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완성차 업체들은 부분변경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는 페이스리프트를 3~4년 주기로 진행했다. 신형 모델은 7~8년을 주기로 선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풀체인지 주기는 4~5년으로, 페이스리프트 모델도 3년을 채 넘기지 않고 출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이러한 주기 변화의 중심에는 현대자동차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차의 점점 짧아지는 모델 변경 주기뿐만 아니라 도전적인 디자인 또한 꾸준히 논란이 된다. 오늘은 현대차의 여러 페이스리프트 디자인 중 가장 도전적이었다고 생각되는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디자인에 한걸음 더 다가가본다.
글 Joseph Park 수습기자
큰맘 먹고 최소 2천만 원 이상을 들여 구매한 차가 2년, 짧게는 몇 개월 만에 구형 취급을 받는 것이 달가운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점점 빨라지는 페이스리프트 및 풀체인지 주기는 “아니 벌써 바뀐다고?”라는 떨떠름한 반응과 함께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 있다. 3년 타고 차를 바꾸는 인식이 강해진 요즘 2년 주기로 페이스리프트와 풀체인지를 거듭하는 현대자동차는 그 애매한 틈을 잘 파고든다.
물론 페이스리프트나 풀체인지 주기가 짧아지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다. 세그먼트에 따라 트렌드가 즉각적으로 반응되어야 하는 모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적인 구매층이 많은 중형급 이상의 세그먼트에서는 오히려 너무 잦은 페이스리프트나 풀체인지는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중장년층이 주로 이용하는 중형, 대형 고급 세단이 유행을 족족 반영하는 패션카의 성향을 띠게 된다면 문제가 커진다. 흔히 “기존 구매자들을 기만한다”라는 불편한 시각도 중형 이상의 세그먼트에서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최근 페이스리프트는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바로 디자인이다. 현대 룩(Hyundai Look)을 지향하며 각 모델의 개성은 살리되 체스판 위의 말처럼 통일된 디자인 랭귀지를 보여주겠다는 현대자동차의 디자인플랜은 “틀에 얽매이지 않겠으나 현대차임을 알아볼 수 있는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적용시키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현재 풀체인지 모델을 기점으로 멋진 현대 룩을 만들어가고 있다. 좋다. 패밀리룩 강박에 빠져 모델마다 개성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디자인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페이스리프트이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파격적인 디자인을 적용시킨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롭다. 삼각떼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충격의 시작이었다. 싼타페까지 파격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이었던 모델은 그랜저이다.
그랜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중형 세단이자 아슬란의 단종으로 현재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이기도 하다. “중후한 멋”이 강조되어야 하는 프리미엄 중형 세단 답지 않게 그랜저는 파격적인 페이스리프트로 돌아왔다. 큰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시도는 좋다고 말할 수 있으나 불만 섞인 여론은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다른 브랜드에서 중형 모델의 페이스리프트가 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BMW 5시리즈와 르노삼성 SM6가 있다.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페이스리프트를 진행하였을까?
BMW 5 시리즈
페이스리프트
스테디셀러 BMW 5시리즈의 페이스리프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패밀리룩의 본가답게 큰 변화는 없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 페이스리프트 또한 큰 변화였지만 최근 현대자동차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들 때문에 그 변화의 폭이 커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전면부에서는 헤드라이트와 키드니그릴을 기점으로 이전 모델 대비 뭉툭했던 선들이 전반적으로 날카로워졌다.
