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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플래그십 세단, CT6 2.0리터 터보의 양면성

시선집중|2019.03.03 18:14

중장년층에게 캐딜락은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할 것이다. 오일쇼크가 터지기 직전까지 미국의 경기호황 때 가장 잘 나갔던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기 떄문이다. 헨리 릴런드가 포드와 헤어지면서 파산 위기에 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서 만든 브랜드가 캐딜락이다. 태생부터 프리미엄을 표방했기 때문에 GM에 인수되고 나서도 럭셔리 디비전을 맡았다.

캐딜락은 엘도라도라는 모델을 통해 전성기를 누려 아메리칸 럭셔리라는 이미지를 얻었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한때 몰락의 길을 걸었다. 1999년에 '아트 앤 사이언스' 컨셉을 발표해 지금에 이르면서 디자인은 젊어졌고 엔진 라인업도 다양해졌다. 세단에 붙이는 CT, SUV에 붙이는 XT라는 작명은 2018년까지 4년 동안 캐딜락 CEO로 있었던 '드 나이슨'의 작품이다. CT6는 지금을 달리는 캐달릭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우리나라의 캐딜락 전체 매출은 2017년에 처음 2,000대를 넘었고 2018년에는 2,101대를 판매했다. CT6가 951대로 전체 매출의 45%. 가격으로는 벤츠 E클래스가 경쟁 상대이지만 체급으로는 S클래스보다 길기 때문에, 대형 수입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캐딜락은 재도약을 꿈꾸면서 독일차를 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캐딜락을 대표하는 CT6는 과연 독일차를 넘어설 준비가 됐을까.




크고 아름답다. 실물을 처음 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짧고 간결한 감상이다. 시승차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흰색 고래 한 마리가 제자리에서 잠영을 하고 있었다. 캐딜락에도 당연히 흰색이 있을 터인데, 캐딜락을 최근에 검은색밖에 보지 못한 까닭에 하얀 차체가 눈물을 흘리며 정차하고 있는 걸 보자 잠깐이지만 숨이 막혀 버렸다.

씹고 있던 껌이 목에 걸렸던 것은 아니고 하얀색과 CT6의 차체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햇빛이 나와 CT6 사이를 질투하듯 들어오면서 공간의 분위기에서 현실과 다른 이질감이 느껴졌다. 세로로 내려가 있는 DRL은 캐딜락의 시그니처다.


에스컬레이드에 적용되어 있고 중형 SUV인 XT5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올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캐딜락의 준대형 SUV인 XT6의 눈매도 그렇다. 미국에는 작년에 CT6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됐는데, 기존의 세로 모양의 헤드램프가 XT6처럼 가로로 배치되어 새로운 패밀리룩이 들어갔다.


리어램프에는 영롱함 비슷한 것이 표면에 떠있다. 트렁크 리드 좌우를 ㄱ자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데 그저 '미'를 위해 여러가지 선을 긋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 아니다. 1959~60년대 전성기 캐딜락의 상징으로, 엘도라도에도 시그니처처럼 사용됐던 테일핀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출시 당시 제네시스 EQ900하고도 닮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관련한 콘셉트카는 2013년의 일미라지이며 이는 2011년 콘셉트카인 씨엘을 계승한 것으로 EQ900는 2012년부터 개발에 들어갔다.


캐딜락 앰블럼에 대한 자신감일까. 뒷모습은 필요 이상의 멋을 부리지 않았다. 과거에 있었던 과감한 테일핀은 그저 느낌만 남았을 뿐이지만 헛헛하지 않다. 헤리티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어램프에 불이 들어올 때 비로소 뒤태가 완성된다. 어떤 색상이든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기대감을 안고 운전석에 몸을 맡겼다. 이 오묘한 풍광 속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에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차문을 닫고 나자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건 정숙성이다. 귀가 좀 어둡다면 시동이 걸려있는 것도 모를 수 있을 만큼 소음이 잘 차단됐고 엔진이 전하는 진동이 잔잔했다. 실내를 이곳저곳을 둘러 보는 것은 조금 미뤄두고서 촬영지로 향했다.

