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없거나
기대가 없을 때
관심이 없거나 기대가 없다면 평소에 크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S클래스’에게 사치스러울 정도로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기대하지만 페라리만큼 스포티한 움직임을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페라리에게는 머리가 뇌보다 빨리 젖혀질 만큼 빠른 속도를 기대하지만 반대로 마법의 양탄자를 탄 것 같은 승차감을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기자동차를 보며 사람들은 대부분 얼마나 오래 달릴 수 있고, 얼마나 충전 시간이 빠르며, 얼마나 북극곰과 친한가에 대해 따진다. 전기자동차를 보고 얼마나 빠른가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고 강력한 전기자동차 성능에 가끔 놀라곤 한다. 평소 생각지 않던 것이 때로는 큰 인상을 남긴다.

“캐딜락 SUV 모델들로
오프로드 시승기 어떠실까요?”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됐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SUV가 그렇듯 ‘캐딜락 SUV’하면 우리는 대부분 ‘도심형 SUV’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 역시 ‘캐딜락 SUV’하면 잘 포장된 도로가 있는 도심에서 품위 있게 달리는 이미지만 떠올렸을 뿐 오프로드와 레저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저희 SUV들이 대부분 도심형 SUV 이미지만 강조되고 있다 보니 레저와 오프로드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성도 느끼고 있습니다. XT5와 에스컬레이드로 오프로드 시승기 어떠실까요?” 평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매력적인 모습이 있기에 관계자가 자신 있게 원했을 터. 오늘 오토포스트 시선집중은 ‘캐딜락 XT5’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김승현 기자
사진 박준영 기자

간단히 살펴보는
XT5 AWD 제원
XT5는 314마력, 37.5kg.m 토크를 내는 V6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과 자동 8단 변속기를 장착한다. 공인 복합 연비는 8.7km/L다. 크기 제원은 길이 4,815mm, 너비 1,905mm, 높이 1,705mm, 휠베이스 2,857mm, 그리고 공차중량은 2,030kg이다.

시승했던 자동차는 상위 트림 ‘플래티넘’이었다. 공식 가격은 7,393만 원이며, 확인 결과 975만 원 정도 공식 할인이 제공되고 있다. 이 할인율을 적용하면 차량 가격은 6,420만 원 수준, 취득세까지 고려한 실구매 가격은 6,830만 원 수준이다.

Q. 우선 일상에선 어떤가?

A. 무엇이든 무난하다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도심형 SUV’로서 얼마나 괜찮은가를 살펴보자. SUV를 찾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때, ‘XT5’는 일상생활에서 무난하다. 314마력, 37.5kg.m 토크를 내는 엔진과 8단 변속기는 도심과 고속도로 주행 모두 여유롭다.

V6 엔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드러운 주행 질감을 유지한다. 일상 주행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정숙함이다. 대부분의 SUV가 그렇듯 전고가 높아 노면 소음이 세단보다 덜하다. XT5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잘 차단하고, V6 엔진도 부드럽게 움직여 정숙함을 더욱 강조할 수 있었다. 미국 자동차라 푹신한 승차감을 기대하실 수도 있으나 여느 SUV처럼 푹신함보단 통통 튀는 듯한 전형적인 SUV 느낌이 강하다.

Q. 가족들을 위한 차인가?

A. 가족들과 타기에도 무난하다
생각보다 차체가 크다
과하게 오너 드라이브 성격으로, 그렇다고 쇼퍼를 위한 자동차로도 치우쳐져 있지 않은 SUV이기 때문에 앞자리에 앉아도, 뒷자리에 앉아도 어색하지 않다. 뒷자리 승객을 위한 호화스러운 버튼이나 장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과 타고 다니기에는 큰 문제 없는 SUV다.

뒷자리가 광활하게 넓지는 않다. 그렇다고 좁은 것도 아니다. 2열 공조 장치를 별도로 제어할 수 있어 기복이 심한 날씨에도 모두가 쾌적하게 탑승할 수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특유의 넓은 맛은 없지만, 대신 아늑한 맛을 잡았다.

