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자동차라고 불리는 순수 전기차(이하 전기차)가 하나둘씩 출시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보급이 되어가고 있다. 점점 강화되는 환경규제와 화석연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기차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도 세제혜택과 보조금 혜택을 통해 전기차 보급률을 늘리고 있다. 매년 수천억 원가량을 보조금 및 인프라 구축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투입한 비용에 비해 전기차 보급 속도가 생각보다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막대한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보급률이 더딘 이유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이진웅 에디터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적은 편
전기차 시장을 분석하는 EV 볼륨이 나라별 전기차 점유율에 대해 조사한 결과 영국 8%, 프랑스 9.2%, 네덜란드 12.1%, 핀란드 15.7%, 스웨덴 25.8%, 아이슬란드 53%, 노르웨이 70%라고 한다. 스웨덴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의 보급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에 비해 국내 전기차 점유율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 전기차 보급은 타 국가에 비해 더딘 편이다. 매년 전기차 관련 비용으로 수천억이 투입되는 것을 생각하면 “도대체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전기차 충전기가
매우 부족하다
한 외신은 “한국은 전기차 불모지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어 고도로 발달된 첨단 기술 국가에서 전기차 보급이 이렇게 더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네티즌들은 국내 전기차 환경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전기차 보급이 더딘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전기차 충전소가 매우 부족한 편이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전기차 충전소를 늘려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2020년 4월 기준 공용 전기차 충전기는 한전과 환경부, 충전사업자, 지자체를 포함해 3만여 개로 나타났다. 개인이 설치해 사용하는 충전기는 통계에서 제외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전기차가 원활히 운행되기 위해서는 한 대당 필요한 충전기는 약 2.5기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전기차 대수를 충전기 개수로 나눠본 결과 전국적으로 충전기 1개당 전기차 5.5대 수준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대구는 무려 충전기 1개당 전기차 13.6대 수준이다. 1개당 전기차 대수가 적을수록 전기차 운행 환경이 좋은 것이다.
서울은 충전기 1개당 전기차 10.6대, 부산은 충전기 1개당 전기차 5.9대 수준이다. 충전기 1개당 전기차 대수가 가장 낮은 지역은 전북으로 충전소 1개당 전기차 2.6대가 쓰고 있다. 그다음으로 낮은 곳은 전남과 강원도로 충전소 1개당 전기차 2.8대로 나타났다.
7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 대수는 11만 4,318대다. 전기차가 원활히 운행되기 위해서는 대략 충전기가 30만기 정도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10분의 1 수준인 것이다. 전문가는 충전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차 보급만 무분별하게 늘리다 보니 전기차와 충전기 비율이 반대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충전기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은 점도 문제다. 차량 통행량이 많은 고속도로 휴게소 등 정말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충전기가 설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휴게소를 가보면 충전기가 2~3개뿐인 곳이 대부분이며, 1개만 설치된 곳도 적지 않다. 그렇다 보니 충전을 원하는 전기차가 몰릴 경우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외에도 충전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충전소를 어렵게 방문했더니 고장 나서 충전을 못 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배터리가 얼마 없어 난감한 상황에 처한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충전기 설치가
매우 어렵다
전기차를 구입한 소비자들 중 일부는 개인용 충전기를 집에 설치했으며, 설치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 하지만 국내는 개인 주택보다 아파트가 많다 보니 주차장에 충전기 설치가 쉽지 않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 혹은 지금 지어지는 아파트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가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를 고려하고 주차 구역을 설정했지만 의무화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의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기존 주차 구역을 전환하는 수밖에 없다. 일반 차를 운행하는 입주민 입장에서는 주차 가능한 구역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충전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이 중요한데, 따로 전기차 충전 전용구역을 차지하는 문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입주민들이 있다보니 설치에 어려움을 겪는 아파트가 많다.
2018년 어느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 A씨가 전기차 충전소 설치에 반대한 한 입주민이 자신의 차량으로 단지 내 차량 출입구를 막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안으로 과금형 콘센트를 설치하는 곳도 있으나, 충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어 일반 충전기보다 선호도가 낮은 편이다.
전기차 출고 대기가
너무 길다
전기차에 가장 중요한 부품이 바로 배터리인데 현재 배터리 공급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전기차 생산도 덩달아 늦어져 출고 대기가 계속 길어진다는 점이다. 코나 일렉트릭이나 니로 EV의 경우 출고 대기 기간이 대략 6개월 정도 된다고 한다.