개미지옥에 빠져버린 개미처럼 출근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급가속 없이 중저속으로 운전했다. 아직까진 훌륭한 주행질감이다. 캐딜락의 2.0리터 터보 엔진은 중저속과 점진적인 가속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뽐냈다. 정숙한 실내를 깨지 않을 수준의 NVH. 하늘이 지상을 유영하는 하얀색 고래에 반갑다는 메시지를 보내듯, 오랜만의 눈이 도로에 내려앉는다. 눈은 이내 녹아서 더러운 도로에 오염돼 하얀색 CT6의 차량 하부가 검게 변한다. 검은색 CT6를 원했던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아차린 건가. 왜 하필 촬영을 가는 중에 은총을 주시는 겁니까.


촬영지에서 실내를 둘러보자, 가득 품었던 기대감이 눈 녹듯 사라진다. 캐딜락 앰블럼이 없다면 여느 GM의 중저가 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도어트림에서 시선을 잡아 끄는 카본 문양의 유광 플라스틱은 너무나 당당해 정말 카본일지도 모른다,며 동승했던 기자와 함께 조심스레 만져봤지만 역시나였다.


CT6에 가졌던 좋은 인상이 걷히는 눈처럼 사라지기 시작하자 몇 가지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 중 하나는 인스투르먼트 패널의 소재. 브랜드의 플래그십 세단에는 어울리지 않는, 보기에도 특별하지 않고 만질수록 평범한 감촉이다. 링컨과 함께 아메리칸 럭셔리를 이끌었던 캐딜락의 플래그십 세단의 자존심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걸까 하는 아쉬움이 올라온다. 대쉬보드는 손을 잘 대지 않기 때문에 세련된 패턴이라도 넣었으면 감성질감이라도 좋았을 터. 탄소섬유를 흉내낸 도어트림과 함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조장치 조작부는 나쁘지 않았다. 원가절감을 위해 물리버튼을 적용한 듯한데, 그 덕에 레버로 온도 조절을 할 수 있다. 프리미엄 감성은 조금 줄어들겠지만 터치버튼이 안 쓰여 다행이다. 레버로 온도를 올리고 내리는 것은 직관적이라 편하고, OFF 버튼이 물리 버튼으로 되어 있어 특별히 불편하지 않았다. 사용할수록 조그 다이얼이 그립긴 하다.


문제가 있다고 느낀 부분은 터치스크린과 그 주변이다. 터치스크린은 필요한 만큼 빠릿빠릿하지 않다. 스마트폰 수준의 터치감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할 때 매번 눌렸는지를 꼭 확인해야 했고 늦게 반응해서 기다려야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시스템이 먹통되어 메뉴 진입이 안 된 적 있는데 시동을 다시 걸고 나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비게이션 기능은 운전자가 자주 쓰기 때문에 따로 버튼을 마련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비상등 버튼이 터치로 되어 있고 터치스크린 오른편에 붙어 있어서 누를 때마다 팔을 뻗어 위치를 확인하고 눌러야 한다. 비상등이 켜져도 시각적으로는 알 수 없고 소리를 통해 알아야 한다. 이를 설계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팔 길이가 1m가 넘고 라식 수술 때문인지 조명이 깜빡이는 것이 불편했나 보다. 조수석의 글로브 박스를 열려면 비상등 버튼 밑에 있는 터치버튼을 눌러야 한다. 굳이 글로브박스를 이렇게 열어야 하는 이유가 뭐였을까.


순정 내비게이션은 주행에 집중할 수 있게 잘 안내했지만 척도를 조절할 때 핀치가 아니라 따로 화면 상의 메뉴를 통해야 한 점이 번거로웠다. 주소 입력으로는 목적지 설정을 할 수가 없어서 정확한 상호명을 입력해야 한다. 목적지 근처에 지형지물이라도 없다면 불편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뒷자리는 광활하다. 전장이 5,185mm이고 휠베이스가 3,109mm에 달한다. 모두 벤츠 S클래스보다 큰수치. 전폭은 20mm가 좁지만 성인 2명이 제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다. 뒷자리만 따로 파노라마 글래스를 열 수 있게 되어 있고 파노라마 글래스 때문에 조금 낮아진 천장을 보완하기 위해 시트 등받이에 등을 붙이면 천장이 위로 파여 있어서 머리공간이 여유롭다. 긴 전장 덕분에 트렁크 평수도 커졌다. 친구들과 여행갈 때 실내에 자리가 부족하면 친구 두어 명은 담요와 함께 밀어넣어도 괜찮을 만큼.




