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국산 올드카의 끝판왕으로 불렸던 차

이슈+|2018.12.12 23:27

영화 미드나잇인파리에서 주인공 남자인 '길'이 예비 신부와 함께 방문한 프랑스에서 우연히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를 만나게 되고 피카소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아드리아나와 묘한 기류를 만들기도 한다. '길'은 이 과거의 장소가 마음에 들고 마치 있을 곳에 제대로 찾아온 기분마저 든다. 아드리아나와 우연히 더 먼 과거로 가게 됐는데 아드리아나는 그 과거에 머물기로 하고, '길'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과거가 편한 이유는, 현재는 매일이 새롭고 처음이지만 그와 달리 과거는 익숙하고 모든 걸 아는 까닭이다. 올드카도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 유행하는 디자인과 기술력과 한참 동떨어져있지만, 올드카를 바라 보면 마음과 기억이 그 때 그 시절로 빛보다 빠르게 되돌아간다. 관련한 추억이 있는 사람은 감상에 젖기도 한다. '요즘 차는 이런 감성이 없어'라는 생각이 조금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동차 5대를 모아봤다. 어떤 차는 현역으로 다시 부활해도 충분해 보인다.




1. 기아 콩코드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생산된 전륜구동 중형차다. 제 5공화국 시절에 있었던 규제인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1987년에 풀리면서 승합차와 화물차만 담당해야 했던 기아자동차가 국내 승용차 시장에 복귀하면서 내놓은 모델. 1987년 3월에 내놓은 프라이드가 성공을 거둔 후인데, 프라이드는 당시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가 독점하고 있던 시장 상황에 대한 대항이었다. 중형차 시장에서 밀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아 출시한 차량이 콩코드.

기아자동차 최초의 디젤 승용차이기도 하다. NB-V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4년간 개발했고 토대가 된 모델은 마쓰다의 4세대 카펠라다. 출시할 때 2.0리터 가솔린 SOHC만 있었고 이듬해인 1988년에 2.0ℓ 디젤 SOHC(4월), 1.8ℓ 가솔린 SOHC(5월), 1.8ℓ LPG SOHC(택시, 8월) 등이 차례대로 등장했다. 경쟁 중형차에 비해 전장과 휠베이스가 짧은 편이었고 공차중량도 무겁지 않았으며 마쓰다 엔진은 고속도로에서 좋은 성능을 냈다.


당시에 현대 쏘나타와 대우 로얄 시리즈와 3파전이 붙었는데, 앞서 언급한 상대적으로 짧은 전장과 휠베이스로 인해 실내가 넉넉하지 않은 점 때문에 판매량에서는 조금 밀렸다. 1988년 7월에 출시한 DGT 트림은 LCD 계기판을 다는 등의 첨단 이미지와 점잖은 디자인 덕분에 변호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에게 적절하게 포지셔닝 되면서 나름대로의 매니아층이 만들어져 선전할 수 있었다.


2. 현대 그랜저 1세대

대한민국 자동차의 산 증인이다. 그랜저라는 이름은 대학교에 아직도 서식하는 시조새나 암모나이트 등으로 불리는 고학번 같은 느낌도 든다. 각지고 우람한 그랜저 1세대와 미려한 곡선과 한층 젊어진 인상의 그랜저IG 사이에는 굳이 언어화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시간 차이가 있다. 1986년부터 판매를 시작했고, 1세대와 2세대는 미쯔비시와 공동으로 개발했으며 3세대부터는 독자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1세대와 2세대는 디자인과 설계를 미쯔비시가 맡았다. 아직 그때까지는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세대는 각이 큼직하게 쓴 덕에 각 그랜저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랜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는 데보네어 V로 출시됐다. 현대 그랜저는 1986년 7월에 출시되자마자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대우 로얄살롱 슈퍼에게 겨울을 선물하고 왕좌에 앉았다. 후륜구동 중심이었던 대형차 시장의 호수 가운데에 던져진 첫 전륜 모델이었다. 고속 주행에서 크루즈 컨트롤 기능까지 지원했다. 일본에 출시된 데보네어 V는 인기를 얻지 못했다.

국산차에서는 처음으로 록업 클러치가 들어간 전자제어식 4단 자동변속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1989년에 4기통 제한조치가 풀리면서 V6 3.0리터 모델을 내놨는데 과거에 포드 20M과 그라나다를 조립 생산하면서 6기통 개발에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던 덕분에 대우의 라인업을 제대로 따돌릴 수 있었다. 그랜저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대우 로얄에 가려져있던 고급 세단의 명성을 되찾게 된다. 국산차 중에서 최고급 모델로 인식된 덕에 그랜저 오너는 부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3. 현대 스텔라

1983년 5월부터 1997년까지 생산한 현대자동차의 후륜 구동 세단이다. 포드와 라이센스 협약을 통해 코티나를 생산하고 있던 현대자동차가 포드와의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코티나의 후륜구동 플랫폼을 이용해서 Y카라는 코드네임으로 만든 새로운 승용차가 스텔라다. 이 차종이 쏘나타로 이어지게 된다.  