Q. 레저를 즐기기 좋은가?

A. 오프로드 코스를 찾아갔다
가장 큰 장점은
안심할 수 있다는 것
담당자가 원했던 아웃도어 느낌을 살리기 위해 촬영지와 시승 코스를 가평과 춘천 사이를 오가는 지역으로 잡았다. 담당자가 또 하나 요청했던 것은 낚시 콘셉트다. 이에 따라 거의 10여 년 만에 낚시 도구들도 챙겨 시승 길에 올랐다. 긴 낚시 도구들을 비롯한 여러 캠핑 장비들을 트렁크에 실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사실 미니밴이나 대형 SUV, 혹은 픽업트럭만큼 캠핑 활동에 주력을 둔 SUV는 아니다. 다만 낚시처럼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레저 활동이나 오프로드 주행 정도는 충분히 재미있게, 그리고 쾌적하게 즐길 수 있는 자동차다. 도심형 SUV로 개발되었고 도심형 SUV로 강조되고, 있지만 SUV 본연의 역할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뿐이었다.

오프로드로 유명하다는 곳을 찾아갔다. “차량 통행금지”라는 표시를 보고 되레 긴장했으나, 마을 관계자에 따르면 “사륜구동 차량들 외에 통행금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초입부터 중반까지는 길이 나름 잘 닦여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도로 폭이 좁아지고, 길도 점점 험해졌다.

밭고랑처럼 도로 가운데 부분이 솟아있어 전고가 낮은 차량들은 지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XT5는 무리 없이 주행을 이어갔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모래가 많은 급경사 구간 같은 곳에서도 접지를 잃지 않고 페이스를 무난하게 유지해갔다.

거의 정상에 도달했을 즘 갈림길이 하나 나왔다. 오른쪽 길은 본래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던 길, 왼쪽 길은 내비게이션 지도에도 뜨지 않는 길이었다. 이왕이면 더 테스트를 해보고 싶어 왼쪽 길을 택했다. 본격적으로 오프로드가 시작된 것이다.

갈수록 노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우거진 수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진흙 구덩이는 심심할 틈 없이 나왔다. 나무가 그대로 쓰러져있을 정도로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는 도로였다. 급경사 코너 구간도 있어 자칫 오르막에서 페이스를 잃으면 그대로 미끄러질듯한 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경사가 매우 심한 곳에선 바퀴가 헛도는 듯하다가 이내 그립을 잡고 안정적으로 치고 올라갔다. 바로 옆은 절벽이었고, 갈수록 길이 아닌 것 같은 길이 반복되었다. 날도 점점 어두워져 모험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마땅히 차를 돌려나갈 곳도 흔치 않아 공간이 약간 넓어진 곳에서 차를 돌려 빠져나왔다. 이렇게 주행한 시간만 두 시간가량이다. 경로 자체가 길었던 것도 있지만 길 자체가 매우 험하여 들어가고 나오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길이 너무 험한 탓에 차에서 내릴 수가 없어 카메라에는 차마 해당 지역을 담지 못했다. 1시간 반 동안 산속에서 헤맨 뒤 아스팔트를 밟으니 세상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지프 랭글러’나 ‘랜드로버’같은 정통 오프로드 SUV만큼 성능을 발휘한다면 분명 거짓말이다. 우리가 갔던 오프로드 코스는 길 자체가 험할 뿐 큰 바위를 넘거나 1미터 넘는 깊은 수심을 도강해야 하는 곳은 아니었다. 거대한 장애물을 넘어가야 하는 곳에서는 한계가 뚜렷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가 갔던 곳에서만큼은 제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했다.

만약 가는 길에 차체만큼 큰 바윗덩어리라도 있었다면 진작에 차를 돌려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주행 내내 ‘XT5’는 페이스를 크게 잃지 않았고, 좀 더 극한으로 몰아붙여보고 싶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주행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안심할 수 있어서였다. 간혹 경사가 매우 급한 진흙 노면을 만나면 바퀴가 헛도는 등 페이스가 잠시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불안함이 극도로 커지지는 않았다. 페이스를 재빨리 되찾아 오히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해줬다. 도심형 SUV답게 차분하게 디자인된 실내를 보며 주행한 덕일 지도 모르겠다.

다만 도심형 SUV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낸 것은 아니다. 박준영 기자가 후속편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에스컬레이드’는 오프로드에서 오히려 승차감이 좋아졌다. 렉스턴 스포츠도 이와 비슷한 성향이다. 잘 포장된 도로에서는 트럭같이 투박한 승차감이지만, 오프로드에선 오히려 푹신푹신하고 안정적으로 험한 도로를 통과한다. 단순히 이야기하면 속도를 내며 오프로드 주행이 가능하고, 도심 주행보다 오프로드 주행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XT5는 속도를 내면서까지 오프로드를 즐길 정도는 아니다. 포장된 도로에서 정숙하고 안정적이라고 해서 오프로드에서까지 푹신한 승차감을 기대했다간 실망만 클 것이다. 도심형 SUV 치고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을 갖췄다는 것이지, 랭글러나 버기카처럼 모든 오프로드 코스를 마스터할 수준은 아니다.

