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의 대명사 ‘볼보’
우연히 떨어트린 가재에서 영감
최고 수준 안전성의 원천은?

30m 높이에서 추락한 볼보 테스트 차량 /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YOUCAR”

자동차 업계에서 안전의 대명사로 통하는 볼보는 어떻게 해서 탄생했을까? 1926년 스웨덴의 한 식당에서 떨어진 가재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볼보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웨덴 철강업계 엔지니어 구스타브 라르손과 경제학자 아사르 가브리엘손은 식사 중 떨어트린 가재가 깨지지 않고 멀쩡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저 가재처럼 견고한 차를 만들어봐야겠다

당시 스웨덴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포장도로 비중이 작았으며 북유럽 특유의 혹한 기후 탓에 도로가 얼어붙는 경우도 잦았다. 자동차 제조 기술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은 시기였기에 낮은 기온만으로도 차가 고장 나는 일이 흔했는데, 소비자들에게는 이러한 환경도 버텨낼 튼튼한 차가 필요했다. 라르손과 가브리엘손은 이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고 1927년 스웨덴 최초의 현대식 자동차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사명은 ‘나는 구른다‘라는 뜻의 라틴어 ‘볼보’로 정했다.

글 이정현 기자

세계 최초의 3점식 안전벨트 / 사진 출처 = “볼보자동차”
볼보 세이프티 센터 / 사진 출처 = “볼보자동차”

22주년 맞은 충돌 연구소
매년 300회 실험 진행돼

볼보는 이후 100년 가까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를 만들겠다는 초심을 유지해오고 있다. 오늘날 모든 자동차에 장착되는 3점식 안전벨트는 볼보가 1959년에 발명했으며 “생명이 달린 기술을 돈벌이에 쓰고 싶지 않다“는 멋진 말과 함께 전 세계에 기술을 공개했다. 1971년에는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등을, 이후 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ABS), 측면 및 커튼형 에어백, 충격 흡수식 범퍼 등을 추가로 개발했다.

2008년 볼보는 “2020년까지 볼보 차를 타다가 죽거나 치명적 부상을 입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목표지만 볼보가 안전에 얼마나 진심인지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볼보 세이프티 센터는 지난 22년간 볼보의 첨단 안전 기술이 축적된 충돌 연구소다. 수많은 유형의 사고 상황을 재연한 충돌 테스트를 차종별로 100~150회씩, 매해 300회가량 진행해 데이터를 모으고 인명을 지킬 방법을 연구한다.

볼보 세이프티 센터 방호벽 / 사진 출처 = “볼보자동차”
파손된 볼보 테스트 차량 / 사진 출처 = “볼보자동차”

120km/h 정면충돌도 가능
방호벽 무게만 무려 850톤

볼보 세이프티 센터에는 메인홀의 충돌 공간과 이를 양옆으로 마주 보는 트랙 2곳이 존재한다. 각 트랙 길이는 108m, 154m에 달하며 108m 짜리 트랙은 각도를 90도까지 꺾을 수도 있다. 따라서 정면충돌은 물론 교차로 충돌 등 다양한 각도의 충돌 실험이 가능하다. 심지어 차량 두 대를 각각 120km/h까지 가속해 정면충돌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메인홀에는 차량 앞뒤, 좌우 충돌을 모두 시험할 수 있는 철제 방호벽이 있는데 무게가 무려 850톤에 달한다. 차량 이동에 에어쿠션을 활용해 메인홀 내 어디로든 간편히 이동할 수 있다. 또한 보행자뿐만 아니라 야생동물 로드킬 사고 상황 실험에 쓰이는 사슴 모형도 구비하고 있다.

볼보 30m 상공 추락 테스트 /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YOUCAR”
볼보 차량으로 인명 구조 연습하는 구급대원들 /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YOUCAR”

AI 딥러닝, 메타버스 활용
실제 사고 현장 연구하기도

실험에 쓰이는 차량과 더미(충돌 실험용 마네킹), 방호벽 등에는 충격량 등 데이터를 수집하는 센서가 촘촘히 부착되어 있다. 곳곳에 설치된 고화질 카메라 수십 대는 충돌 실험 당시 모든 각도에서의 상황을 기록한다. 실험 차량은 실제 충돌 테스트가 진행되기 전 컴퓨터 시뮬레이션만 수천 번 단위로 거치는데 여기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딥러닝 기술이 활용된다. 연구소 엔지니어들은 실제 사고 현장에 파견돼 데이터를 수집해와 연구하기도 한다.

연구소 바깥에서도 다양한 충돌 실험이 가능하다. 차가 도랑으로 돌진하거나 전복되는 등 도로 이탈 상황을 재현할 수도 있다. 또한 심각한 충돌 상황과 차량 손상을 만들어내 구조대의 인명 구조 기술을 연마할 수 있는 시설도 존재한다. 최근에는 극한의 사고 상황에서 탑승객의 안전을 확보하고 무사히 구출하는 매뉴얼을 만들고자 30m 높이에서 10대에 달하는 차를 추락시키는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충돌 테스트를 준비하는 볼보 세이프티 센터 엔지니어 /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YOUCAR”
충돌 테스트 결과 수집하는 볼보 엔지니어들 /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YOUCAR”

1년 예산만 144억 원
분석 시간도 상당해

이 같은 다양한 연구로 안전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만만치 않은 예산이 투입된다. 충돌 테스트 1회 평균 비용만 약 4천 8백만 원에 달하며 1년 기준 144억 원가량이 들어간다. 볼보자동차 선임 엔지니어 토마스 브로베르그는 “우리가 원하는 안전성은 신차 평가 테스트를 통과하거나 최고 등급을 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며 “볼보가 여러 사고를 끝없이 실험하고 분석해온 결과는 전 세계 교통사고 사상자 감소라는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볼보 엔지니어들은 충돌 테스트 후 실험 당시 차량이 움직인 경로, 파손 부위 등을 면밀히 살핀다. 한 엔지니어는 “실험이 끝나고 파손된 차량 사방에 튄 파편을 치우는 데에는 두 시간이면 되는데 이후 분석에는 훨씬 많은 시간을 쓴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실험에 쓰이는 볼보 차량은 실제 판매 차량과 완전히 동일한 사양이다. 화재 예방을 위해 연료탱크에 실제 연료 대신 유사한 밀도의 비활성 액체를 채운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볼보 EX90 / 사진 출처 = “InsideEVs”

전기차도 동일한 실험
화재 문제 해결될까

한편 볼보는 2030년까지 전 라인업 전동화를 마치겠다고 선언했다. 작년 출시한 C40 리차지와 최근 공개된 EX90 등 모두 내연기관 모델과 마찬가지로 수천 회에 달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쳤으며 실제 충돌 실험도 100회 이상 진행됐다. 이후 출시될 전기차 역시 모두 볼보 세이프티 센터에서 실험이 한창이다.

전기차에는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 대신 배터리 화제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 현행 전기차 대부분에 적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외부 충격 등으로 인한 파손 시 열폭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볼보 충돌 연구소 엔지니어는 “전기차의 경우 충돌 실험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를 항상 대비하고 있지만 아직 불이 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어쩌면 전기차 배터리의 화재 위험을 잠재울 획기적 기술이 볼보에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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