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의 오프로드
작고 강한 사륜구동
하이리프트부터 짐니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사륜구동 명차들을 다수 배출한 일본이지만, 정작 자국 내 오프로드 문화는 의외로 제한적이다. 국토의 75%가 산악 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호주에 비해 관련 인프라는 부족하며, 국립공원의 대부분은 차량 출입이 제한된다. 그럼에도 일본의 오프로드 마니아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작고 강한 오프로드 문화를 개척해왔다.
도심 한복판은 물론, 깊은 계곡까지 누빌 수 있는 거대한 하이리프트 트럭, 나무 소재로 인테리어를 정갈하게 꾸민 전천후 캠핑카, 그리고 바위를 타 넘는 개조 짐니까지. 일본의 오프로드 문화는 단순한 험로 주행을 넘어 개성과 감성을 담아낸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진화 중이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가능한 길’을 가장 먼저 찾아 나선다..
하이리프트의 부활
몬스터 트럭과는 다른 차원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일본 대도시에는 미국식 몬스터 트럭을 능가할 만큼 과감한 하이리프트 픽업들이 거리를 누볐다. 토요타 하이럭스와 랜드크루저, 미쓰비시 델리카는 당시 젊은이들의 드림카였다. 하지만 버블 경제의 붕괴 이후, 이 문화는 빠르게 쇠퇴했고 현재는 경차들이 줄지은 도로 위에서 일부 마니아들만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4×4 Presents’는 단연 압도적인 존재다.
그들이 개조한 하이럭스는 그야말로 괴물 수준이다. 란쵸 사의 36인치급 서스펜션, 슈퍼 스왐프 타이어, 15×13 휠을 조합해 총 22인치의 리프트 효과를 만들어냈다. 랜드크루저 역시 리프 스프링과 슈퍼 스왐프 타이어, 차체 리프팅을 결합해 17인치 리프트를 구현했다. J55 지프는 토요타의 전동 스티어링 시스템을 이식해 39인치 타이어의 조향을 가능하게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거대함이 아니다. ‘일본식 무모함’과 ‘기술 집착’이 결합된 디테일의 극치다.
일본식 오프로드 캠퍼
델리카가 그 선두 주자
닛산 ‘시마’나 토요타 ‘셀시오’와 같은 세단을 낮게 깔아 ‘VIP Stance’를 추구하는 이들과 달리, 오프로드의 매력은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산속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드립커피를 내려 마시는 낭만도 함께한다. 물론, 이러한 차량들은 산길을 제대로 헤집기 위해 상술한 하이리프트에 준하는 개조가 필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쓰비시 델리카가 있다.
고상형 버스의 승객과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높게 리프트 업된 델리카는, 노출된 디퍼런셜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하지만 실내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고급스러운 나무 소재의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어, 외관과는 대조적인 아늑함을 선사한다. 특히 미쓰비시 후소 캔터를 기반으로 한 캠퍼의 차주는, 호주에서 본 오버랜더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일본은 야영이 허용된 장소가 드물지만, 이들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캠핑지는 화장실과 취사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낭만적인 여정을 가능케 한다.
짐니의 무한한 잠재력
규제 속에 피어난 예술
스즈키 짐니는 일본 오프로드 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이 정도 크기의 차량이 이만한 험로 주파력을 갖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짐니를 진정으로 즐기는 마니아들은 이를 버기카로 개조한다. 적절한 리프트 업과 서스펜션 세팅을 거친 후, 외부 패널을 걷어내고 프론트 액슬부터 드라이브 샤프트, 디퍼런셜까지 토요타 랜드크루저의 부품으로 교체한다. 원래는 훨씬 더 크고 무거운 차량에 쓰이던 이 부품들이 짐니에 적용되면 내구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어 수명이 최대 10배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좁은 국토와 엄격한 규제 속에서도 거대한 트럭을 만들고, 오버랜딩 문화를 일궈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범한 일이다. 하이리프트 트럭부터 짐니 락크롤러까지, 일본의 오프로드 문화는 단순한 비포장 도로 주행을 넘어선 정교하고 독창적인 공예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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