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일까. 쌍용차에게 다소 무리한 요구, 아니 요구라기보단 이 기사를 통해 의견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최근 들어 생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요구가 현실성이 떨어지고, 지금으로선 실행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생각이 바뀐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쌍용차에게 보내고 싶은 의견과 함께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오늘도 라면 논평과 함께 마무리를 지었다.
글 김승현 기자
판매량을 보장할 수 없었고
이는 중견 기업에게
꽤 위험한 모험이라 생각했다
쌍용차를 향해 “지프 코란도를 부활시켜달라”라는 요구가 많았다. 지프 코란도는 과거 쌍용차의 상징이자 한국 SUV의 상징이기도 했다. 과거엔 각진 박스 형태 SUV가 많았지만 지금은 선이 유연해진 도심형 SUV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통 지프형 SUV가 유독 특별하게 여겨진다.
정통 지프형 SUV를 생산하고 있는 브랜드는 미국 지프, 일본 스즈키, 인도 마힌드라 정도가 전부다. 도심형 SUV가 대부분인 요즘 소비자들은 쌍용차에게 지프형 SUV 부활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일각에선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것이 쌍용차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일종의 틈새시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와 소비자들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들의 근거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수요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인터넷 여론일 뿐 이것이 실제 수요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나서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둘째는 현재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쌍용차 입장에서 굳이 리스크가 큰 모험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쌍용차는 2014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판매량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6년에 연간 판매량 10만 대를 넘어선 이후 꾸준히 상승 곡선이다. 중견 기업인 쌍용차에게는 판매량 리스크가 큰 모험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신형 코란도에 들어간 장비들
티볼리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나 역시 지프 코란도 부활을 위해 쌍용차가 지금 이 시점에 굳이 위험 부담이 큰 모험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최근 쌍용차가 출시한 티볼리 부분변경 모델 때문이다.
티볼리 부분 변경 모델을 보고 “쌍용차가 가장 신경 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델은 티볼리가 확실하구나”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변화 폭이 생각했던 것보다 컸고, 무엇보다 한 체급 높은 코란도를 개의치 않고 변화를 맞이했다 느낄 정도였다.
새로 개발된 1.5 터보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것도 컸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실내 디자인과 구성 변화였다. 코란도처럼 변했고, 코란도를 통해 선보였던 장비들이 추가되었다. 대시보드 레이아웃이 바뀌면서, 신형 코란도에 들어갔던 것과 비슷하게 조수석 앞쪽이 꾸며졌다. 하이그로시로 마감되었고, 소재도 비슷한 것을 썼다.
센터패시아 레이아웃과 디자인뿐 아니라 기어 레버, 센터 터널 구성과 디자인도 신형 코란도와 거의 똑같다. 센터패시아와 센터터널 쪽만 보면 디자인이나 소재나 코란도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비록 옵션이지만 신형 코란도에 들어간 것과 동일한 디지털 계기판도 추가되었다.
간섭 신경 안 쓴다는 것
즉, 판매량 견인 역할은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에
집중하겠다는 의미
보통 같은 브랜드 내에서는 모델 사이 판매 간섭을 신경 쓴다. 소형 SUV와 중형 SUV가 있다면 기본 장비나 옵션 구성에 차이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쌍용차는 코란도와 티볼리의 기본 장비나 옵션 구성에 큰 차이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거의 비슷하게, 심지어 실내 디자인만 보면 헷갈릴 정도로 차이를 좁혔다.
“우리는 코란도 판매량 간섭보단 잘 팔리는 티볼리에 더 신경 쓸 것이다”라는 쌍용차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코란도 판매량 간섭 때문에 티볼리 구성을 부실하게 하는 것보단, 오히려 잘 팔리는 티볼리의 장비와 구성을 코란도만큼 좋게 만들어 소비자들을 겨냥하겠다는 의지다. 다시 말하자면 쌍용차는 판매량 견인 역할을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5개월 판매 실적
이미 견인 역할은 뚜렷하다
실제로 그들의 전략은 시장에서 잘 통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판매 실적 동향을 살펴보자. 쌍용차 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모델은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다. 렉스턴 스포츠는 올해 1월 4,302대로 시작하여 2월 3,413대, 3월 4,087대, 4월 3,415대, 그리고 5월에는 3,283대가 판매되었다.
