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네이버 남차카페 ‘최재명’님 제보)

쌍용차는 최근 ‘J100’과 ‘KR10’ 디자인 스케치를 공개하며 부활을 알리는 듯한 소식을 전했다. 이를 본 네티즌들 반응 역시 뜨거웠는데 “이대로만 나와라”, “쌍용이 드디어 정신 차렸나”라는 말이 줄을 잇는 거 보면 네티즌들도 정말 옛 쌍용차가 그리웠나 보다. 그도 그럴만한 게 쌍용의 역사는 지프 코란도를 빼면 이야기가 안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때 그 시절 코란도를 떠올리는 콘셉트카가 공개되자 네티즌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해두자.

쌍용이 코란도를 최신 트렌드에 맞추어 도심형 SUV로 변화 시킨 건 신의 한 수가 될 거라 생각했겠지만 결과적으론 악수가 되었다. 거기에 쌍용이라는 회사마저 이제는 거의 무너져가는 상황. 분위기를 반전시킬 마지막 카드는 최근 공개한 J100과 KR10이라고 할 수 있는데, 쌍용 골수 팬들이 그토록 외치던 지프 코란도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얼마나 멋진 자동차이길래 그렇게들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궁금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지프 코란도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권영범 수습 에디터

신진자동차의 역사를
잠시 알아보자
신진자동차는 1955년 김창권 그리고 김제원 형제에 의해 신진자동차공업으로 시작했다. 당시의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이 그러하듯이 미군으로부터 매각 받은 폐차의 섀시를 이용하여 버스를 만들어 판매하던 회사 중 하나가 신진자동차였다.

버스를 만들면서 버스 생산 권한을 획득하여 회사 규모를 키워나갔다. 1962년 국내 최초로 25인승 미니버스를 만들어 2천 대의 판매량을 자랑하며 김형제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이후, 1963년 미군에서 불하 받은 지프 등에서 재생 부품을 이용한 신성호가 탄생하게 되면서 승용차도 잠깐씩 만들었으나 품질이 저조해 별 볼일 없는 차였다.

1964년, 경쟁사였던 새나라 자동차는 ‘새나라 의혹’ 이라는 비리 사건으로 생산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고, 신진자동차는 정부의 주선으로 이 새나라 자동차를 인수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신진자동차는 1965년 도요타와 기술 제휴를 맺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도요타의 코로나, 크라운, 퍼블리카 등의 라인업을 제공하여 라이센스 생산하면서 돈이란 돈은 전부 다 쓸어 담아냈다. 이후 1968년 한국기계를 인수, 경향신문까지 인수하고, 지금까지 살아있는 신진자동차공업고등학교를 설립 등을 하며 신진그룹으로 성장하게 된다.

도요타의 배신으로
신진은 무너진다
하지만, 1970년 도요타는 중국에서 발표한 저우 4원칙에 따라 중국 쪽에 붙게 되는데, 나중에 도요타가 배신을 감행한 이유가 밝혀졌다.

당시, 중국 총리인 저우언라이가 일본 경제사절단과 회담에서 한국 및 대만과 거래하는 상사, 베트남 전쟁 때 미군에게 무기를 공급한 기업, 미국계 기업 자회사들과 무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한국GM이 설립된 이후 첫 출시한 시보레 1700

여하튼, 저우 4원칙으로 인해 도요타는 한순간에 신진과 기술제휴 관계를 결렬시키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다급해진 신진자동차는, 계획에 없던 미국의 GM과 자본금을 50:50 공동출자를 시작으로 한국GM이 탄생하게 된다. 이 역사는 대우자동차의 전신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고, 코란도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한 복잡한 역사다.

(사진 = 사이버자동차산업관)

1970년 공권력의 상징 검은색 지프
신진지프
여러분들은 시대극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볼때, 검은색 지프가 나왔다 하면 영 좋지 못한일이 일어나는 복선 같은 역할을 맡은 차를 기억하실 것이다.

때는 1969년 11월 신진자동차 망하기 직전의 시절에 인천 부평 공장에서 생산하며 판매가 이뤄진 신진지프는 AMC제 2,200cc L4 가솔린 엔진이 탑재되었다. 이 부평공장은 1965년 당시 부도난 새나라 자동차의 부평공장을 인수한 공간이다.