Q. 그렇다면 스포티한 주행은?
A. 이 부분도 꽤 의외였다
오프로드 코스에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했고, 스포티한 주행에서 기특한 모습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SUV가 ‘Sport’ 주행 모드를 갖추고 있지만 막상 스포티한 모습을 제대로 뽐내는 SUV는 없다. 애초에 고성능 SUV로 태어난 AMG나 M, 혹은 포르쉐 카이엔이 아니라면 말이다.

일반 도심형 SUV에게 ‘포르쉐 카이엔’만큼 강력하고 민첩한 성능을 바라는 것은 무리이자 욕심이다. 적절히 스포티하고, 적절히 민첩하면 된다. 운전자가 가끔 Sport 모드를 필요로 할 정도로 말이다. Sport 모드를 켜고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엔진 사운드였다. 엔진 회전수가 높아질수록 자연흡기 엔진 특유의 카랑카랑하면서도 부드러운 소리가 꾸밈없이 귓가로 들려왔다.

잔잔한 코너에서는 움직임이 꽤 민첩하다. 연속되는 코너에서도 뒤가 날리거나 차체가 흐트러지는 듯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깊은 코너에서는 2톤이 넘는 중량과 높은 무게중심 때문에 언더스티어 성향을 조금 내보였다. 후륜구동 오버스티어 성향이 돋보이는 독일 고성능 SUV를 따라가려 했지만 완전히 따라잡지는 못했다.

Q. 섬세한가?

A. 아직 캐딜락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다. 캐딜락 CEO 스스로 “독일 차를 표방하고 있다”라고 말할 만큼 그들은 독일 차를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다. 주행 능력에서도 열심히 따라가려는 모습이 엿보이고, 눈에 보이는 만듦새에서도 독일 차를 따라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섬세함까지는 따라가지 못했다. XT5는 아직 세대교체되거나 부분변경된 모델이 아니기 때문에 현행 캐딜락 모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볼 때마다 2퍼센트 부족한 것들 말이다.

블랙 하이그로시 재질이 실내 디자인에 적절히 쓰이면 보기도 좋고 고급스럽다. 그러나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이라면 꼭 피해야 하는 재질이기도 하다. XT5는 운전자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을 블랙 하이그로시 재질로 마감했다. 비상등 버튼, 볼륨 조절 버튼, 공조장치 조절 버튼을 누를 때마다 지문이 남는다.

비상등은 말 그대로 비상 상황에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물리 버튼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XT5의 비상등 버튼은 터치 식이다. 위치도 운전자 쪽이 아닌 조수석 쪽에 가깝다. 또 다른 위험 상황에 쓰이는 스티어링 휠 경적 버튼 범위도 지금보다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능력을 두루 갖췄다
오늘 시승기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XT5는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모든 능력을 두루 갖췄다. ‘롤스로이스 컬리넌’처럼 럭셔리 SUV로서 마스터 단계에 있는 것도, ‘포르쉐 카이엔’처럼 스포츠 SUV로서 완벽한 것도, 그렇다고 ‘지프 랭글러’처럼 오프로드 SUV로서 완벽한 것도 아니다.

XT5에게 무난함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으나, 카이엔이나 랭글러에게도 완벽함이 장점이라면 장점, 단점이라면 단점일 것이다. 카이엔은 스포츠 SUV로서 완벽하지만 오프로드 SUV로서는 완벽하지 못하고, 랭글러는 오프로드 SUV로서 완벽하지만 편안한 승차감을 위한 자동차는 아니다.

“무난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라던 어떤 독자의 의견이 떠오른다. 무난하다는 것은 곧 여러 가지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평균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고, 반대로 어느 하나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XT5는 이런 사람을 위한 자동차다. 럭셔리함을 초점으로 둔 도심형 고급 SUV를 원하면서도 가끔 가족들과 레저 활동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으면서, 오프로드 환경에서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자동차, 동시에 도심과 오프로드에서 부담 없이 몰 수 있는 SUV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오토포스트 시선집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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