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에는 브랜드마다 정체성이 녹아 있다. 차마다 디자인은 모두 다르지만 브랜드 내 라인업 간의 통일성을 갖추기 위해 엠블럼 이외에 상징이 될만한 디자인 요소를 넣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BMW의 키드니 그릴이 있다.
흔히 ‘돼지코’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키드니 그릴은 사실 꽤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자인이 변화하여 현재까지 디자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BMW의 상징, 키드니 그릴의 변천사에 대해 살펴보자.
글 이진웅 기자
독창적인 디자인을 위해
그릴을 양쪽으로 나눈 것이 시초
옛날 자동차들은 냉각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릴이 거의 전면을 차지했다. 사실상 그릴이 전면의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BMW도 처음 자동차를 생산할 당시에는 다른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전면 전체를 그릴로 채웠다.
키드니 그릴이 처음 적용된 것은 BMW의 첫 4륜 모델인 303부터 시작되었다. 다른 경쟁 모델들과 차별화를 위해 전면 전체에 걸쳐 하나의 그릴을 적용한 것이 아닌 두개로 분할해 적용했다. 당시 엔진룸이 세로로 긴 형태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릴 형태가 세로로 길어진 형태가 되었다. 303의 그릴 디자인은 꽤 혁신적이었으며,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릴 형태가 2개의 신장을 닮았다고 해서 키드니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고, 다양한 클래식 모델들을 거치면서 폭이 점점 얇아지게 되었다. 328이나 501을 살펴보면 초기 303에 비해 상당히 얇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신장에 가까운 형태
1960~1970년대
그러다 1960년대에 들어서 자동차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동력 관련 부품들의 크기가 점차 작아져 엔진룸 크기도 작아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릴 크기도 자연스럽게 작아지게 되었다. 1966년 출시된 BMW 2002를 살펴보면 기존 그릴에서 상하 높이를 줄여 그릴 크기가 상당히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닛의 높이가 낮아진 M1에서는 극단적으로 작아진 형태의 키드니 그릴이 적용되었다. 물론 키드니 그릴만으로는 냉각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릴 옆에 공기 흡입구를 더 만들어 보완했다. 1970년대 등장한 3시리즈, 5시리즈, 7시리즈 역시 상당히 작은 키드니 그릴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때 당시 키드니 그릴이 가장 신장과 가까웠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부터
그릴이 점차 커지기 시작
1980년대부터 키드니 그릴은 양쪽으로 점차 길어지기 시작했다. 2세대 7시리즈 중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750iL은 735i와 차별화를 위해 그릴 폭을 키웠다. 동시대에 출시된 2세대 3시리즈와 5시리즈도 1세대보다 폭이 넓어졌다.
1990년대부터 그릴 크기가 본격적으로 길어지기 시작했다. 1994년 출시된 3세대 7시리즈, 1994년 페이스리프트 된 3세대 5시리즈, 1990년 출시된 3세대 3시리즈를 살펴보면 그릴이 헤드램프에 가깝게 길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후 세대교체를 통해 차가 커짐에 따라 키드니 그릴 크기도 점점 커지게 되었다. 특히 7시리즈의 경우 2008년 출시된 5세대 모델에서 키드니 그릴이 급격히 커지는 바람에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3시리즈와 5시리즈의 키드니 그릴은 외관 디자인이 유선형으로 변해감에 따라 그릴에 곡선을 더하는 것으로 마무리해 무난한 모습을 보여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릴이 상당히 커졌으며
일부 모델은 헤드램프와 이었다
현재 나오는 모델들의 키드니 그릴을 살펴보면 10년 전과 비교해서 상당히 커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7시리즈를 비롯한 SUV 모델들이 상당히 커진 상태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키드니 그릴이 과도하게 커지면서 돼지코를 연상시킨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아드리안 반 후이동크가 수석 디자이너 자리를 물려받은 후 3시리즈를 시작으로 5시리즈, 6시리즈, 7시리즈의 키드니 그릴은 헤드램프와 연결해 일체감 높은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으며, BMW의 특징 중 하나인 스포티함을 강조하고 있다.
키드니 그릴에
기능을 넣기도 한다
현재 몇몇 모델에는 키드니 그릴에 기능을 넣기도 한다. 현재 모델에 따라 액티브 에이로 셔터와 아이코닉 글로우가 들어가 있다. 액티브 에어로 셔터는 주행 상황에 따라 그릴 내부에 있는 셔터를 열거나 닫는 것으로, 일상 주행 시에는 셔터를 닫아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 연비를 높여주고, 역동적인 주행 시 셔터를 열어 냉각 성능을 극대화한다.
쿠페형 SUV X6의 그릴에 적용된 아이코닉 글로우는 키드니 그릴에 LED 조명을 넣은 것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더욱 강조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로버트 코테즈 프로덕트 매니저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 요소”라고 언급했다.
혁명적이기 보다
진화론적인 과정
BMW가 차를 생산한 이래 수많은 종류의 모델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소개되었으나, 키드니 그릴만큼은 80년째 유지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뱅글 전 수석 디자이너는 “혁명적이기보다 진화론적인 과정이며, 함부로 변화를 취하기보다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정상에 도달하려는 BMW 특유의 치밀한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1970년대, BMW에서는 미국식의 화려한 그릴로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3시리즈를 개발할 당시 미국식 디자인을 반영하도록 했지만 BMW의 임원이던 밥 루츠가 극구 반발해 취소되었고, 키드니 그릴을 유지한 채 데뷔했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밥 루츠의 판단은 신의 한 수가 되었고, 현재까지 BMW의 정체성으로 남게 되었다.
앞으로는 제품마다
다른 디자인의 그릴을 선보일 것
최근 BMW가 신형 4시리즈를 공개하면서 세로형 키드니 그릴을 선보였다. 옛날과 달리 키드니 그릴이 번호판을 넘어 차체 하단까지 내려온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마고 튜케 디자인 책임자는 “대담한 성격을 가진 차의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거대한 세로형 그릴은 신형 4시리즈에만 적용하며, 소비자들의 요구가 높아진 만큼 이를 충족하기 위해 제품마다 다른 디자인의 그릴을 개별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의 키드니 그릴을 만나볼 것으로 전망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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