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은 끊임없이 변화를 맞이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자동차는 시장에서 도태되며 새롭게 트렌드를 주도하는 자동차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어쩔 땐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자동차”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현역 시절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추후 단종이 되고 나서야 그 차량의 가치가 재조명되는 경우도 있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추억의 자동차는 있을 터, 그때 그 시절 우리의 추억 속으로 잠들어버린 수많은 국산차들을 재조명해본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추억 속의 명차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박준영 기자
쌍용차의 진정한 멋
듬직했던 무쏘와 코란도
90년대부터 자동차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그 시절 쌍용자동차는 그야말로 듬직한 탱크 같은 이미지가 가득했다. 지금은 사라져 볼 수 없는 ‘무쏘’와 옛 ‘코란도’ 이야기다. 단순히 벤츠에서 파워트레인을 받아온 사실 때문에 이차가 재조명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절 쌍용차는 다른 국산 제조사들에선 볼 수 없었던 그들만의 스타일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수많은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아 왔으며 좋은 호응 덕분에 쌍용차의 역사 속 가장 호황기를 누렸던 시절이기도 하다. 코란도 훼미리 이후 자신감이 붙었던 쌍용차는 무쏘를 당시 쌍용차의 최대 프로젝트 중 하나로 진행하였고, 김석원 회장은 평택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여 개발 상황을 확인하고 꼼꼼히 체크했을 정도였다.
무쏘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현대기아차나 대우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통 SUV에 가까운 보디라인과 터프한 외모, 여기에 내구성이 좋은 벤츠 엔진까지 더해졌으니 당시 기술력이 부족해 일본 자동차 브랜드들의 엔진을 가져다 쓰던 현대차와도 확실한 차별성을 두었었다.
“쌍용이 가장 잘만들었던 차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무쏘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쌍용차가 대우차로 넘어가고 난 뒤부터 무쏘의 입지는 점점 위태로워졌고 결국 2005년 카이런에게 후속을 물려준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말았다.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전국 수많은 대학생들의 로망이었던 코란도 역시 쌍용차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명차였다. 지금 봐도 다부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코란도의 디자인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니 당시 얼마나 아우라가 강했을지는 쉽게 체감할 수 있다.
이후 쌍용차는 렉스턴을 통해 그 강인한 이미지를 이어가는듯했지만 무쏘 후속으로 등장한 ‘카이런’과 코란도 후속으로 등장한 ‘코란도 C’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지게 되어 쌍용차만이 보여 줄 수 있었던 디자인 감성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쌍용차가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쌍용차를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레트로 감성을 원한다.
역대급 승차감을 자랑했던
현대 다이너스티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무쏘 코란도만큼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차가 바로 현대 다이너스티다. 8,90년 대생들은 이차가 한창 활약할 당시 당시 캔이 불렀던 비겁하다~욕하지마~를 열심히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뉴그랜저의 후속모델로 등장한 다이너스티는 고급스러운 외관 디자인과 차급에 어울리는 대배기량 엔진, 요즘 차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편의 사양이 적용되어 당시 ‘국산차 끝판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20년이 더 지난 지금 보아도 한눈에 고급차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다이너스티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회자될 수 있었던 것일까.
다이너스티는 당시 현대 플래그십 세단이었던 뉴그랜저를 기반으로 제작된 후속모델이었다. 같은 차대를 사용하였기에 각이 진 차체 형상이나 실내 인테리어는 뉴그랜저와 비슷했지만 에쿠스가 출시되기 전까지 현대차의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로 활약했으며 특유의 고급스러움과 부드러운 승차감은 아직도 많은 어르신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 시기 그랜저와 다이너스티의 물침대 같은 승차감에 익숙해진 일부 어른들은 탄탄한 독일차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후문도 있을 정도였다.
V6 3.5 모델은 롱 휠베이스 버전으로 주문 제작되는 등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최고급 세단이라는 칭호에 걸맞는 다이너스티였기에 아직도 현대차가 생산한 명품 세단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90년대에 출시된 다이너스티엔 지금 생산되는 현대 고급 세단에도 들어가지 않는 ECS 전자제어식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되기도 했었다. 물침대 승차감의 비결이었다.
다이너스티가 회자되면서 꼭 언급되는 차량이 바로 ‘아슬란’인데 아슬란 역시 그랜저를 고급화한 전륜구동 세단으로 제네시스와 현대차가 분리되며 새로운 현대 플래그십 세단을 만들고자 하는 현대차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이너스티처럼 그랜저를 기반으로 만든 고급 세단이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후속 모델로 언급되지만 성공적이었던 다이너스티와는 다르게 아슬란은 실패자의 길을 걷고 말았다. 그랜저와의 차별화에 실패한 아슬란은 결국 쓸쓸한 단종을 맞이했고 애매한 포지셔닝이 시장에 제대로 먹혀들지 못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아슬란의 이름을 다이너스티로 정하여 명차를 부활시켰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 당시 다이너스티도 그랜저를 고급화한 세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대차 입장에선 과감하게 다이너스티라는 이름을 부활시키긴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다이너스티가 출시될 당시엔 그랜저 이상의 플래그십 세단이 없었지만 지금은 제네시스 브랜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랜저와 제네시스 G80 사이의 포지셔닝이라는 자체가 애매한 세그먼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랜저보단 고급스러워야 하지만 제네시스를 넘어서선 안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그랜저와 많은 부품을 공유했던 아슬란은 차별화에 실패했고 짧은 역사를 남긴 채 사라지고 말았다.
