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들어서 쉐보레로 브랜드가 변경되면서 이름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대우자동차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로얄 시리즈로 한창 잘나갔을 시절에는 당시 현대차보다 고급으로 인정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불렸을 만큼 전성기를 누린 적도 있었다.
1990년대에는 대우차가 디자인의 전성기라고 불렸을 때였다. 이탈디자인, 피닌파리나 등 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인 전문 회사와 작업을 했던 탓에 유럽 감성이 많이 남아 있으며, 세련된 디자인으로 회자되고 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대우차들에 대해 살펴보자.
글 이진웅 기자
대우 에스페로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
에스페로는 1990년에 출시했으며, 대우차에서 4년 동안 자체 개발한 첫 고유 모델이다. 당시 중형차 시장에서 쏘나타에 밀리던 대우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며, 특히 디자인 부분에서 빼먹지 않고 매번 등장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세련됨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르포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맡았다. 전체적으로 길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차체 공기 저항 계수가 0.29로 당시 기준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진석 위주의 디자인이었으며, 전면에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고 C필러 쪽에 유리가 존재했다.
초창기 모델은 베르토네에서 디자인했던 콘셉트 아트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시트로엥 느낌이 강하게 남아있으며, 리어 글라스는 이전에 디자인했던 시트로엥 XM와 많이 비슷한 편이다. 이후 1991년 말에 이어 모델이 출시되면서 테일램프가 익숙한 형태인 콤비네이션 타입으로 변경되었으며, 램프 중앙에는 에스페로 엠블럼이 추가되었다.
처음 출시할 때 당시 르망 이름셔에도 탑재되었던 2.0리터 CFI 엔진이 탑재되었다. 다만 차량 특성상 100마력, 16.2kg.m으로 디튠되었다. 디튠된 만큼 연비는 13.5km/L로 좀 더 좋아졌다. 하지만 당시 주력 모델이었던 신형 프린스와 포지션이 겹치는 마당에 판매 간섭이 발생하게 된다.
이후 대우차가 최초로 자체 개발한 1.5리터 100마력 엔진을 탑재하면서 준중형급으로 포지션을 조정해 엘란트라와 경쟁하게 되었다. 에스페로가 전륜구동이었고, Y2 쏘나타 대비 전장과 전폭이 작았기 때문에 에스페로를 등급 조정한 것이다. 그래도 태생이 중형차였던 탓에 엘란트라보다 크기, 실내공간 부분에서 이점이 많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옵션은 1992년 이어 모델 출시 이후 기준으로 고급 재질로 만든 시트, 앞 좌석 룸램프 시계, CD Pack, ABS, 앞 좌석 파워윈도우, 접이식 미러 등이 있었다. 에스페로는 1998년 수출 물량이 단종될 때까지 총 52만 대가 팔렸다.
대우 누비라
보기 드문 순우리말 차명
누비라는 에스페로 후속으로 1997년 등장한 준중형 모델이다. 맵시, 무쏘, 야무진 등 보기 드문 순우리말 이름으로 유명하다. 디자인은 이데아의 프랑코 만테기차가 담당했다. 만테기차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차라는 콘셉트에 맞춰 디자인했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이탈리안사의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전작인 에스페로에 비해 곡선을 많이 사용했다. 실루엣과 디자인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헤드 램프, 라디에이터 그릴, 테일램프를 둥근 형태로 디자인해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했다.
2003년,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5세대 모델이 누비라 1세대의 뒷모습과 많이 닮아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비교 사진을 올리면서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급인 아반떼, 세피아보다 큰 차체와 넓은 실내공간을 자랑했으며, 1.5리터, 1.8리터 엔진 두 가지를 탑재했다. 변속기는 5단 수동변속기와 독일 ZF의 4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했다.
파생 모델로는 왜건 모델인 누비라 스패건과 해치백 모델인 D5가 있다. 누비라 스페건은 세한 캬라반 이후로 오랜만에 출시한 스테이션 왜건이며 아반떼 투어링과 기아 파크타운과 경쟁했다. 비록 국내는 전통적으로 왜건의 인기가 낮아 판매량은 적었지만 그래도 경쟁 모델보다는 훨씬 많이 팔렸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평가도 세 모델 중에서 가장 좋았다.
누비라 D5은 정통 해치백이라기보다는 세단 뒷부분을 잘라낸 모습에 가까운 테라스 해치백 형태였다. 세단과 해치백의 중간 형태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너무 어중간한 모습이다 보니 판매량은 바닥을 쳤다.
1999년에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누비라 2가 출시되었다. 전체적인 프로포션이 변경되어 윗급인 레간자 수준의 중후함이 특징이며, 밋밋한 이미지가 강하고 디자인의 완성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신차 수준으로 대폭 변경되었다.
레간자에 적용된 NVH 기술을 대거 적용해 전체적인 승차감을 높였으며, 동급 최초로 프로젝션 헤드라이트, 글라스 안테나, 슈퍼비전 클러스터 등이 적용되었다. 이후 2002년 라세티가 출시되면서 단종되었다.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중 가장 심혈을 많이 기울였으며, 김우중 회장도 누비라에 가장 큰 애착을 보였다고 한다.
대우 라노스
유럽 감성의 소형차
라노스는 르망, 씨에로, 넥시아의 통합 후속 모델로 1996년 등장한 모델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담당했다. 누비라와 마찬가지로 곡선의 많이 사용해 부드러운 느낌을 살렸으며, 유럽이 전통적으로 소형차 강세다 보니 디자인 과정에서 유럽 감성을 많이 담았다.
