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는 올해 서울 모터쇼를 통해 재도약 카드 두 가지를 소개했다. 대형 SUV ‘트래버스’, 픽업트럭 ‘콜로라도’, 그리고 최근에는 소형 SUV ‘트레일블레이저’도 재도약 카드 대열에 합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로 트래버스가 정식으로 출격한다는 소식도 최근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부산 모터쇼 공개와 동시에 판매가 시작되었던 ‘이쿼녹스’와 달리 모터쇼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정식 출시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진짜로 출시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라며 의문을 품기도 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쉐보레의 재도약 카드,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한국지엠에게 남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 그리고 트래버스에게 필요한 전략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김승현 기자

이쿼녹스에 이은 카드
기대 반 걱정 반
이쿼녹스를 잇는 재도약 카드다. 합리적인 대형 SUV 선택지가 늘어나길 기대하는 소비자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쿼녹스처럼 실패의 길을 가진 않을까 걱정하는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그간 충분한 기회가 있었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순간도 많았음에도 좋지 못한 결과를 반복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남아버린 기회를 모두 써버린 것 같지만 트래버스에게 결정적 기회 몇 가지가 주어졌다. 시기적으로, 그리고 지금 경쟁 모델들에게 놓인 상황들이 트래버스에게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1. 팰리세이드 대기 1년
수요를 뺏어올 수 있는 기회
팰리세이드 대기 수요가 상당하다. 2개월 3개월 수준이 아니라 보도에 따르면 1년이나 대기해야 하는 소비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고객이 많이 몰려 그렇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력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구조에 놓여있는 것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한다.

국내 수요만 3만 5,000대가량이 밀려있는 가운데 미국 출시도 앞두고 있어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지난 4월 노사 합의로 2,400대를 증산했지만 여전히 수요를 따라가기는커녕 대기수요만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북미 생산 물량까지 더해지면 포화상태를 넘어 수습 불가 상태로 번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라는 것이다.

대기 기간이 점점 늘어지고 있는 만큼 빠지는 수요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팰리세이드에서 다른 대형 SUV를 대안으로 보고 있는 고객들도, 팰리세이드 동호회 정보에 따르면 아예 최근 출시한 다른 자동차 군으로 넘어가길 고민하는 고객들도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트래버스에게는 수요를 뺏어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열린 것이다. 좋은 기회인 만큼 적극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디젤 SUV 구매를 고민하던 고객이 고배기량 가솔린 SUV를 덜컥 구매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넘어온 고객 10명 중 1명이라도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가격이나 상품 구성, 아니면 출시 시기 어느 하나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재도약을 외친 이상 말이다.

2. “팰리세이드 경쟁자”가 아닌
“익스플로러 경쟁자”가 되어야…
가장 어려운데 가장 큰 기회
지금 한국지엠 쉐보레에게 가장 필요한, 그리고 동시에 가장 잡기 어려운 기회 중 하나다. 쉐보레가 이 기회를 잡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자동차를 구매하는 주요 고객층인 40대와 50대는 대우자동차가 한국지엠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생생하게 지켜봤다. 즉, 이들의 생각 속 어딘가에는 “쉐보레는 국산차다”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지엠이 최근에 재도약 카드로 내놓거나 앞으로 내놓을 카드들 모두 해외에서 생산되어 오는 쉐보레, 즉, 엄연히 따지면 수입차다. 쉐보레라는 브랜드도 한국이 아닌 미국 브랜드이지만 많은 한국 소비자들은 국산차라고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생산되어오는 트래버스와 콜로라도를 어떻게 ‘국산차’ 이미지로부터 멀어지게 할지 깊게 고민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쿼녹스가 왜 실패했나 생각해보면 답이 금방 나온다. 이쿼녹스도 미국에서 전량 수입되어 한국에 판매되는 구조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국지엠은 스스로 경쟁상대를 싼타페, 쏘렌토, QM6로 잡았다. 처음으로 수입 판매되는 자동차이다 보니 그들 입장에서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최선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목한 경쟁자들보다 선택지가 적었을 뿐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가격도 아니었다.

트래버스는 이쿼녹스로 이미 모험을 한번 치른 뒤 두 번째로 등장한 카드이기 때문에 좀 더 치밀한 전략을 펼칠 수 있다. 트래버스는 경쟁자를 ‘팰리세이드’가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할 ‘익스플로러’로 못 박고 가야 한다. 잘 생각해보라. 팰리세이드 주력 모델은 디젤, 익스플로러 주력 모델은 가솔린이다. 그리고 팰리세이드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국산차, 익스플로러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수입차다.

트래버스는 어떤 자동차와 더 가까운가. 트래버스의 주력 모델은 가솔린, 그리고 미국에서 생산되는 수입차… 그럼에도 많은 한국 소비자들은 트래버스 경쟁 상대로 익스플로러가 아닌 팰리세이드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된 당연한 흐름이기 때문에 이것이 옳다 그르다를 따질 수는 없다.

트래버스는 빠르면 8월, 그렇지 않으면 9월쯤 국내 출시 예정이다. 신형 익스플로러 국내 출시 시점에 맞춰 경쟁 구도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도 충분히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익스플로러 출시 시점과 동떨어지면 오히려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 신차효과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한국 소비자 인식을 어떻게 바꿔놓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팰리세이드가 아닌 익스플로러를 공략하라.

3. XT6, 익스플로러, 에비에이터
한국 몰려오는 새로운 미국 SUV
소비자 관심이 많이 몰릴 때
두 번째 기회와 연결된다. 익스플로러 출시 시기쯤 캐딜락과 링컨도 새로운 SUV를 한국 시장에 출시 예정이다. 관련 신차 소식이 많을수록 소비자뿐 아니라 언론들의 관심도 어느 한 쪽으로 많이 쏠리기 마련이다. 익스플로러는 물론이고 캐딜락과 링컨이 출시 예정인 신차들도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심이 몰릴 것이다.

관심이 몰려있을 때만큼 고객을 공략하기 좋은 기회는 없다. 두 번째 내용에서 언급했듯 트래버스는 미국에서 수입되어 판매되는 쉐보레 자동차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을 제대로 바꿔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카드다.

콜로라도에겐 필요 없고
트레일블레이저는 못하는 것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 픽업트럭은 현재 ‘렉스턴 스포츠’가 유일하다. ‘콜로라도’는 경쟁자를 치밀하게 공략하기보단 스스로 좋은 가격과 구성을 갖추면 된다. 그리고 ‘트레일블레이저’는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다. 수입되어 오는 쉐보레에게 도움 될만한 것이 없다.

‘트래버스’만 할 수 있는 것이고 트래버스에게 주어진 기회다. 그간 많은 사례를 통해 배워왔듯 소비자 인식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그들의 인식이 여론이 되고, 그들의 인식이 곧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소비자도 알고 있는 기회
이걸 놓치면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고 못 박는 것
이미 소비자들은 한국지엠의 문제를 알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한국 시장 철수설”을 제기해왔고, 판매량 상승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기회를 안 준 것이 아니라,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들 스스로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만약 트래버스로 잡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자 결정적 기회마저 놓친다면 앞으로 출시될 콜로라도와 트레일블레이저가 무난한 행보를 걸을 수 있을까.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재도약 기회를 못 잡는 것이 아니라 안 잡는 것이라 못 박는 셈이다. 신뢰 회복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