그 당시의 지프는, 신진자동차에서 윌리스 MB의 민수용 버전인 카이저 지프 CJ-5를 국내에 도입한 모델이었다.

1970년 3월까지 부평에서 생산한 뒤 1970년 4월부터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동에 부산공장을 따로 설립하여 신진지프의 생산라인이 부평에서 주례로 옮겨졌으며, 1974년 단종 전까지 민간 판매보다 관용차 판매가 더 많았다. 현재 이 신진지프는 넘버가 살아있는 차는 없으며, 시대극 촬영 소품 90% 이상이 쌍용차 시절에 만들어진 코란도를 기반으로 재도색하여 촬영한 차들이다.

AMC와 합작으로
별도 법인을 설립하여 만들어낸 결과물
1974년 1기형 지프가 단종되면서 동시에 AMC 지프 2기형이 출시되었고, 부산 주례 공장을 AMC와 지분을 50:50으로 나누면서 합작법인을 내었다. 이때부터 신진자동차는 신진 지프 자동차라는 별도의 법인이 탄생하게 되면서, 지금의 쌍용차가 탄생하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당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L6형 3,800cc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여 출시하였다. 이 당시 국산차 기함급이던 현대 그라나다의 엔진이 V6 2,000cc였던 걸 감안하다면, 그 당시 엄청난 큰 엔진을 탑재한 것이며, 지금 시간에서 바라봐도 결코 작은 엔진은 아니다. 당시 오일쇼크로 인하여 이 오버 스펙의 엔진은 연비가 굉장히 떨어진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사진 = 글로벌오토뉴스)

당연히 신진 지프는 판매 부진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고, 판매가 저조해지자 1978년 결국 AMC는 지분을 빼버리게 될 정도로 경제성도, 상품성도 뛰어나지 않았다. AMC의 지분이 빠지게 돼버리자 신진 지프는, 리비아에 수출하게 되면서 당시 AMC와 계약 조항 중 하나인, 공산국가와 거래를 불허하는 조항에 위배된다며 지프 브랜드 사용이 불허된다.

솔직히, 말이 좋아 50:50 지분이지 AMC의 횡포가 심했었고, 그를 못마땅해 하던 신진 지프는, 지분이 빠지는 즉시 효율적이지 못했던 지프의 3,800cc L6 엔진을 갔다 버렸다. 1979년 새한자동차에서 생산하던 이스즈 엘프의 2,800cc 최대 출력 85마력 디젤엔진을 받아와 디젤 엔진을 탑재하게 되면서 디젤 = SUV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2기형 지프는 1980년까지 생산 및 판매가 이뤄졌고, 롱바디와 픽업 모델은 1982년까지 생산 및 판매가 이뤄졌다.

신진 지프의 마지막 흔적
슈퍼스타
1980년 연말 81년형 모델로 슈퍼스타가 탄생하게 된다. 숏바디 모델 한정으로 대대적인 외형을 변경하였고, 지금 우리들이 각 코란도로 알고 있는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이 슈퍼스타가 신진자동차 브랜드의 마지막 모델이 되기도 하다.

대대적인 변화와 더불어 1981년 신진자동차의 사명이 거화자동차도 변경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세대 거화코란도의 시작점이다.

(사진 = 보베드림 ‘랠리지존’님)

코란도 브랜드 런칭이 되기 직전인 1982년, 올드카 매니아라면 알고 있는 코란도 9인승 롱바디버전 9인승 훼미리 디럭스가 출시된다. 올드카 매니아라면 코나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후 외관을 전체적으로 바꾼 12인승 모델 훼미리, 픽업 모델도 내놨다.

이렇게 다시금 내실을 다질 동안 시간이 흘러 1983년 드디어 대망의 독자 브랜드 ‘코란도’가 탄생하게 된다.

1984년 11월 동아자동차가
거화자동차 인수
1984년 결국 거화자동차는 동아자동차에게 인수되었다. 1985년 초 거화가 동아자동차에 인수된 직후 85년형 모델이 출시되면서 코란도 브랜드 런칭 이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섀시 코드 또한 기존 CJ-7에서 KH-7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기존 2,800cc 이스즈 엘프 엔진을 과감히 버리고 동일한 제조사 이스즈의 C223이며, 2,238cc 최대 출력 73마력 디젤 엔진을 얹었다.