후면부에서는 리어램프 주변으로 볼드한 라인을 그렸다. 최근 아반떼(CN7)에서도 비슷한 방법이 쓰였는데 이를 통해 좀 더 선명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CN7 대비 BMW 5시리즈의 리어램프는 조금 과하게 아이라인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웃라인이 너무 두꺼우면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기존의 것은 유지하되 최근 트렌드를 적절히 반영하여 중형 세단을 고민하는 구매자의 구미를 충분히 당길 수 있는 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르노삼성 SM6
페이스리프트
중형 세단계의 김수현이라고 불리며 디자인으로는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던 르노삼성의 SM6 또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출시되었다. 이전 모델 대비 큰 변화 없이 페이스리프트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프런트 디자인에서는 기존 “L”자 형태의 크롬 장식을 더 낮고 넓게, 그리고 그 위를 연결하는 가로 선의 크롬 장식을 추가해 프런트 레이아웃을 꽉 채우고 있다.
범퍼에 추가된 얇은 크롬 라인 상단으로는 위쪽으로 바짝 당져긴 새로운 볼륨이 보인다. 이 때문에 기존 시그니처였던 C자 형태의 주간 주행 등 하단이 조금 더 아래쪽을 향하게 되어 이전 모델 보다 더 날렵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헤드라이트와 주간 주행 등 모두 아웃라인을 깔끔히 정리했다.
후면부 디자인에서도 7시리즈처럼 크롬 장식이 리어램프를 가로지른다. 이전 모델 대비 직선이 강조된 그래픽들을 통해 중후하고 섬세한 느낌을 주는 호불호가 덜 갈릴만한 페이스리프트를 SM6는 보여주었다.
현대자동차는 그랜저의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구현했다고 말한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 “르 필 루즈”에서 처음 선보인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테마로서 양산차에서는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모델과 쏘나타(DN8)에 가장 먼저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파라메트릭 다이나믹스라는 이름으로 그릴에 소극적으로 적용되던 부분이 차량 전체로 확대되어 디자인된 아반떼(CN7)가 있다.
파라메트릭 쥬얼이라는 테마는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전면부 그릴을 통해 마름모 꼴을 그려내며 보석과 같은 느낌을 구현하려고 했다. 자동차 디자인에서는 각 부분마다 암묵적으로 수행해내야 하는 역할이 있다. 하지만 그랜저는 그 틀을 깨버렸다.
기존의 독일 브랜드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틀에 스스로 묶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도전적인 형태에서 오는 충격은 소비자의 몫이다.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전면부는 헤드라이트와 그릴의 경계를 없애버렸다. 마름모꼴의 주간 주행 등과 반복되는 패턴을 사용해 남아있던 경계마저 블러 처리를 했다.
주간주행등을 헤드라이트의 연장선으로 사용하고 그릴까지 확장하여 하나의 조형처럼 꾸며낸 점은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다. 반짝이는 샹들리에 같았다. 현대차는 그랜저의 고착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4050세대가 아닌 2030세대를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었다. 고급스럽고 보수적인 디자인을 원하는 사람들을 제네시스로 유입시키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디자인이었다.
그렇게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그랜저는 기존 모델 대비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디자인이었다. 출시 전부터 디자인 논란이 꾸준했다. 하지만 출시 후 페이스리프트 전 그랜저IG의 사전계약 첫날 기록을 넘어서며 현재까지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결과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 가는 부분은 출시 당시 신차라인업이 SUV로만 채워져있었던 터라 세단 세그먼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증이 반영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그랜저를 대적할 실질적 경쟁 모델이 전무한 한국 시장 특수가 적용된 것도 한몫했다고 보인다.
게다가 그랜저 페이스리프트 디자인은 전면부의 파격적인 형태를 제외하고 나면 기존 모델 대비 내외관 모두 고급화를 이루어 냈다. 후면부 디자인은 극단적으로 얇아지며 입체감 또한 강조된 테일램프를 통해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물씬 풍겨냈으며 아래로 쳐지는 라인은 안정감을 더했다.
또한 C 필러 및 쿼터 글라스 디자인과 리어 펜더 라인까지 변경해 유려한 디자인을 그려냈으며 실내공간 또한 새로운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컬러/트림이 대폭 적용되며 플래그십 세단 다운 면모를 뽐내며 사람들의 구매욕을 당기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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