 

미쓰비시 직렬 4기통 새턴 엔진 1.4리터와 1.6리터로 출시됐었다. 1.4리터는 출력에서 다소 부족하고 1.6리터는 세금 때문에 메리트가 부족했던 까닭에 1984년에는 1.5리터 엔진으로 합쳐졌다. 경쟁 차량인 대우 로얄 XQ에 이미 1.5리터 엔진이 들어가 있던 이유도 있다. 그러나 서스펜션에서 국산화한 부품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대우 로얄 시리즈보다 차체가 작은 탓에 로얄 시리즈의 상위 차종에 비해 한 체급 낮은 차량으로 인식됐다.


내수용 최상위 트림으로는 소나타라는 차종을 선보였다. 이 모델까지는 사실상 스텔라이며, 1988년에 출시한 Y2가 1세대 쏘나타다. 최상위 트림에 있었던 소나타는 크루즈 콘트롤을 지원했고 뒷좌석 전동 조절 등 당시에는 최고 수준의 편의사양을 자랑했다. 대우자동차의 로얄시리즈와 경쟁했지만 스텔라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 때문에 판매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4. 코란도 훼미리

SUV를 다목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끔해 SUV 대중화에 나름대로 큰 공헌을 한 차량이다. 당시 군사정부의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 때문에 제대로 된 SUV가 출시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발의 시작은 거화자동차였다. 1982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는데 1984년에 창업자의 원정도박과 부자 간의 경영권 다툼 등으로 흑자 도산하면서 (주)거화는 동아자동차에 인수됐다. 1986년에는 동아자동차가 무리하게 (주)거화를 무리하게 인수한 탓에 다시 쌍용그룹에 팔려 갔다. 출시도 하기 전에 주인이 2번이나 바뀐 셈.

 

1988년 11월에 겨우 출시된 코란도 훼미리는 이스즈 트루퍼의 프레임이 기반이었다. 당시의 사회는 1988 올림픽 직후였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로 임금이 올라가기 시작했으며 국민소득 역시 높아지는 시기였다. 패밀리카를 표방한 코란도 훼미리는 이러한 시류와 잘 맞아 떨어져서 중산층이 타기 좋은 패밀리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출고 대기기간이 3~4개월에 이를 만큼 초기에는 인기가 좋았다.


출시 다음 해인 1988년에는 900만원대로 가격을 낮춘 보급형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1991년에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등장했는데 엔진을 공급하던 대우중공업이 노사 문제로 공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엔진의 공급처를 다변화하긴 했지만 미쯔비시 파제로를 들여온 현대 갤로퍼에 밀렸다. 


1992년 11월에 무쏘 출시에 앞서, 3중 구조 강철 프레임을 선행 적용한 파일럿 모델인 1993년형 코란도 훼미리를 선보이고 나서야 조금 숨통을 틔였지만 무쏘가 많은 인기를 끌면서 상대적으로 비인기 차종이 되었다. 1996년에는 뉴 코란도에까지 밀리게 되었고, 국내 최초의 스테이션 왜건형 SUV컨셉을 가진 코란도 훼미리는 1996년 말에 단종의 길을 걸었다.


5. 대우 티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생산된 경차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진행한 '국민차 사업'의 사업자로 대우조선이 선정되어 스즈키와 협약해 3세대 스즈키 알토의 플랫픔올 그대로 가져와 생산한 차량이다. 사실상 3세대 스즈키 알토의 수출용이라고 해도 되는 수준. 우리나라 최초의 경차이기도 하다.

3백~4백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 600kg 초반인 공차중량 등은 시내주행에서는 부족함이 없었다. 원가를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에 편의사양이 좋지 않았다. 이 시기에 이미 ECU를 활용한 전자제어 방식 엔진이 등장했지만 카뷰레터 방식이 들어갔고 파워스티어링휠이나 에어백도 없었다. 오디오만은 대우전자 제품을 사용해 성능이 좋았다. 오디오를 빼고는 사실상 깡통차였다.


많은 사람들이 티코를 기억하지만 1990년대 초기에는 판매량과 인기가 좋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대부분 여유자금을 주택을 사는데 사용하는 사회 분위기였고 세컨드 카라는 개념이 거의 없었을 때여서 가족이 타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가구 하나당 당연히 자동차 한 대쯤 있는 시절도 아니었다.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시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IMF 직전의 거품 경제 속에 소비자의 구매력이 나아졌고 1가구 2차량 중과세 제도가 경차는 해당하지 않게 되면서 세컨드카 혹은 혼자 타기 좋은 차량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IMF가 터지고 나서는 가성비 좋은 차량으로서 받아들여진 것이 뒤늦은인기에 한몫을 했다. 초기에는 깡통차 이미지가 강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옵션에 꼭 필요한 편의사양을 넣을 수 있게 됐다. 1998년 대우의 후속차량인 GM대우 마티즈가 나오고 나서도 생산되다가 2000년에 내수판매를 중단했고 2001년까지는 수출용만 생산했다.


오토포스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by 오토포스트 Co., Ltd. All Rights Reserved.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