자유로를 달렸다. 도심에서는 도저히 이 큰 차체를 끌고 엑셀 페달을 마음껏 밟기가 부담됐다. 어디를 가도 시선을 사로 잡으니까 도심에서는 속도를 내지 않아도 감성마력이 1000HP까지 올라가지만 자동차의 본질은 달리기다. 다운사이징 추세지만 5.2미터에 달하는 차체에 2.0리터 터보는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어,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과 실제로 그런 '것'과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중저속의 점진적인 가속에서 큰 감명을 받은 이후라 기대감이 너무 컸나 보다. 3.6리터 모델이 네바퀴굴림인 것과 달리 2.0리터 터보 모델은 뒷바퀴굴림 방식으로, 엑셀 페달을 깊게 밟아 스로틀을 과감하게 열리자 CT6는 운전자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지만 기대만큼 나아가주지 못했다. 특히 정지상태나 저속에서 엑셀 페달을 깊게 밟으면 뒷바퀴가 조금 헛돌면서 속도가 붙는 등 조금은 불안정한 모습도 있었다.


장점이 단점이 된 순간이다. 급가속으로 하자 조용한 실내로 터보차저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리 터보랙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터보차저가 돌아가는 소리와 차체의 실제 속도 간의 괴리감을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터보차저가 열심히 일할 때마다 역시 이 정도 차체에 2.0리터 터보엔진은 무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캐딜락은 사실 무거운 차는 아니다. 3.6리터 모델은 엔진도 크고 네바퀴굴림이기 때문에 마냥 가벼울 수는 없지만 여전히 벤츠 S 클래스와 비교했을 때 최대 225kg 가벼운 1,950kg이며 2.0리터 터보엔진 모델은 1,735kg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2.0리터 터보의 한계는 극복하기 힘든 듯하다.


고속으로 달리자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 조용했던 차가 시끄러워진 것이다. 정숙함으로 채워졌던 공간이 온갖 노면 진동과 소음으로 가득해졌다. 엔진도 여력이 있고, 도로도 한적했지만 더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 과장하면 자유로를 맨발로 뛰고 있는 것 같았다. CT6는 노면의 작은 변화들을 빠짐없이 운전자과 공유하려는 의지가 너무 강했다.


차량의 속도가 올라갈수록 CT6는 속도계에 화음이라도 넣으려는 듯 타이어와 노면과의 마찰음과 진동을 실내로 전했다. 중저속에서는 서스펜션 특성이 소프트함과 스포티함 사이었는데 고속에서는 소프트하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고속주행 안정성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미 마음이 흔들렸던 까닭인지 고속에서 스티어링휠 역시 안정감이 부족하다고 생각됐다. 도심 주행에서는 편안한 주행에 한몫했지만 차체가 노면을 단단하게 잡아야 빠른 속도에서는 물렁한 느낌. 서스펜션의 반응과 비슷한 맥락으로 세팅된 것으로 보인다.




어지러운 마음을 안고 파주 헤이리 예술 마을에 도착했다. 공영주차장에 들어서니까 다시 감성마력이 차오른다. 후방 카메라 화질이 좋지 않아 주차할 때 꽤 신경을 써야 했지만, 자동차에서 내리고 나니까 CT6에 가졌던 불편한 감상들이 어느새 사라진다. 문득 생각에 잠긴다. 


내가 돈이 충분하다면 캐딜락 CT6의 오너가 될 수 있을까? 분명한 장점과, 단점이 되기도 했던 파트타임 장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아직 우리나라는 마이너 브랜드의 AS가 부실한 것도 신경 쓰인다. 제네시스 G80이라는 좋은 대안이 있다. 현대차와 분리가 안 된 덕에 전국에 있는 현대 공식 센터를 이용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고 가격도 더 저렴하다.


승차감의 반대급부로 하차감이라는 말이 생겼다. 차에서 내릴 때의 주위 시선을 느끼는 것을 말하는데, CT6는 하차감에 있어서는 단연 최고다. 하지만 브랜드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세단의 주된 장점이 하차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GM의 세단 라인업과 차별되는 캐딜락만의 실내 분위기가 필요하며, 주행질감은 전반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완벽한 아메리칸 럭셔리의 부활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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