배터리 납품 업체들이 공급을 늘리면 된다고 하지만, 배터리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해외 자동차 업체에도 납품을 하다 보니 무작정 국내 공급만 늘릴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기차 구매 결정을 유보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전기차 종류가
많지 않다
국내에 판매되는 전기차가 많지 않아 선택권이 좁은 것도 단점이다. 현재 국내에 판매 중인 국산 전기차는 초소형 전기차를 제외하고 코나 일렉트릭, 니로 EV, 쏘울 EV, 아이오닉 일렉트릭, 포터 일렉트릭, 봉고 EV, SM3 Z.E뿐이다. 특히 패밀리카 수요가 압도적인 중형급 이상 세단이나 SUV에는 전기차가 전혀 없다.
수입차로 가면 그나마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벤츠 EQC, 아우디 e-tron, 테슬라, 재규어 I페이스 등이 있지만 수입차다 보니 가격이 비싸다. 그나마 e-208이 저렴하지만 코나 일렉트릭보다 작은 소형차인데다가 주행거리가 짧다.
충전요금 할인이 줄어
소비자들 부담이 커졌다
한 신문사가 전기차를 구매한 이유 혹은 구매하려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충전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이 절반 가까이 되었다. 실제로 전기차 구입 비용은 내연기관차보다 비싸지만 보조금 혜택과 저렴한 충전요금 덕분에 오랫동안 타면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내연기관 대비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전기차 충전요금 특례 할인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기본요금 할인율도 100%에서 50%로 줄이면서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충전 비용이 대폭 높아졌다. 환경부는 공용 급속충전기 충전 요금을 255.7원으로 정했고, 민간 업체들도 그에 준하도록 가격을 결정했다. 특례 할인 축소로 인한 고정비 증가를 요금에 반영하면서 계절과 시간대에 차이가 있던 요금 제도 대부분 단일 요금제로 변경되었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 발표 이후 전기차 동호회에서는 전기차를 팔고 내연기관 자동차를 구입하겠다는 글이 부쩍 늘어났다. 전기차 충전요금이 소비자들의 예상보다 크게 오르며 전기차의 경제성이 예전보다 낮아졌기 때문이다.
한 이용자는 타고 있던 전기차 처분을 고민하고 있다며 “충전은 여전히 불편한데 충전 요금은 오르니 굳이 탈 필요가 없어졌다”라고 말했으며, 다른 이용자는 충전 요금 할인은 폐지하면서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길 바라는 것이 어이가 없다”라고 지적했다.
전기차 점유율 70%
노르웨이의 전기차 정책
전기차 점유율이 70%로 전기차 보급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는 노르웨이의 전기차 정책을 살펴보자. 노르웨이 정부는 2025년까지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내연기관차를 구매하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도록 전기차에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이미 1990년부터 전기차 구매할 때 등록세를 제외한 각종 세금을 면제해 준다. 노르웨이에서 차를 사려면 구매세, 부가세 등 세금으로만 차 가격의 절반을 추가로 내야 하는데 전기차는 면세이기 때문에 내연기관차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한 예로 폭스바겐 골프를 노르웨이에서 구매할 때, 내연기관 모델은 차 값에 세금을 합쳐 한화 4,070만 원에 구매해야 하는데 전기차 모델은 차 값에 등록세만 붙어서 3,580만 원에 구매 가능하다. 국내의 경우 보조금을 받더라도 전기차 가격이 1,000만 원가량 비싸다.
이외에도 2018년까지 통행 요금을 면제해 주고 2019년부터 통행료를 50% 이상 할인해 주고 있다. 그리고 내연기관 차는 도심 진입 시마다 한화 6,800원을 내야 한다. 공영 주차장의 경우 2017년까지는 무료로, 그 이후부터는 최소 50% 이상 할인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도 도심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대형 주차장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충전 시설을 쉽게 찾을 수 있어 노르웨이 시민들은 충전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전기차는 버스전용차로를 주행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전기차 정책 덕분에 독보적인 전기차 보급률을 자랑하고 있다. 향후 8,000대 동시 충전이 가능한 인프라 구축, 전기 택시를 위한 무선 충전 시설 등 계획된 정책도 많다.
전기차 보급에 치중한 정책보다
인프라 확장도 함께 신경 써야 한다
현재 국내 전기차 정책은 ‘전기차 보급’에만 치중되어 있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늘어난 전기차에 비해 인프라 구축이 상당히 지지부진하다. 세제혜택이나 고속도로 톨비 반값, 공영주차장 할인 등을 제공하고 있지만 충전 환경 등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오히려 전기차에서 내연기관으로 교체를 고려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즉 소비자들은 아직까지 ‘국내는 전기차 탈만한 환경이 아니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앞으로 전기차 관련 기술이 발전되고 출시되는 전기차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전기차 보급이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대차도 2025년까지 전기차 23종을 출시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남은 기간이 결코 짧지 않다.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효과적인 전기차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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