘쉐보레’라는 브랜드는 미국 브랜드임이 분명하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치열한 썰전 대상이다.

한국에서 유독 쉐보레는 ‘국산차냐’, ‘수입차냐’를 두고 논쟁이 많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지엠대우다. 지금 자동차를 구매하는 주요 고객층들은 대부분 그 옛날 대우자동차부터 시작해 지엠대우, 그리고 한국지엠 쉐보레로 이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봐왔다. 그들에겐 ‘쉐보레=미국차’라는 인식보다 ‘쉐보레=대우차’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박혀있기 때문에 일부는 현대차처럼 온전한 국산차로 보기도 한다.

두 번째는 생산 공장이 위치한 국가다. 첫 번째 이유와 연결된다. 한국에 있는 공장에서 자동차가 생산되고, 여기에 지엠대우 시절부터 이어져온 ‘쉐보레=국산차’ 인식이 더해지면서 국산차 이미지가 더욱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것이다.

쉐보레를 온전한 미국 브랜드로 인식하는 소비자와 지엠대우로부터 이어진 국산 자동차 브랜드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만나 서로 치열하게 싸워왔다. 포털사이트는 쉐보레를 국산차로 분류하고, 통계 자료를 제공하는 협회들도 국산차로 취급하다 보니 여러모로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쉐보레 자동차가 한국에서 지금까지 온전한 수입차로, 반대로 온전한 국산차로 여겨지지도 않은 이유다.

공장 위치 때문에 나오는 썰전
기업 입장서 보면 생산 기지일 뿐
그러나 생산되는 공장 위치만으로 국산차와 수입차를 논하기에는 여러 가지 모순이 있다. 단순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BMW는 모든 SUV 모델들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생산한다. BMW의 최대 공장으로 통하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판매되는 BMW SUV 모델들이 생산되는 곳이다. 미국에서 생산된다고 해서 BMW SUV들을 수입차(미국차)로 보는 독일 소비자들은 없다.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텔루라이드’는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된다. 미국에서 생산된다고 해서 미국 소비자들이 텔루라이드를 국산차(미국차)로 보지 않으며, 반대로 한국 소비자들이 텔루라이드를 수입차(미국차)로 보지도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공장이 위치한 국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생산 기지일 뿐이다. 그들은 판매 시장과 지역을 불문하고 공장을 효율적으로 가동하기 위해서 전 세계 각지에서 공장을 가동한다.

우선 소비자 선택 폭이
꽤 넓어질 것이다
수입차협회 가입으로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우선 소비자 선택 폭이 넓어진다. 뒤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한국지엠은 수입 판매와 국내 생산 판매 투 트랙으로 제품군을 운영한다. 국내 생산 판매되는 모델은 ‘스파크’, ‘트랙스’, ‘말리부’ 등 쉐보레 국내 판매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모델들이다. 새롭게 출시되는 소형 SUV ‘트레일 블레이저’도 부평 공장에서 생산 예정이다.

수입 판매되는 차종은 판매 실적 견인보다 소비자 선택 폭을 넓히는 역할에 가깝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모델 중 수입 판매되고 있는 모델은 ‘임팔라’, ‘볼트 EV’, ‘카마로’ 등이다. 새롭게 도입하는 모델 중 ‘콜로라도’가 가장 먼저 출시를 앞두고 있다. 아메리칸 픽업트럭을 원하던 소비자들에게 희소식이다. 조만간 ‘트래버스’도 출시 예정이다. ‘포드 익스플로러’ 급 SUV를 찾고 있던 소비자들을 위한 선택지가 늘어난다.

수입 판매되는 차 60%
한국 생산 판매되는 차 40%
수입차협회에 가입했다고 해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만 판매하는 것도, 그렇다고 한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만을 가지고 수입차라 우기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콜로라도와 트래버스를 가장 먼저 들여올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쉐보레가 현재 한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모델 중 60%가 미국 생산, 40%는 한국 생산이 된다.

톨레도 부사장은 이에 대해 “쉐보레는 볼트 EV 수입 판매로 업계 최초로 장거리 주행이 가능한 순수 전기차 경험을 제공했고, 카마로를 통해 강력한 스포츠카의 경험을 제공해 오고 있다”라며, “더불어 국내 고객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정통 픽업트럭 콜로라도와 향후 트래버스 출시 등 쉐보레의 고객 경험 확대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말했다.

