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현대차 신차들이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내놓는 신차들마다 좋은 판매량을 보여주었다. 판매량이 좋아지면서 소비자들이 감수해야 할 것도 생겼다. 길어진 출고 대기 기간이 바로 그것이다.
당초 출고 대기 기간이 길어진 원인은 공급을 한참 앞서는 수요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급이 문제라는 새로운 지적이 등장했다. 현대차의 생산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점을 지적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현대차의 출고 대기 기간이 유난히 긴 진짜 이유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이원섭 에디터
출시 전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발생한 현상
제조사가 출시 전 신차의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이 출고 대기 기간 증가의 대표적 원인으로 보였다. 수요가 제조사의 예측을 뛰어넘게 되면 제조사로써는 이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는 수많은 부품들이 장착되어 있어 공급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이 때문에 한 번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이로부터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
팰리세이드가 대표적이다. 출시 전 초기 연간 판매 목표는 2만 5,000대였으나 수요가 폭발적이었다. 6개월이 되기도 전에 판매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현대차는 이후 판매 목표를 9만 5,000대로 상향 조정했지만 한 번 발생한 공급 차질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것도 충분한 잘못이었다.
“매번 역대급 기록 경신”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전계약 수
사전계약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출고 대기 기간을 증가시켰다. 사전계약은 신차가 출시되기 전에 이뤄지는 계약인 만큼 공급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사전계약 수가 증가하니 당연히 공급이 뒤로 밀리게 되는 것이고 그만큼 출고 대기 기간이 길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최근 신차들의 사전계약 수를 보면 상당한 실적을 자랑한다. 4세대 카니발이 대표적이다. 사전계약으로만 3만 2,000대가 계약되었다. 출시 후에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8,000여 대가 추가 계약되었으니 4만 대가 대기 상태에 놓인 셈이다. 지금 구매한 소비자들은 연말에나 차를 받아볼 수 있을 예정이다.
팰리세이드는 출시 후 줄곧
상당한 출고 대기 기간을 자랑했다
앞선 예시에도 등장했듯이 팰리세이드는 출고 대기 기간의 대명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2018년 12월에 출시되어 줄곧 상당한 출고 대기 기간을 보여 왔다. 현대차는 수요 예측에 실패했으며 이후의 대처도 너무 늦어버렸다. 폭발적인 수요와 공급 차질이 겹치면서 한때는 출고까지 최대 1년이 소요되기도 했다.
팰리세이드는 올해 초에도 기본 6개월이라는 출고 대기 기간을 보였다. 공급량이 너무 부족해 중고차마저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출길이 막히면서 수출 물량을 국내로 돌리기까지 했지만 출고 대기 기간은 4개월 정도까지만 줄어들 뿐이었다. 기다림에 지쳐 출고를 포기하는 소비자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출시한 지 2년이 가까워지는데
아직도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팰리세이드의 출고 대기 기간은 출시 2주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 팰리세이드를 구매하려면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짧아진 수치지만 여전히 국산차 출고 대기 기간 중 상위권에 속한다. 출시 이후 1년 10개월 동안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쯤 되면 수요가 높은 게 문제가 아니라 공급이 부족한 게 문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출시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해서 공급에 차질을 겪고 있는 현대차를 꼬집은 것이다.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공급이 부족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괄 조립 고수하는 현대차 공장
당연히 공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길어진 출고 대기 기간에 대해 현대차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괄 조립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일괄 조립의 경우 한 라인에서 조립되는 차량의 종류가 정해져 있기에 유연한 생산 조절이 불가능하다. 특히 생산 방식을 변경하거나 차량 종류를 변경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일괄 조립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생산량을 유연하게 늘리거나 줄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어떤 차량은 많아서 ‘재고 떨이’를 하는 반면 어떤 차량은 ‘없어서 못 파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산 방식이 현대차의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지금보다 유연한 생산 방식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비판이다.
“안정적인 근로 환경을 위해서”
증산에 비협조적인 현대차 노조
증산에 비협조적인 현대차 노조를 문제 삼은 목소리도 있다. 증산은 시간당 생산량을 증가시키거나, 특근을 하거나, 라인을 추가 배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셋 모두 근로자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 노조의 생각이다. 시간당 생산량 증가와 특근의 경우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라인 추가 배정의 경우 특근 일수가 줄어 임금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에 소비자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편하게 일하고 돈은 더 많이 받으려는 노조의 이기심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라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특히 팰리세이드의 경우 작년에 노조가 라인 추가 배정을 거부하면서 계약 취소 2만 1,700대라는 결과를 낳았다. 많은 소비자들이 기다림에 지쳐 떠나간 만큼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가뜩이나 공급 부족한데”
수출 모델도 국내에서 생산
이미 포화 상태인 국내 시장과 더불어 국내 공장에서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도 출고 대기 기간 증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팰리세이드의 경우 작년 월 생산량이 8,600대였는데 이 중 5,000대를 미국으로 수출하며 논란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해외 소비자들 챙기느라 국내 소비자들이 기다려야 하는 꼴이다”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와중에 노조가 해외 공장의 신차 생산을 거부하는 일 또한 잦아 소비자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노조가 임금을 핑계로 해외 공장에서의 신차 생산을 거부하고 있으니 현대차는 국내 공장의 생산량을 두고 저울질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 소비자는 ‘힘없는 현대차’와 ‘이기적인 노조’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문제는 제조사가 만들고
피해는 소비자들이 받는 현실
물론 누군가는 “공급을 늘릴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인데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못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은 다르다. 현대차는 생산 방식의 변경 또는 증산을 통해서 충분히 공급량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다. 노조와의 줄다리기 때문에 출고 대기 기간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현대차가 노조와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소비자들은 계속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안일함과 노조의 이기심으로 만들어진 문제로 인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전통 강호들을 빠르게 따라잡겠다는 현대차가 정작 시대에 뒤떨어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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