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계속 변한다고 하는데 2005년에 사망한 피터 드러커의 저서는 아직도 널리 읽힌다. 새로워 보이는 경영 이론도 깊은 속을 들여다 보면 그다지 새롭지 않은 때가 있다.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 까닭이다. 알맹이는 그대로 두고 표현을 달리 하면 좋아 보이고 새로워 보일 뿐이다.
자기계발서는 왜 끊임 없이 나오고 누군가에 의해 쉼 없이 읽혀 생명력을 유지하는 걸까. 실천에 옮기는 일이 어렵고, 실천하더라도 방향이 잘못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지금 사상 최악의 위기를 돌파해야 때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아는 게 먼저다. 본질을 놓친 걸까, 방향이 틀린 걸까. 우리나라 자동차 생산량은 7위까지 떨어졌다.
글 오토포스트 디지털 뉴스팀
스마트폰 제조사는 많다고 하기 어렵다. 삼성과 애플의 점유율이 가장 높으며 그 뒤를 화웨이, 소니 등이 있다. 일상에 깊이 침투해있는 제품이지만 자국의 브랜드가 별로 없는 이유는 기술력과 생태계 조성 등으로 진입장벽이 높으며 삼성과 애플이 이미 다양한 라인업을 통해 중저가에서 프리미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비층에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약진에 눈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비해 자동차 제조사는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에만 40개에 가까운 브랜드가 경쟁을 벌인다. 세부적인 모델로 들어가면 실로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가 우리나라를 누비고 있는 것이다. 점유율로 보면 현대기아차가 80%이기 때문에 독점시장에 가깝다. 자국 브랜드이기도 하고 가격경쟁력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의 선택을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처럼, 독점 기업의 기술 혁신성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의 기업보다 기술 혁신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현상유지만 잘해도 매출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시도, 투자를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다.
투자는 기업이 영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경영학 수업 때 배우는 기본 원칙임에도 투자를 ‘비용’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 기업은 천천히 내리막길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 없다. 온실 속 화초는 들판의 잡초보다 생명력이 약하다. 자그마한 온실이 걷히게 되면, 세상 풍파를 견딜 수 있는 쪽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현대차 그룹은 작년 2018년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다. 4분기에도 영업이익이 5,000억원대로 떨어지면서 3분기에 이은 어닝쇼크를 보여줬다. 지난 2010년 국제회계기준 도입 이후로 가장 낮은 실적. 매출은 전년보다 4.8%P 올랐지만 영업이익은 35.4%P 감소했다.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고 쇄신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작년 3분기의 영업이익률은 현대차 1.2%, 기아차 0.8%로 이자소득세를 계산한 예금 금리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토요타와 폭스바겐 등의 글로벌 빅4은 5%를 넘어섰다고. 몸의 아픈 환부가 생겼을 때 자연 치유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약을 이용한다. 약으로도 어렵다면 수술을 해야 한다. 지금 현대기아차는 수술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아픈 곳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가? 철학과 고민의 부재
사업은 단거리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잠깐 숨 안 쉬고 치고 나가서 그만둘 일이 없고 회사가 망하기 전까지는 ‘끝’이 없다. 아무리 IT기술의 발달로 인해 속도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었지만 철학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차별화가 중요한 까닭이다. 변화에 일일이 다급하게 대응하기 보단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현대차 위기는 떨어진 판매량 때문이다. 작년에 사드 문제로 인해 중국 시장에서도 큰 손실이 있었고 시장점유율도 떨어졌다. 정치적인 이슈가 덜한 미국에서도 판매량이 뒷걸음질쳤다. 현대차가 이토록 제자리 걸음도 힘들어하는 이유는 쉽게 말해 경쟁력이 부족해서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먹히는 상품성과 브랜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생산샹을 늘리고 판매망을 확충하는 단순한 양적 팽창에만 신경을 쓴 결과. 현대차는 글로벌 메이커들이 힘들어했던 2008~2014년까지 큰 성장을 이뤘는데 현대차가 잘해서가 아니라 반사이익에 가까운 신장이었다.