배기량이 낮아지고 출력도 낮아져 퍼포먼스 부분에서 많은 손실이 이뤄졌지만, 판매는 그럭저럭 이뤄졌었다. 여기에 엔진 및 전기 전장이 24V 전압 제어에서 12V 전압 제어로 변경되었고, 기존 군용차스러운 철제 마감의 대쉬보드와 화물차스럽고 엄청나게 큰 핸들을 버리고, 승용차 느낌의 플라스틱 대쉬보드와 중앙 집중식 계기판을 탑재하였다. 이때부터 픽업 모델이 단종되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생산을 안 하게 되었다. 아 참, 12인승 훼미리 모델도 단종을 하게 된다. 이 모델은 1985년도가 마지막이다.

1988년
코란도 훼미리 출시
1986년 드디어 쌍용차 시절의 각코란도의 모습을 완성하는 코뿔소 앰블렘이 장착된다. 테일게이트가 이전보다 더 커지고 뒷모습이 보다 세련되게 변했다. 이 외형은 10년가량의 세월 동안 유지된다.

이후 1988년 동아자동차는 쌍용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하게 된다. 사명을 변경한 동년도 11월 웨건형 모델인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 이름과 파워 트레인을 공유하지만 웬만한 부품은 공유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차량이다.

차명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투박하고 덩치 대비 좁은 실내공간을 넓혀, 온 가족들과 레저용으로 즐기는 패밀리카 개념으로 출시하게 된다. 1990년 대우중공업 라이센스 생산 엔진인 DC23 엔진이 장착되기 전까지 이스즈 엔진이 주력이었다. 디젤엔진 외에도 전설로 남는 가솔린 엔진도 존재하나, 말 그대로 정말 얼마 팔리지도 않아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와서 제원표에서 제외했다.

사실, 저 대우중공업의 엔진 또한 원판은 이스즈 C223이며 이를 국산화 시킨 게 DC23이며, 대우차의 처음이자 마지막 1톤 트럭 및 코치 모델인 바네트에도 달렸던 엔진이었다. 그래서 과거 오너들이 수리를 맡길 때 ‘이차 바네트 엔진’이라고 말하는 게 그 이유였던 것이었다.

1995년 단종의 길로
접어들었다
1993년, 쌍용이 그동안에 들어온 혹평 중 하나인 실내 내장재를 개선해서 나온 완성형 코란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과연 이게 코란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고급스럽게 변한 실내가 가장 큰 포인트였고, 오랫동안 써먹던 2중구조 프레임 바디는 쌍용이 자체 개발한 3중 구조 프레임으로 바뀌어 강성을 더했다. 1995년 연말 단종이 되기까지 디자인의 큰 변화가 없이 오랫동안 생산해왔고, 1996년에 출시 예정인 뉴 코란도의 자리를 위하여 26년 만에 은퇴하게 되었다.

후에 수많은 올드카 매니아들에게 사랑받는 모델이 되었으며, 다른 지프 코란도 대비 구하기도 수월하고, 정비도 수월하며 심지어 정통 오프로더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여러모로 매력적인 모습을 가진 녀석이니 팬이 존재하고 매니아가 존재하지 않나 싶다.

                                                                                                                                  돌고 돌아 다시
리바이벌하는 쌍용
오늘은 코란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과거의 쌍용은 정말 난잡한 역사를 가진 메이커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복잡한 와중에도 그들이 무엇을 잘 해내는지 알았기에 가능했던 브랜드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이번 쌍용은 J100과 KR10의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다시한번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 하는 움직임이 더러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다. KR10은 결국 다시 오리지날 코란도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모습이고, J100은 렉스턴과 코란도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맡을것으로 보여지는데, 과연 이들이 제시한 그림대로 제대로 내놓을것인가가 관건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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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란도란 이름을 남발한
대가는 어찌 해결할까
쌍용, 그들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내어 출시한 것은 높게 살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장조사를 제대로 하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 정도로 결과물은 참담했었다. 여기에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모델들에게 ‘코란도’라는 이름을 남발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소비자들의 인식은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에서 쌍용은 어떤 식으로 이미지를 개선해 나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J100 또한 쌍용차 내부적으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이번에 못 살리면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쌍용은 과연 과거의 명성에 걸맞은 차가 나와줄지 의심스러운 현 상황에서 쌍용은 어떤 방향으로 소비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줄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해줄 한방을 가지고 나와줄지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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