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출시하는 차량들을 보면 가끔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완벽한 성능을 보여준다. 그들이 치밀하게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 때로는 경이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지난 ‘맥라렌 F1’ 역사플러스 댓글 의견 중 “포르쉐 959도 소개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따라 오늘은 포르쉐 959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포르쉐’하면 ‘911’을 먼저 떠올린다. 포르쉐는 이미 1980년대에 그보다 더한 전설적인 하이퍼카를 세상에 내놓았다. 바로 ‘959’다. 언뜻 보면 911과 비슷하게 생긴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911보다 더 넓게 뻗은 생김새가 심상치 않다. 오늘 오토포스트 역사플러스의 주인공, 포르쉐 959에는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이 숨어있을까.

박준영 기자


원래 포르쉐 959는 로드카로 개발된 게 아니라 WRC 그룹 B에 참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랠리 차량이다. 198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그룹 B 스터디’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보였던 959는 막상 출시를 하고 나니 대형 사고로 인해 그룹 B가 폐지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출전하고자 했던 대회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959는 페라리 288GTO와 같은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당시 WRC 그룹 B는 어마 무시한 성능을 가진 차량들이 달리는 랠리였기 때문에 항상 차량 성능이 너무 과해 위험하다는 논란이 있었으며 959 역시 역대 차량들과 비교를 거부하는 어마 무시한 성능으로 출시가 되었었다. 결국 그룹 B 참가가 무산된 959는 차선책으로 1985년 다카르랠리에 출전하여 1,2위를 석권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결국 랠리에 출전하여 성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 후 포르쉐는 르망 24시에도 959를 출전시켰으며 7위로 완주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순위로만 본다면 크게 인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상위 랭크 차량들은 959보다 상위 경쟁그룹인 C1 차량들이었기 때문에 동급 차량들 중엔 1등을 차지했다고 봐도 좋다.

놀라운 것은 1~7위까지 모두 포르쉐가 싹쓸이했다는 점이다. 80년대 르망은 포르쉐가 순위권을 싹쓸이하면서 독주를 이어갔다. 괜히 포르쉐가 무섭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포르쉐 959는 포르쉐 하이퍼카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미가 큰 차량이다. 제일 빠른 로드카가 되기 위해 개발된 페라리 F40과는 다르게 당초 WRC 출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던 차량을 로드카버전으로 바꾼 959이기에 어마 무시한 성능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포르쉐가 잘 만들던 2.9리터 6기통 수평대향 트윈터보 엔진을 사용하였으며 최대출력 450마력에 최대토크는 51.0kg.m에 달했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3.9초. 요즘 나오는 슈퍼카들과 비교해도 될 수치다. 간단하게 손을 보면 600마력까지 출력을 올리는 것도 전혀 어렵지 않았고, 최고 속도는 315km/h로 당시 슈퍼카의 기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차량이 되었다. 이 정도면 포르쉐의 첫 하이퍼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 모든 것이 80년대 순정 차량에서 나오는 스펙이었다.

959가 포르쉐 역사에서 가지는 또 다른 큰 의미가 있다. 기존 911의 후륜구동 구조와는 다르게 주행 상황에 따라 앞뒤 구동력 배분이 가능한 4륜 구동 시스템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80년대 당시 구동력 배분이 들어가는 4륜 구동 시스템은 파격적인 신기술이었다.

거기에 그동안 911이 사용하지 않았던 수냉식 냉각 시스템을 적용하였고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섀시를 제작하였다. 프론트 앤드는 폴리우레탄으로 만들어졌고 공기역학이 고려된 디자인 덕분에 공기저항 계수 역시 0.31cd밖에 되지 않았다. 런플랫 타이어, 레이싱카에서나 볼 수 있었던 센터락 마그네슘 휠등 80년대 당시 다른 스포츠카 브랜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온갖 첨단 신기술들이 총집합된 기술의 결정체가 바로 959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959는 판매가보다 제작 단가가 더 높은 아이러니한 차량으로 남게 되었다.

