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말이 있다. 주로 무단횡단을 하려는 보행자들에게 많이 하는 말이지만 요즘은 과속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지적하는 말로도 많이 사용한다. 과속은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며, 사망률도 상당히 높다. 과속운전 사고 100건당 24,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통계가 있다. 중앙선 침범 사고 100건당 3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과 비교하면 8배 많은 수치다.
내년 4월에는 과속으로 인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전국 도시 지역에서 시행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운전자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속도가 너무 낮다는 이유에서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많은 운전자들이 반대한다는 ‘안전속도 5030정책’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이진웅 에디터
일반 도로에서 50km/h
이면 도로에서 30km/h로 하향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전국 도시 지역 일반 도로의 제한속도를 50km/h로, 주택가 등 이면 도로는 30km/h로 하향 조정하는 정책이다. 이전까지는 일반 도로의 제한속도가 대부분 60km였으며, 간혹 70km/h 도로도 존재했다. 이면 도로는 30~40km/h 정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제한속도를 줄이는 이유는 당연히 교통사고 감소를 위해서다. 도입부에 언급했다시피 과속은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으로 속도를 낮춰 교통사고의 원인과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 주 목적이다.
이미 몇몇 도시에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이미 몇몇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부산광역시는 2018년 시범 실시 후 2019년 전면 시행했으며, 서울특별시는 2019년에 사대문 안에서 먼저 시행 후 연말에 서울 시내 모든 도로로 확대했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도 동참했다.
이렇게 주요 도시에서만 실시했던 정책을 전국 도시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정부는 지자체와 협력하여 연내 정착할 수 있도록 진행한다고 밝혔으며, 행안부에서 추가적인 교통안전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운전자 10명 중 3명은
해당 정책을 모른다고 답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 7월, 전국 운전자 3,922명을 대상으로 안전속도 5030 정책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이를 인지하고 있는 운전자는 68.1%에 그쳤다고 밝혔다. 10명 중 3명꼴로 해당 정책에 대해서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 연령별 인지도를 살펴보면 20대 이하 운전자는 59.7%, 30대 운전자는 66.6%로 전체 평균보다 낮으며, 40대는 70.2%, 50대 72.1%, 60대 이상 77.3% 등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인지도가 높은 모습을 보였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모바일 내비게이션 음성 안내와 현수막, 홍보영상 제작 등을 통해 인지도 상승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시내 도로 속도를 낮추는 추세
도심 제한속도 낮추기는 세계적인 추세로 OECD 국가 대부분이 도심부 제한속도를 50km/h로 설정하고 있다. 덴마크는 차량 제한속도를 낮춰 교통 사망사고가 24% 줄었고 독일에서도 교통사고 발생률이 20% 감소했다.
아일랜드 속도 관리 매뉴얼에도 50km/h로 달리는 차와 충돌할 경우 사망 가능성은 50%이지만 시속 60km/h 차량과 충돌하면 사망 가능성이 90km/h로 높아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술 더 떠 프랑스 파리 시는 전체 도로의 3분의 1 가량이 30km/h로 제한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운전자는 보행자보다 더 높은 속력으로 달리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속도제한이 확산된 데에는 안전과 환경 개선 외에도 공동체의 삶을 복원하고 도시의 활력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다. 실제로 차량 속도가 빠를수록 교환 활동은 줄어들지만 차량 속도를 줄이면 지역의 삶은 더욱 생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경찰청은 교통정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경찰청은 안전속도 5030을 도입한 전국 68개 구간을 대상으로 시행 전과 후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체 사고는 13.3% 줄었고, 사망자는 63.6%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차량 속도를 10km/h를 낮추더라도 시내 도로는 원래 구조상으로 빨리 달리기 어려운 데다 신호등이 촘촘한 탓에 실제 통행 시간은 2분만 증가했으며, 택시 요금은 약 110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교통정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전형적인 탁상행정
없던 정체도 만들어 낸다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접한 많은 운전자들은 취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이면 도로에서 30km/h로 줄이는 것에는 보행자와 사고 위험으로 인해 크게 반대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일반 도로를 50km/h로 하향시키는 것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며, 아예 운전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서울과 부산의 경우 정체가 더욱 심각해졌다고 말한다. 게다가 신호등이 촘촘하게 설치된 탓에 신호 대기하는 횟수가 더 많아지고 목적지까지 도착 시간이 2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하는 운전자도 있다.
