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칼 벤츠가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한 이후 135년이라는 역사가 지났다. 오랜 기간 동안 자동차 제조사들은 끊임없이 경쟁해가며 자동차를 발전시켜왔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브랜드가 새롭게 생기고 소멸되었다. 국산 브랜드 중 대우차는 한때 현대차보다 더 잘 나갔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룹이 부도 처리되면서 순식간에 몰락했고, 현재는 쉐보레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우차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수입차 브랜드로는 사브가 있다. 다양한 자동차 기술을 개발해왔으며, 국내에서도 강남 쏘나타의 원조로 불리는 등 잘 나갔던 적이 있었지만 파산 이후 NEVS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그 시절 잘 나갔던 브랜드였던 사브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가 본다.

이진웅 기자

비행기를 만들던 회사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사브는 1937년, 스웨덴 항공 회사인 스뱅스카 이로와 철도회사 AB 스뱅스카 애앙비그스벡스태더나의 항공기 제조부서가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두 회사의 이름에서 반반씩 따와 SAAB로 지었다.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사브는 처음부터 자동차 제조업으로 시작한 회사가 아니다. 비행기 제조업으로 시작해 스웨덴 공군에 항공기와 전투기를 납품해왔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전투기 수요가 급감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사브는 이를 돌파하기 위해 1947년,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첫 모델인 사브 92를 1949년에 출시했다. 비행기 제작 기술로 쌓은 노하우를 자동차에 접목했으며, 첫 모델인 사브 92는 비행기 날개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으며, 공기 저항 계수는 0.30으로 당시 최소 수준이었다.

1960년대에는 자동차 대회에도 다수 참가했다. 핀란드 100호 랠리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 영국 RAC 랠리, 몬테카를로 랠리 등 유럽은 물론 미국 랠리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브라는 브랜드를 알렸다.

고성능과 안전을
동시에 만족한 사브
사브의 전성기는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1977년, 항공기의 터빈을 엔진에 적용한 터보 승용차를 개발했으며, 2.0리터 엔진으로 145마력을 발휘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고성능이었다. 이후 C, D 세그먼트 급에서 터보차저를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이외에도 볼보에 가려져서 그렇지 안전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다. 기본적인 차체를 튼튼하게, 그리고 사고 시 여파를 고려한 설계를 해왔으며, 새로운 안전장치 개발에 힘썼다. 사브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로 변속기 밑에 시동키 홀이 있는 점인데, 무릎이 시동키에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한 볼보와 마찬가지로 신차 설계 시 사고분석 연구진들이 실제 발생한 교통사고들을 토대로 탑승자의 안전에 대한 연구 분석들을 반영한다. 그래서 공인 충돌 테스트에서 탑 세이프티 픽에 선정되는 일이 많았다.

이 때문에 사브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고성능에 안전을 더한 브랜드라는 인식이 각인되었다. 유럽에서는 성능 쪽으로 좀 더 부각되었고, 미국에서는 안전 쪽으로 좀 더 부각되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사브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진 데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추세에 지나치게 성능만 강조하다 보니 외면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사브 경영진들은 “소비자들이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며, 다시 전통을 중시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브 경영진들의 오판으로 인해 판매량은 점차 줄어들었고, 성능과 안전을 중시하다 보니 개발비용이 너무 높아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결국 사브 그룹은 자동차 부분을 1989년에 GM에 매각했다. GM은 사브가 디자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기존 고객층을 유지하기 위해 성능만을 중시했고,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식 디자인을 적용한 모델을 출시했다. 2세대 사브 900은 오펠의 플랫폼을 수용하고 전통과 진보를 모두 담은 구성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했으나 적자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했다.

설립 74년 만에
파산을 맞은 사브
판매량 저조로 적자는 계속 누적되었고, GM은 스웨덴 정부에 금융구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거절하자 2008년, 결국 사브를 매물로 내놓았다. 매물로 나왔을 때 사브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는데, 전통과 정체성은 잃은지 오래되었으며, 새로운 돌파구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2010년, 네덜란드 스포츠카 제조사 스파이커에게 인수되었다. 하지만 스파이커는 소규모 제조사였던 탓에 15억 달러라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경영 위기에 빠졌고, 부품 업체에 납품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생산이 중단되었다. 결국 심각한 자금난을 겪다 2011년 12월, 파산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74년간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현재는 전기차 브랜드로
명맥을 이어오는 중
사브 파산 이후 2012년, 중-일 자본으로 구성된 NEVS가 사브를 인수했다. 하지만 사브 상표권 확보에 실패하게 되면서 브랜드 부활에는 실패했고, NEVS 자체 전기차 브랜드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사브 9-3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1회 충전 시 약 300km 거리를 주행할 수 있으며 최고 속도는 140km/h까지 낼 수 있다. 사브 시절의 기술진과 임원들을 다수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차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강남 쏘나타의 원조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았다
사브는 국내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었다. 무려 1988년부터 국내에 수입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사브는 국내에 진출해 있었다. 볼보와 함께 스칸디나비안 럭셔리를 지향하며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고성능, 튼튼한 차라는 장점 덕분에 꾸준히 판매되었다.

특히 사브 9000은 포드 세이블에 이어 강남 쏘나타라고 불렸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1997년, 한정판 모델이었던 9000 프레스티지 모델도 시판되었을 정도였다. 이후 수입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면서 일본차나 독일차에 밀렸지만 9-3과 9-5도 어느 정도 판매되었으며,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명차로 기억되고 있다.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많은 기술들을 역사에 남겼다
사브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브랜드로도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최초로 개발한 기술들이 많다. 앞서 터보차저 장착을 비롯해 전투기 비상탈출장치에서 영감을 받은 선루프 최초 개발과 비행기 착륙과 고도 조절을 목적으로 활용되는 스포일러를 자동차에 처음으로 적용했다.

이외에도 헤드램프 와이퍼, 자동 복원 범퍼, 열선 시트, 배기가스 정화장치, 연료 자동 조절장치, DOHC, 직접 점화 장치, 안전벨트 프리텐셔너, 고성능 바이오 에탄올 엔진을 개발, 장착했다. 블랙박스를 차에 처음으로 장착한 회사도 사브다. 비록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사브가 개발한 많은 기술들이 지금도 자동차 업계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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