심지어 요즘 스포츠카들에도 적용되는 차고조절이 가능한 서스펜션도 959에 적용이 되었다. 유압식 댐퍼를 통해 댐핑 값 역시 3단계로 조절이 가능했으며 차고는 12~18cm까지 조절이 가능했다. 물론 안전을 위하여 주행속도가 100km/h를 넘어가면 자동으로 차고는 15cm 이하로 내려갔으며 4륜 구동 시스템이 적용되며 차량 무게는 1,450kg으로 당시 생산되던 911보단 무거웠다.

80년대 등장한 차량의 기술력과 성능이라곤 믿기 힘든 수준인 959는 출시되자마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로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본격적인 생산은 1987년에 시작되었으며, 미국 시장을 대상으로 생산한 29대 차량을 포함하여 총 337대의 959가 생산되었다.

포르쉐 959의 초기 판매 가격은 무려 100만 달러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많은 세계의 부호들은 959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959는 짧은 시간 만에 완판되었으며 대부분 부호들의 차고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보관되어왔다. 국내에도 959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행방이 묘연해졌다.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에선 959를 가지고 있어도 1년에 한 번만 도로 주행을 할 수 있다. 북미시장에도 판매되었던 959는 당시 엄격했던 북미시장 엔진 배출가스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충돌 안전 평가도 받지 못해 수출은 물론 차량 주행까지 금지되는 일이 있었다.

심지어 이미 수입된 몇몇 차량들은 즉시 압수되어 창고에 보관되기도 했었다. 압수된 차량들은 1999년 법이 개정될 때까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1년에 한번 열리는 포르쉐 데이 때만 1회 공공도로 주행이 가능한 이상한 법이 제정되어 959는 현재 미국에서 1년에 한 번만 달릴 수 있는 특이한 차가 되어버렸다.


포르쉐 959가 가지는 또 다른 큰 의미도 있다. 자존심으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엔초 페라리의 자존심을 제대로 긁은 것이다.

출시되자마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 타이틀을 거머쥔 포르쉐 959는 ‘페라리보다 빠르고 아름다운 훌륭한 슈퍼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엔초 페라리의 자존심을 제대로 구겨놓았다. 그리고 바로 엔초 페라리는 최고의 로드카를 만들어 내겠다는 신념으로 F40 개발에 착수하였다. 전설의 F40이 탄생하게 된 이유는 바로 959 때문이었다.

F40은 결국 최고 속도 324km/h를 기록하며 포르쉐 959의 최고 속도를 꺾는데 성공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에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그 뒤로 많은 자동차 평론가들은 F40과 959를 비교하며 “F40은 천둥 같은 사운드와 함께 엄청난 빠르기에 집중했지만 움직임이 영민하진 못하고 959는 어떤 도로 어떤 환경에서든 상관없이 항상 빠른 올라운드 카”라는 평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얘기해보자면 959가 페라리 F40보다 최고 속도는 조금 느렸을지라도 조금 더 영민하게 움직이는 똑똑한 차량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포르쉐 최초로 적용된 4륜 구동 시스템이었던 959의 4륜 구조는 후일 964 카레라에 영향을 주었을뿐더러 닛산 4륜 구동 시스템인 아테사에도 영향을 주었다. 포르쉐는 팔려나간 959들 중 1대가 판매 이후 행적이 추적이 되지 않아 행방불명 상태가 되었는데 알고 보니 닛산이 스카이라인을 개발하며 4륜 구동 연구를 위해 닛산 자동차가 구매해 테스트를 진행한 뒤 나사 하나까지 싹 다 분해해 보았다고 한다.