운송업계 관계자, 특히 택시 기사들은 “차량 정체가 심한 도로 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제한속도만 낮춰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발상은 탁상공론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어 “손님들이 안전속도 5030을 무시하고 속도를 높이도록 재촉할 경우 불친절로 갈등만 빚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금이 부족했나?”
과잉 단속 논란
몇몇 소비자들은 “세수가 부족한가 보다”, “벌금을 통해 세금 채우려는 법안으로밖에 안 보인다”라며 비꼬기도 했다. 실제로 50km/h은 조금만 엑셀을 밟아도 금방 도달하는 속도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제한속도를 넘겨 과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주행하다가 과태료 통지서를 받은 사례도 적지 않은 편이다. 반대로 제한속도를 지키면서 가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이 긴장해 운전하기 불편해졌다고 말하는 운전자도 있다.
특히 왕복 8차로 이상 도로에도 해당 정책이 실시되어 과잉단속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정책이 시행 중인 도시의 주민들은 자신들도 단속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외지 관광객들이 주로 적발되면서 이미지를 해친다고 말하며, 사실상 서민들의 주머니 털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내에서 과속은 연간 1천만 건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것도 단속된 것만 집계해서다. 전부 20km/h 이하로 초과 단속되어 4만 원이 부과되었다고 할 경우 산술 계산으로 연간 4천억이 나온다. 이렇게 보면 벌금을 통해 세금을 확보하기 좋은 수단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말도 나오는 것이다.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
이외에도 여러 가지 주장을 들어 안전속도 5030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조금만 밟아도 50km/h을 넘는 바람에 실제로 이를 지키는 운전자들은 많지 않으며, 과속카메라에서만 속도를 줄이는 캥거루 운전이 더욱 성행하고 있다. 캥거루 운전으로 인해 속도를 갑자기 줄이다 보니 오히려 추돌사고 위험이 더 높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도로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
30km/h 도로에서는 무인 단속 카메라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즘 30km/h 도로에 신호겸용 과속단속카메라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속도가 너무 느린 나머지 중간쯤 지나서 빨간불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빨리 가면 과속으로 단속되고 느리게 가면 신호위반으로 단속된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에 안전속도 5030을 시행하게 된다면 시간대에 따라 제한속도를 높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낸 사람도 있다. 차가 많은 시간대에는 50km/h로 줄이되, 야간 등 차가 많지 않은 시간대에는 속도를 60km/h로, 왕복 8차로 도로에서는 70km/h까지 높여 더욱 원활히 통행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것이다.
많은 운전자들의 반발이 있는 만큼 이번 정책은 국민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예로 들긴 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국민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책이 최초로 시행된 부산시에서는 중요한 사안을 찬반투표 없이 결정하고, 단 4번의 관련 회의로 부산 시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시행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교통사고는
제한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교통사고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제한속도의 문제가 아닌 부주의한 운전이다. 시내 도로가 아닌 고속도로의 예시이지만 독일의 아우토반의 경우 편도 3차로에서도 철저한 지정 차로제 준수를 통해 200km/h가 넘는 초고속 주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아우토반의 사고율은 세계적으로 낮은 편이다. 아우토반을 달리는 동영상을 보면 1차로는 항상 비워놓으며, 1차로에 주행 중인 차로도 뒤차가 오면 2차로로 비켜준다. 그리고 화물차는 상위 차로로 절대 올라오지 않는다. 이처럼 운전자들끼리 교통법규를 잘 지키기 때문에 초고속으로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일반 도로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급차로 변경, 신호위반, 무단횡단, 방향지시등 미점등 등의 교통 위법행위를 하지 않고, 운전자끼리 서로 양보하면서 운전하면 기존 속도에서도 사고 없이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이 가능하다. 속도 하향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단속을 강화했을 때 교통사고 예방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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