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시장에서 현대 쏘나타까지 제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기아 K5의 중국 수출형 모델의 가격과 프로모션이 공개됐다. 중국 현지 자동차 전문 매체에 따르면 중국형 K5는 16만 1,800위안으로 시작해 한화로는 약 2,800만 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눈에 띄는 건 가격이 아닌 보증기간이었다. 내수형 K5는 차체 및 일반부품은 3년 또는 6만 km, 엔진 및 동력 전달 부품은 5년 또는 10만 km를 보증해 주는 반면, 중국형 K5는 평생 보증을 제공한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해당 소식을 접한 국내 소비자들은 “국내에서 현기차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국내 소비자들을 화나게 만든 중국형 K5의 보증기간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박준영 에디터
국내선 볼 수 없는
파격적인 평생 보증 정책
실시한 기아차
기아차는 최근 국산차와 수입차를 통틀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정책을 중국 시장에 선보였다. 중국 현지인들의 취향에 맞춘 중형 세단 신형 K5의 일반 부품 및 동력 계통 보증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정책을 내세운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제조사가 보증기간과 관련된 마케팅을 실시할 땐 원래 기준보다 기간이나 킬로수를 늘려주는 정도가 보통이지만 평생 보증을 내건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겠다. 이는 20년 이상을 타도 부품과 관련된 교환 비용이 들지 않으며 엔진에 문제가 생겨도 언제든지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아차가 제시한 혜택은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시장에서 K5를 구매한 고객에게는 6000위안 상당의 기술 및 컴포트 패키지와 3000위안 상당의 여행 및 스포츠 가방 등 다양한 추가 옵션 패키지를 제공한다. 이 둘을 합치면 한화로 약 150만 원 상당의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상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세운 중국형 K5 소식을 접한 국내 소비자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 해당 기사의 댓글엔 “국내는 평생 보증 안 하나?”, “진짜 기분 더럽다”, “국내 소비자들은 역시 호구다”,” 진짜 정이 안 가는 정책이다” 와 같은 반응들이 이어졌다.
판매량이 급속도로 하락해
파격적인 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기아차가 중국 시장에서 사상 유례가 없는 파격적인 정책을 실시한 이유는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자동차 판매량이 급속도로 줄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 현대는 올해 3월 중국 시장에서 3만 4,890대를 판매해 전년 동월 대비 판매량이 22% 감소했으며, 동풍열달기아는 1만 3,537대를 판매해 전년 동월 대비 38%나 감소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중국 시장 내에서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으나 조금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보면 현대기아차는 유럽, 일본차와 중국차 사이에 낀 애매한 자동차라는 점이 주요 패인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2002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현대기아자동차
한때 점유율 10%대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2년 베이징 자동차와 공동으로 합작회사인 ‘베이징현대자동차’를 설립하며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같은 해 기아차역시 둥펑기차집단과 손잡고 ‘둥펑위에다기아’를 설립하며 발을 들였다. 당시 현대차는 주력 세단인 쏘나타와 아반떼로, 기아차는 베르나와 프라이드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했으며 이는 중국 신흥 공산층 공략에 성공해 판매량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경제적인 가격에도 좋은 품질과 상품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은 자동차로 통했다. 좋은 기세는 2014년까지 이어지며 중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 10%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불거진 사드 사태 이후 중국 내 한국차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나빠지며 지속적인 점유율 하락에 시달려왔다.
사드 사태 이후로
급락한 판매량
중국 자동차들의
상품성 강화도 한몫했다
사드 사태로 인한 중국 내 한국차에 대한 인식 악화와 함께 그간 발전을 거듭해온 중국차 브랜드들의 약진 역시 현대기아차에겐 악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중국 내 자동차 브랜드들은 여러 차종을 출시하며 현대기아차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현대기아차를 위협했다. 결국 현대기아차 중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8%까지 떨어지는 하락세를 보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자동차 공업 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중국 브랜드의 자국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9.7%나 상승한 52.6%를 기록했다고 한다. 2020년 현재 중국에서의 현대기아차는 중국차와 유럽, 일본차 사이에 위치하는 애매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결국 자동차 판매량이 급속도로 떨어지니 제조사는 이를 회복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판매 전략들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평생 무상보증이라는 파격적인 정책은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국내시장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현대기아차는 무상보증 정책뿐만 아니라 지난 4월부터 ‘신안리더(心安礼得, 마음의 평온과 다양한 혜택을 드립니다)’와 ‘아이신부두안(愛新不斷, 사랑하는 마음은 끝이 없다)’이라는 고객 케어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신안리더와 아이신부두안은 차량 출고 후 한 달 내에 고객의 마음이 바뀌면 다른 차종으로 교환을 해주는 파격적인 제도임에도 판매 실적은 크게 회복세에 접어들지 못했다.
역대급 판매량 기록 중이
국내 시장에선 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정책
최근 현대기아차가 중국에서 선보이고 있는 파격적인 판매 정책들은 당연히 국내에선 볼 수 없는 사항들이다. 중국 시장에서 파격적인 할인 제도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판매량이 급락하여 이를 회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선 매번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제조사 입장에선 굳이 별다른 프로모션을 진행할 필요가 없다.
이에 일각에선 “현대기아차가 독과점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각종 결함 사태와 논란에도 끄떡없는 것”이라며 “이제 현대기아차도 불매운동을 해야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현대기아차가 출시한 신차들에서 연이어 크고 작은 각종 결함과 품질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제조사를 향한 발언이었다.
“불매운동으로 본때를 보여주자”
분노를 표출하는 국내 소비자들
현대기아차 불매운동설이 불거진 이유는 내수시장 판매량이 떨어져야 다시금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파격적인 정책들을 실시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최근 현대기아차가 신차들에서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결함에 대처하는 자세를 언급하며 “어차피 가만히 내버려 둬도 잘 팔리니 결함이 발생해도 별다른 조치가 없는 것”이라며 “차량 문제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을 줄이려면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줄어들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은 강제성 존재
한국은 권고사항에 그친 레몬법
제조사가 바뀌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법과 제도 때문이다. 미국에선 수백억 원 규모의 리콜을 실시한 세타 엔진 사태 때도 국내에선 평생 보증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레몬법 역시 한국에선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형 레몬법이 실행된다는 소식이 접해졌을 때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은 “레몬법을 도입하느니 차를 안 팔겠다”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지만 막상 한국형 레몬법이 시행되고 난 뒤 이것을 제대로 이용하여 차를 교환받은 소비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 레몬법은 법적 강제성이 존재하나 한국형 레몬법은 단순 권고사항에 그쳤기 때문이다. 한국형 레몬법이 규정한 차량 교환 및 환불 기준 내용을 살펴보면 1개월 이내 주행 및 안전 관련 결함 2회 이상발생, 12개월 이내 중대 결함 및 동일하자 4회 이상 발생 시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것이 제대로 실행되는 사례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상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실효성이 없는 법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