현대차는 최근 5년간 생산능력을 573만대에서 878만대로 50%P 넘게 올렸지만 같은 기간에 매출은 10.8%P 늘어나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이 와중에 매출이 줄어들자 재고가 늘어나면서 판매부담이 커져버렸고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저리할부, 보증기간 연장 등의 일시적인 프로모션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시장점유율이라는 숫자에 얽매인 나머지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과 다양한 취향의 중요성을 놓쳐버린 것. 생산량은 기술력이 아닌데 말이다. 제품이 좋으면 판매량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늘리는 것이 이치에 맞다.
2015년에 새롭게 출범한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실패가 현대차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최근의 자동차 시장은 양극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벤츠, BMW 등이 세그먼트를 세분화하여 라인업을 다양하게 만드는 이유가 이런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SUV의 인기가 절정에 이를 동안 제네시스는 세단으로만 밀어 붙였다. 독일 브랜드에 비해 후발주자였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은 렉서스가 세단을 세분화하고 최근에는 SUV 라인업을 더 잘게 나눌 동안 제네시스는 새로운 SUV의 출시를 ‘예고’만 했을 뿐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다.
현대 부동산그룹 창설?
현대차그룹은 신사옥을 짓기 위해서 2014년에 서울 삼성동의 한국전력 부지를 10조 5,500억원에 매입했다.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지어서 개도국 등에 자동차와 건설 인프라를 함께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당시 현대차는 폭스바겐의 본사가 있는 지역에 거대 홍보관 아우토슈타트를 예로 들며 현대차가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도 말했다. 자동차는 점차 IT기기로 변화하는 중이다. 볼보를 인수한 뒤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리자동차는 볼보와 함께 링크앤코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범했다. 젊은 세대가 과거에 비해 자동차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적다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이며 빠른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신차 출시를 1년에 4번을 거친다. 시대의 변화를 읽고 위험을 감수하고 선제적으로 시장을 이끌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덴소가 만든 예측 주행 시스템
현대차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부족하다. 핵심 소프트웨어를 보쉬, 콘티넨탈 등의 해외 업체에 기대는 형편이다. 질적 성장을 외면한 결과다. 같은 아시아 제조 회사인 일본의 토요타는 덴소라는 세계 최대 전장 업체를 가지고 있고 ECU 관련한 기술을 독자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현대차그룹은 부동산에 20조 가까운 돈을 쓰면 안 됐다. 아예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지금의 현대에게는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부지 인수 1년 후에 제네시스가 출범했다. 제네시스를 현대차와 독립적인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려는 계획이 있긴 하다면, 그 돈의 일부는 제네시스 라인업을 위한 연구개발비로 들어갔어야 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가끔 필사가 추천된다. 베껴 쓰는 걸 말한다. 더 좋은 글을 음미하면서 따라 쓰다 보면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애초에 ‘좋은 글’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필사를 하다 보면 나만의 문체를 찾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성공한 작가의 문체는 치열한 고민과 연습의 결과인데, 그 결과물을 따라한다고 해서 영적인 부분을 체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메이커의 많은 판매량과 생산량을 따라가는 건 고민없이 필사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벤치마킹을 하려면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 대상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옆나라 일본의 토요타는 2009년 렉서스 차량의 결함을 부인하다가 1,000만여대의 자동차를 리콜하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고, 아키오 사장 취임 1년 째인 2010년에는 렉서스 등의 급발진 사고로 미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 정치인들의 비난을 받고 울며 사죄했다.과거의 나보다 나아지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라고 했던 헤밍웨이의 말을, 토요타는 실천에 옮겼다. 뼈 아픈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2015년에 영업이익 3조엔의 사상최고 실적을 냈다. 경영의 가치를 품질 중시로 바꾼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원가절감 능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역사를 호도하고 미화하기에 급급한 일본이지만 사업적인 부분만큼은 배울 게 있다면 배워야 하지 않을까. 토요타가 일본기업이라서 싫다면,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의 성공방정식을 연구해 현대차의 실정에 맞는 방법으로 변환해야 할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필요는 없다. 방향과 방법은 현대차의 문제다.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가능한 이익을 내고 싶다면, 본질을 호도해서는 이룰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