티볼리는 올해 1월 3,071대로 시작하여 2월 2,960대, 3월 3,360대, 4월에는 렉스턴 스포츠보다 많은 3,967대, 5월에는 3,977대가 판매되었다. 1월부터 5월까지 총 1만 7,355대가 판매되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현대 코나’는 1만 3,351대, ‘쉐보레 트랙스’는 5,873대, 그리고 ‘기아 스토닉’은 4,631대가 판매되었다.
‘코란도’ 판매량도 세대교체되면서 10배 가깝게 높아졌다. 2월 말쯤 첫 출시되어 3월 2,202대, 4월 1,753대, 5월에는 1,585대가 판매되었다. 이전 세대보다 판매량이 많아졌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비교적 많은 것은 아니다.
판매량 견인은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
코란도는 SUV 브랜드 이미지
이미 판매량 견인 역할은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가 뚜렷하게 가져가고 있다. 판매량 통계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고, 티볼리는 소형 SUV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와 싸울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렉스턴 스포츠는 유일한 국산 픽업트럭 시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이미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는 판매량이 오랫동안 안정적이었다. 이제는 역할 분담을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판매량 견인 역할이 뚜렷한 만큼 브랜드 이미지를 고도화할 수 있는 역할을 코란도에게 주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SUV에 필요한 기술력
쌍용차에게도 있고
마힌드라에게도 있다
오프로드를 위한 SUV에 필요한 기술력은 이미 가지고 있다. 과거 ‘코란도’와 ‘무쏘’, 그리고 ‘렉스턴’에도 오프로드만을 위한 장비와 기능들이 있었고, 능력도 다른 국산 제조사들에 비해 출중했다. 해외에서 오래된 쌍용 SUV를 가지고 오프로드를 즐기는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쌍용차는 기본적인 SUV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다카르 랠리도 꾸준히 출전하고 있다. 그리고 쌍용차의 모회사는 마힌드라다. 마힌드라의 주력 차종들은 모두 SUV, 그중에는 지프형 SUV도 포함된다. 물론 기본적인 기술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과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프형 SUV에 적합한 차체를 개발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다.
미국 지프처럼
도심형과 지형 SUV
모두 갖춰도 좋다
쌍용차는 이미 SUV 전문 브랜드 이미지를 향해 가고 있다. 국산차만 놓고 보면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진 대형 세단 ‘체어맨’을 완전히 단종시켰고, SUV와 픽업트럭 라인업만 유지하는 중이다. 미국 지프처럼 “코리안 지프” 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미국 지프는 도심형 SUV뿐 아니라 정통 지프 ‘랭글러’도 계속해서 생산하고 있다. 랭글러는 정통 SUV 브랜드 이미지를 가장 잘 드러내면서도 브랜드 역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레니게이드’ 역할을 ‘티볼리’가, ‘그랜드 체로키’ 역할은 ‘렉스턴’, 그리고 ‘랭글러’ 역할을 ‘코란도’가 이어받으면 된다.
라면 논평
만약 지프 코란도가 성공한다면
경형 지프 SUV도 기대할 수 있다
라면 논평과 함께 오늘의 비하인드 뉴스를 마친다. 만약 지프 코란도가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스즈키 짐니’ 기사가 갑자기 많이 나오면서 국내 소비자들도 경형 SUV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짐니에 대한 반응들도 좋았던 편이다.
스즈키 짐니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지금까지 정통 형태 국산 SUV가 경차 급으로 국내에 나왔던 사례가 없고, 크기가 작아 한국 도로 사정과 잘 맞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만약 지프 코란도가 성공한다면 쌍용차가 경형 지프 SUV를 만들지 않을 이유도 없다. 소비자들이 원하던 경형 지프 SUV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지프 코란도가 성공한다면 국산 자동차 제조사들 사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트랙스’, ‘QM3’, ‘티볼리’에 이어 ‘코나’와 ‘스토닉’이 등장했고, ‘무쏘 스포츠’를 시작으로 ‘코란도 스포츠’, ‘렉스턴 스포츠’를 견제하기 위해 픽업트럭을 개발 중인 것처럼 현대기아차도 지프 형태 SUV를 견제할만한 무언가를 내놓을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환영이다. 기업들이 서로 치열하게 견제하고 경쟁할수록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더 좋은 품질, 더 잘 만들어진 자동차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판매량 견인 역할이 뚜렷한 티볼리와 렉스턴 스포츠… 이 상태라면 지프 코란도를 충분히 고민해볼만 하지 않을까.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