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18기통 엔진 S클래스
BMW 16기통 엔진의 대항마
‘낭만의 시대’ 기념비적 산물

지금은 하이브리드, 전기차가 대세지만, 1990년대는 배기량과 실린더 수로 존재감을 증명하던 시기였다. 이 무렵 BMW는 자사의 플래그십 7시리즈에 무려 V16 엔진을 얹으려는 시도를 시작했고, 이에 맞불을 놓은 메르세데스-벤츠는 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인라인 6기통 엔진 3개를 묶어 무려 18기통 ‘W’형 엔진을 개발한 것이다. 이 엔진은 당시 W140 S클래스에 탑재될 예정이었으며, 모델명은 ‘800 SEL’로 설정됐다.
코드명 M126으로 불렸던 이 8.0리터 W18 엔진은 최대 680마력을 발휘하는 괴물급 유닛이었다. 퍼포먼스 면에서 당시 부가티나 페라리에도 밀리지 않을 수준이었지만, 거대한 엔진의 크기와 연비, 개발 비용 등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결국 양산되지 못했다. BMW의 V16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이 W18 역시 ‘기술의 야망’으로만 남게 됐다.

3개의 인라인 6기통
벤츠 기술의 정수
메르세데스-벤츠가 개발한 W18 엔진은 말 그대로 기계적 예술이었다. M103 기반의 2.6리터 직렬 6기통 엔진 3개를 75도 각도로 묶어 하나의 크랭크샤프트에 연결한 구조로, ‘W’자 형태를 이루는 독특한 실린더 배치가 핵심이었다. 실린더당 두 개의 밸브를 사용하는 36 밸브 버전과 실린더당 5 밸브를 적용한 고성능 90 밸브 버전이 개발되었고, 최고 출력은 680마력에 달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경이로운 수치였고, 6.0리터 V12를 얹은 600 SEL을 한참 웃도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다. 벤츠는 이 W18을 탑재한 플래그십 ‘800 SEL’ 세단을 기획했으며, 기존 S클래스 플랫폼에 이를 억지로 얹는 시도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엔진이 지나치게 넓고 무거운 데다, 냉각과 배기 레이아웃 등 패키징에서 여러 기술적 난관이 발생하면서 문제는 꼬이기 시작했다.
연료 효율성도 문제였다. 실린더만 18개인 이 엔진은 엄청난 연료를 요구했고, 고급 소비자를 겨냥했다 해도 지나친 비효율성은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생산 단가가 높아졌고, 이를 탑재한 차량은 사실상 한정판 수준의 희소 모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벤츠는 현실적 판단 끝에 W18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실린더 18개의 꿈
경제성 앞에서 무너졌다
800 SEL 프로젝트가 최종적으로 중단된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성이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M126 W18 엔진을 실제 차량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엔진 개발은 물론, 서스펜션, 브레이크, 냉각 시스템 등 수많은 부품을 재설계해야 했다. 게다가 판매 수량이 극도로 제한될 것이 분명해, 투자 대비 수익성이 거의 없는 ‘기념비적 모델’에 그칠 상황이었다.
당시 메르세데스는 새로 개발한 6.0리터 V12 엔진(M120)이 이미 충분한 성능을 제공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실제 600 SEL은 벤츠 플래그십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 중이었다. 이에 따라 ‘차세대 궁극의 세단’을 노렸던 800 SEL은 자연스럽게 프로젝트 단계에서 폐기됐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 BMW 역시 V16 엔진을 탑재한 ‘골드피쉬’ 프로젝트를 비슷한 이유로 포기했다. 두 브랜드 모두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했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양산은 불가능했다. 지금의 전동화 추세와 비교하면 다소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자동차 제조사들이 ‘엔진으로 꿈을 꾸던 시절’의 마지막 흔적 중 하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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