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문철TV)

급발진은 운전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차가 급가속하는 현상으로 종종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는 급발진은 존재할 수 없다며 급발진을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운전자의 실수로 보고 있다. 즉 책임 회피를 위해 결함을 운전자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차에는 EDR이라는 기록 장치가 장착되어 있지만 이 역시 급발진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에 몇몇 운전자들은 사비를 들여 페달 주변에 블랙박스를 장착하고 있다. 브레이크를 밟은 상황에서 차가 멈추지 않는다면 차에 결함이 있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제조사도 페달 블랙박스가 있다면 책임을 좀 더 명확하게 가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장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페달 블랙박스를 제조사가 못 다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자.

이진웅 에디터

(사진=한겨레)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
페달 주변에 블랙박스 설치
급발진과 관련된 문제는 꽤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었다. 하지만 급발진 문제를 자동차 제조사가 차량 결함이 아닌 소비자 과실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결함은커녕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사실조차 규명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더라도 대체로 패소하는 경우가 많으며, 매년 억울한 소비자들이 나오는 실정이다.

(사진=MBC)

제조사가 결함을 인정하지 않다 보니 몇몇 소비자들은 블랙박스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EDR 기록 분석은 한계가 있다. 제조사는 EDR에 담긴 내용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수사기관에 제출하지 않고 있으며, 전자식 브레이크의 경우 먹통이 된다면 EDR에 기록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페달 블랙박스는 카메라를 페달 주변에 달아 브레이크를 밟는지, 가속페달을 밟는지, 페달을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핸들은 어느 쪽으로 돌리는지 녹화한다. 아무래도 급발진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영상이 있다면 제조사가 운전자 실수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MBC)

블랙박스를 페달 주변에 설치하는 움직임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2012년, 김필수 교수는 페달 블랙박스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었다. 2014년 보도에 따르면 운전자들이 급발진 사고가 났을 때 가장 기댈 수 있는 건 제조사나 공공기관이 아니라 이런 블랙박스를 꼽았다. 그러다 보니 블랙박스 설치 업체에서도 페달 블랙박스 관련 문의가 많이 늘었다고 한다.

2015년에는 자동차급발진연구회에서 급발진 규명 장치인 K-BUD를 상용화했다. 7만 원대 가격으로, 운행기록 자기 진단 장치(OBD)에 설치해 차량 속도, 엔진 회전수, 가속페달 작동량, 제동 페달 작동 유무, 차체 가속도 등 운행 기록을 저장하는 일종의 블랙박스다.

(사진=SBS)

소비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급발진 원인이 인정된 것은 단 한건
하지만 이러한 소비자와 블랙박스 관련 업체, 자동차급발진연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개선된 점은 거의 없다. 사고가 급발진이 원인으로 인정되어 승소해 배상 판결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뿐이었으며, 그것도 지난 11월로 꽤 최근에 인정되었다.

2018년, A씨는 BMW 승용차에 남편을 태우고 호남고속도로 부근을 지나던 중 갓길 위를 지나다 도로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들이받았다. A씨와 남편은 이 사고로 숨졌다. 유족들은 사고 이틀 전 장거리 운행을 위해 점검을 의뢰했으며, 다음날 정비를 마치고 차를 돌려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씨가 차를 정상적으로 운전했지만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SBS)

1심에서는 BMW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2심에서는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는 정상적으로 차를 운행하고 있었고, BMW측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가고가 발생했다”라며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판단된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A씨가 사고 전 300m 넘는 거리를 비상 경고등을 켠 채 갓길을 달린 점에 주목해 A씨가 단순히 브레이크 페달을 가속 페달로 착각한 것은 아니라고 봤으며, 사고 발생 시각이 오전 11시경이고, 맑은 날이었다는 점, 운전자에게 건강상 문제가 없었던 점, 엔진 결함이 있을 경우 브레이크 페달이 딱딱해질 가능성도 있는 점을 들어 BMW측이 유가족 2명에게 각 4천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단 해당 사건의 경우 페달 블랙박스는 장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조선일보)

피해 보상 사례가
늘어나기 때문
일부 소비자들은 차를 만들 때 제조사가 처음부터 페달 블랙박스를 장착해 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조사 차원에서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한다면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릴 수 있으며, 급발진 사고 감소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제조사라도 페달 블랙박스를 순정으로 제공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페달 블랙박스 영상이 증거가 되어 급발진이 인정되는 사례가 많아진다면 자연스럽게 피해 보상 금액이 늘어날 것이며, 심하면 차를 리콜시켜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제조사의 손해가 커진다.

(사진=한문철TV)

페달 블랙박스 설치가
즉 급발진을 인정하는 것
또한 페달 블랙박스를 제조사 차원에서 설치하는 것 자체가 급발진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제조사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급발진은 기술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순간 그 주장을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또한 급발진을 인정한다는 것은 제조사가 만드는 차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와의 신뢰성을 위해서라도 순정으로 페달 블랙박스 옵션을 제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진=조선일보)

제도적인 문제도
함께 고쳐야 한다
소비자들은 페달 블랙박스와 더불어 제도적인 문제도 함께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급발진 등 자동차 결함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증명해야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제조사들은 관련 자료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만큼 유리한 위치에 있는 반면 소비자들은 관련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비자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레몬법도 이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했다.

미국에서는 결함과 관련된 것을 제조사가 문제없음을 증명하는 구조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발진 문제가 인정되는 사례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제도적인 문제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사진=한겨레)

급발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산업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전기차라도 급발진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터에 이상 전력이 공급되거나 회로에 문제가 발생해 모터가 과하게 돌아갈 수 있으며, 그 동력이 바퀴로 전달되면 급발진이 나타날 수 있다. 즉 앞으로도 급발진 문제는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급발진 문제를 해결하기는 지금으로서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다. 제조사들이 급발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향후 자동차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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