제대로된 스포츠 루킹카
현대 투스카니
90년대에 등장했던 현대 스포츠카를 떠올려보면 2도어 쿠페였던 스쿠프에 이어 티뷰론과 티뷰론 터뷸런스가 수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불태웠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차량들의 주행성능은 스포츠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2도어 쿠페 스포츠카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001년 티뷰론 터뷸런스의 후속으로 세상에 등장한 투스카니는 국산 스포츠 루킹카의 끝판왕 자리를 단숨에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지금봐도 모난 곳 없는 균형잡힌 디자인은 당시에도 평이 좋았으며 2.0 엔진뿐만 아니라 V6 2.7 엔진이 장착되어 감성적인 측면에서도 이전 티뷰론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투스카니는 해외에서의 반응도 좋은 편이었다. 영국 BBC의 탑기어에선 ‘베이비 페라리’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북미에선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출력을 가지고 있어 튜닝카로도 많은 인기를 끄는 모델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 투스카니 덕분에 수많은 튜닝 데이터들과 튜닝 문화들이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터보차저를 올려 500마력을 넘는 투스카니들도 존재했었으며 비공식적으론 700마력이 넘는 차도 존재했었다는 후문이다. 가격도 2.0GL 기본형은 1,131만 원에서 시작했으며 2.7 엘리사 슈퍼형은 2,223만 원으로 경쟁력이 있었다.
이 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기아 프라이드
“어느 가정집에나 프라이드 한대 정도는 꼭 있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감이 있는 이 프라이드 초기형 모델은 기아차의 걸작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판매가 된 베스트셀러였다. 80년대 후반 마쯔다가 설계하고 포드가 판매하였으며 생산은 기아차가 맡은 프라이드는 세 자동차 제조사의 합작품이었다.
기아차는 이 대가로 미국 포드 산하 자회사인 머큐리 세이블을 라이선스 생산하여 국내에 판매할 수 있었고 그렇게 국내에선 고급차로 통했던 세이블을 볼 수 있었다. 소형 해치백이었던 프라이드는 플랫폼의 완성도가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탄탄한 차체를 기반으로 준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잔고장이 없기로도 유명했다.
1.3L 가솔린 엔진을 적용한 프라이드는 힘과 연비도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많은 가정에서 사랑받아왔던자동차다.
단종된 최근의 프라이드를 생각해보면 예전의 야무졌던 프라이드의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에 90년대 프라이드를 기억하던 소비자들은 품질과 성능이 모두 좋았던 과거 모델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프라이드는 해치백 뿐만 아니라 5도어 베타 모델도 판매가 되었었다.
비운의 스포츠카
기아 엘란과 쌍용 칼리스타
로터스의 피가 흘렀던 기아 엘란은 1996년 출시되었으나 3년 뒤인 99년에 단종이 되고만 씁쓸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차량이다. 당시 세피아 개발 이후 국내시장에 스포츠카를 출시하고 싶었던 기아차는 자금난으로 허덕이던 로터스사로부터 엘란의 설계와 생산라인을 인수하였고 동일한 차를 국내용 버전으로 생산하여 판매를 시작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 로터스는 경량 스포츠카의 표본과도 같았으며 로드스터 구조로 국산차에선 누릴 수 없던 오픈 에어링까지 경험할 수 있었던 독특한 자동차였다. 겉으로 보기엔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할 수 있는 자동차였으나 문제는 가격이었다.
당시 엘란의 가격은 2,750만 원이었다. 쏘나타급 중형 차가 1,000만 원대 중반 정도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구매할 엄두조차 내지 못 했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가격이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아차는 생산 원가가 3천만 원이 넘는 자동차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2,750만 원에 판매했지만 결국 엘란은 단종까지 1,055대라는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시점 물가와 비교해 본다면 기아차가 경량 로드스터를 6천만 원 수준으로 출시했을 때 이를 구매할 고객들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보면 체감하기가 쉽다.
비슷한 운명을 가졌던 자동차는 바로 쌍용의 칼리스타다. 클래식카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자동차는 쌍용자동차가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국내 생산한 레트로 스타일 FR 스포츠카다. ‘쌍용 칼리스타’는 1976년 영국 자동차 업체 팬더 웨스트윈즈(Panther Westwinds)에서 제작한 ‘Lima’를 기반으로 만든 차량이다.
1980년 당시 엄청난 자동차 마니아였던 진도모피그룹 김영설 사장이 팬더사를 인수하여 약간의 디자인 변경을 거친 뒤 쌍용차 브랜드를 달고 이차를 국내에도 판매한 것이다. 당시 칼리스타는 1,600cc 직렬 4기통 엔진, 2,800cc V6, 3,000cc V6 포드 퀼른 엔진 등 총 세 가지 모델로 판매되었다.
완전한 수제 조립식 알루미늄 보디에 영국식 2인승 라이트 웨이트 로드스터라는 콘셉트 덕분에 전 세계의 수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은 이차에 환호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칼리스타가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생산되었으나 엘란처럼 판매가가 높아 국내에선 거의 인기를 끌지 못하였고 결국 쓸쓸한 단종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칼리스타의 가격은 3,300만 원부터 3,800만 원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생산된 대수는 78대다. 결국 시장의 법칙에 따라 많이 팔릴 수 없는 자동차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은 이 시절 감성을 자극했던 수많은 명차들을 기억한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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