엔진 라인업은 1.3리터 SOHC, 1.5리터 SOHC, 1.5리터 DOHC 세 가지가 있었으며, 각각 출력은 84마력, 96마력, 110마력을 발휘했다. 국내 소형차 최초로 가변흡기 장치를 장착했다.
1997에는 1.3리터 SOHC 엔진을 탑재한 3도어 해치백과 5도어 해치백인 라노스 로미오, 라노스 줄리엣이 출시되었다. 이외에도 라노스 로미오를 기반으로 한 카브리올레 콘셉트카가 서울 모터쇼에 출품된 적이 있었으나, IMF의 영향으로 시판 계획을 취소하고 범퍼 디자인과 테일램프 디자인, 레드 가죽 옵션이 적용된 라노스 로미오 스포츠와 라노스 로미오 스포츠를 대체 출시하게 된다.
라노스는 출시 초반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전작 시에로의 1996년 1년 치 판매량을 단 2달 만에 따라잡는 인기를 보였지만 1998년 악화된 대우그룹의 상황 탓에 판매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다만 유럽에서는 특유의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내수 시장의 2~3배나 되는 판매량으로 현대 엑센트를 앞지르기에 이른다.
2000년에는 베르나와 리오에 맞서기 위해 라노스 2로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했다. 전면은 라노스 로미오/줄리엣 스포츠와 비슷했고 후면 디자인은 기존 가로형 태일 램프 스타일을 세로형으로 변경했는데 사람들은 괜찮았던 디자인을 망쳤다며 혹평했다.
게다가 페이스리프트는 세단 모델에만 적용되었고, 해치백 모델은 기존 스포츠 모델을 기본화한 것에 그쳤다. 그렇다 보니 판매량은 경쟁 모델 대비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2년 만인 2002년, 후속 모델인 칼로스 출시로 단종되었다.
대우 레간자
재규어 콘셉트카를 수정한 디자인
프린스 후속으로 1997년 출시한 레간자는 당시 GM 차량과의 기술 종속 관계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김우중 회장이 독자 개발을 지시해 나온 모델이다. 로얄 시리즈의 FR 플랫폼을 벗어나 전륜구동 기반 플랫폼으로 변경되었다.
디자인은 1991년, 이탈디자인에서 재규어에 제안한 켄싱톤 콘셉트를 바탕으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직접 수정했다. 실제로 켄싱톤 콘셉트와 레간자 디자인을 비교해보면 전면과 휠을 제외하면 레간자랑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디자인 수정을 위해 한국 고전 미술품을 무려 1,300종을 감상했다는 일화가 있다.
엔진은 1.8리터, 2.0리터 두 가지가 먼저 탑재된 이후 2.2리터 엔진도 탑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매그너스가 출시되면서 1.8리터 가솔린 엔진과 2.0리터 LPG 엔진만 남겨놓고 경제형 중형차라는 포지션으로 조정되었다. 가격도 가솔린 기본 1,086만 원, LPG 835만 원으로 크게 내려갔으며, 기아 옵티마와 함께 당시 가장 저렴한 중형차로 기록되기도 했다.
레간자는 지금까지도 성공한 마케팅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소리 없이 강하다. 쉿! 레간자”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소비자들에게 레간자를 각인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캐치프레이즈에 강조한 것처럼 각종 차음재 등을 대거 적용해 정숙성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옵션으로는 국내 중형차 최초로 5볼트 휠을 적용했으며, ZF 4단 변속기, AQS 기능이 장착된 풀 오토 에어컨, 국산차 최초 후석 선반 공기 청정기와 순정 선루프 선택 옵션, 우수한 품질의 AV 시스템 등이 있었다.
대우 매그너스
이글 모델이 인상 깊었던 차
매그너스는 1999년 출시한 중형 세단이다. 원래 브로엄의 후속 준대형 차로 출시할 계획이였으나, 당초 올리기로 한 XK 엔진의 개발이 늦어지면서 중형차로 포지션을 변경해 판매했다. 매그너스로 인해 레간자는 아래급 중형차로 포지션이 변경되었다.
디자인은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있던 이탈디자인에 의뢰했으며, 강렬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콘셉트로 잡았다. 그 때문인지 레간자의 디자인 기조를 이어가면서 직선의 멋을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2000년 출시된 매그너스 이글이 지금까지도 좋은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면 범퍼 디자인을 변경하고 헤드램프와 테일램프에 블랙 스모키가 적용된 것이 특징이었다. 젊은 층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 튜닝 업계에서 인기가 많았다.
기존 모델은 매그너스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되어 병행 판매되었다. 매그너스 이글보다 중후한 멋을 살려 중년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렇게 매그너스는 투 트랙 전략을 통해 판매량에서 어느 정도 선방했다.
매그너스에는 2.0 SOHC와 2.0 DOHC 두 가지가 탑재되었으며, 2002년에 2.0리터와 2.5리터 6기통 엔진인 XK 엔진이 탑재되었다. 출력은 각각 115마력, 148마력, 142마력, 157마력을 발휘했다. 변속기는 수동 5단과 자동 4단이 탑재되었다.
중형차로 출시되었지만 개발 당시에는 브로엄 후속 준대형차를 목표로 했었기 때문에 경쟁 중형차 대비 크기가 크고 실내가 넓은 것이 특징이다. 이 때문에 대우차에서는 공식적인 경쟁 모델로 그랜저 XG까지 포함하기도 했었다. 판매량도 EF 쏘나타를 어느 정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높았다. 매그너스는 2006년 토스카 출시로 단종되었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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