닛산은 오랜 기간 고성능 차량으로 포르쉐를 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항상 목적은 타도 포르쉐였다. 그렇게 959의 뼛속까지 파헤쳐 닛산의 4륜 구동 시스템으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아테사 (ATTESA)라고 불리는 시스템이다. 아테사의 정식 명칭은 ‘Advanced Total Traction Engineering System for All-Terrain Electronic Torque Split Pro’으로 모든 지형 대응하기 위한 전자식 구동력 배분 시스템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닛산은 1989년 스카이라인 R32에 전자식 구동력 배분 시스템인 E-TS(Electronic Torque Split)를 적용한 R32 GT-R을 출시하여 모터스포츠와 각종 자동차 대회에서 모든 기록을 싹쓸이하는 영광을 차지했다. 또한 녹색 지옥으로 불리는 뉘르부르크링을 8분 20초 만에 주파하며 일본 차로는 거의 최초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포르쉐 911 카레라 4S 964 모델의 기록이 8분 45초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알 수 있다.

닛산은 R32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 GT-R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아테사 E-TS는 점점 더 발전하여 더 똑똑한 구동력 배분을 위해 디퍼렌셜 구조의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닛산 아테사는 포르쉐 959의 4륜 구동 시스템과 구조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959를 벤치마킹하여 개발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959의 4륜 구동 시스템이 뛰어났다는 것을 대변한다.

요즘 나오고 있는 R35 GT-R 역시 아테사 4륜 구동 시스템이 사용된다. 물론 현행 GT-R은 옛날 스카이라인들과는 이름만 같을 뿐 이루어지는 구조는 전혀 다르다. GT-R은 무게 배분을 위하여 특이하게 미션을 뒷바퀴 쪽으로 배치하였으며 엔진과 연결되는 구동축과 뒷바퀴에 연결되는 구동축 2개로 동력 배분이 이루어진다.

GT-R에 적용된 아테사 4륜 시스템은 후륜구동 기반 4륜 시스템으로 평상시엔 후륜에 90프로 이상의 힘이 전달되며 필요에 따라선 5:5까지 구동력 배분이 들어가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문난 자동차 광인 빌 게이츠는 슈퍼카들을 좋아한다고 하며 그중에서도 포르쉐를 사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빌 게이츠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애마가 바로 959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빌 게이츠 역시 959한 대를 구매했으나 미국의 이상한 법규 때문에 차량을 탈 수 없었고 차는 13년 동안 세관에 묶여있었다.

특별법이 개정된 후에도 1년에 한 번밖에 차를 탈 수 없기 때문에 빌 게이츠는 959를 타려고 본인 집 뒷마당에 있는 수영장을 없애고 개인 서킷을 지으려고 했다가 부인의 만류로 결국 실패했다는 재미난 일화도 존재한다.


총 337대밖에 생산되지 않은 959는 포르쉐 중에서도 상당한 희귀 매물에 속한다. 2018년 8월 사고로 앞쪽이 반파된 1987년식 959가 경매에 등장했다. 반파된 자동차를 비싼 가격에 매입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당시 예상과는 달리 최종 경매 낙찰가는 ’42만 5,000달러’였다.

한화로 약 ‘5억 1,7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 959를 원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해선 경매 낙찰가보다 더 높은 금액인 75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고 하니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다.


포르쉐 959는 80년대에 등장했던 최고의 슈퍼카들 중 한대로 선정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차량이다. 포르쉐 하이퍼카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뒤로 등장한 911 GT1 Strassenversion의 조상님인 셈이다. 911 GT1 스트리트 버전은 당시 911 996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3.2리터 6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탑재하여 최대출력은 600마력을 넘고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도달하는 데는 3.9초면 충분했다.

그 뒤에 후속으로 등장한 카레라 GT는 2000년대 초반 특유의 V10 귀곡성 사운드를 울리며 많은 이들의 드림카로 여겨졌으며 하이브리드 슈퍼카 대전을 시작한 918 스파이더로 포르쉐의 하이퍼카 계보가 이어져 오고 있다.


포르쉐는 오랜 기간 브랜드의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하면서도 항상 최고의 성능을 뽐내는 라이벌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자신만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요즘은 “포르쉐가 예전 같지 않다”, ” 요즘 포르쉐는 감성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만들어 내는 차량들은 항상 훌륭한 성능을 뽐낸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포르쉐에서 많은 파생모델들이 더 생겨나더라도 911의 정체성이 흐트러지거나 고성능 차량이 성능으로 다른 브랜드에 크게 밀리는 일은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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