가격 많이 오를까?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오르진 않을 것
일각에선 “가격 올리기 위한 꼼수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쉐보레에게 재도약 의사가 충분하다면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리진 않을 것이다. 경쟁 모델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이 유지될 것이다. 수입 판매되는 차량들은 수입 동급 모델과 가격을 경쟁하면 되고, 국내 생산 판매되는 차들은 기존처럼 국산차들과 가격을 경쟁하면 충분하다.

다만 여기에는 조건이 붙는다. 수입차협회에 가입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인식까지 한 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입차’라는 키워드도 중요하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자동차들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경쟁 모델은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라는 것을 잘 강조해야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도 중요하지만 구매 결정에 있어 깊게 박혀있는 소비자 인식을 바꾸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들여올 수입 판매 모델들, 예컨대 ‘트래버스’의 경쟁 상대는 ‘익스플로러’라는 것을 잘 강조하고, 가격도 익스플로러와 경쟁 가능한 수준으로 책정하면 된다. 차체 크기와 파워 트레인이 다르지만 생각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팰리세이드’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에 익스플로러가 경쟁상대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 시장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콜로라도’는 현재 마땅한 경쟁상대가 없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세 가지 트림으로 출시되는데, 그중 최하위 트림이 3천만 원 후반대, 가장 많은 판매가 예상되는 중간 트림은 4천만 원 초중반으로 책정된다고 한다. 미국 미드사이즈 픽업트럭 가격 치고 괜찮다.

앞으로 판매될 국내 생산 모델들은 기존처럼 국산차와 경쟁하면 충분하다. ‘말리부’는 ‘쏘나타’와 경쟁 가능한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면 되고, ‘스파크’는 ‘모닝’, ‘트레일 블레이저’는 ‘코나’나 ‘셀토스’와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책정하면 된다.

가격 경쟁과 이미지 정리 두 가지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재도약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결국 소비자에게도 이득이다. 수입차와 국산차 분야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판매량이 높아지면 다른 제조사 자동차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것도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국산차와 수입차 쪽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국지엠 쉐보레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한국 생산 벗어나기 위해?”
일각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
이번 움직임을 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쪽에서는 “한국 생산을 완전하게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일 뿐이다”라며 한국 시장 철수를 위한 밑그림이라 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조 때문에 차라리 국내 생산 접고 이 방향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라며 글로벌 공장 체계가 낫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수입차협회 가입 움직임을 두고 단순히 “이제 수입차가 되는구나”에서 나아가 좀 더 깊이 파고드는 소비자들이 많다. 그중 한국 시장 철수 설 쪽은 이번 움직임을 시작으로 수입 판매하는 모델 비중을 늘려 결국에는 모든 한국 공장을 정리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제 시작일뿐
조금만 지켜보면
방향성 나올 것
지금 당장 보이는 움직임만 놓고 보면 재도약을 위한 좋은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콜로라도를 괜찮은 가격으로 내놓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고, 수입차협회에 가입한다고 해서 한국자동차산업협회를 탈퇴한 것도 아니다. 카허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이에 대해 “한국지엠은 KAMA와 KAIDA의 회원사로서 국내 소비자들을 위해 한국에서 지속 생산 및 다양한 수입 판매 차종을 계속해서 선보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재도약 의지를 계속해서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합리적 의심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너럴모터스는 이미 해외에서 군산 공장 사태와 같은 비슷한 사례를 만들었고, 끝이 좋지 못했다. 한국지엠이 군산 공장 사태 이후 내놓은 재도약 카드도 ‘이쿼녹스’였으니 흔히 말하는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었다.

두 번째 재도약 카드인 콜로라도가 출시되기 전 수입차협회 가입 절차까지 밟았다. 적어도 이쿼녹스를 내놓을 때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움직임이라 말할 수 있다. 조삼모사가 될지, 제대로 된 재도약의 발판이 될지… 콜로라도가 어떻게 판매되는지부터 살펴보면 그들이 원하는 방향성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