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회장님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국산 자동차 기업이 있다. 한국 SUV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은 기업이기도 하다. 코란도, 무쏘, 체어맨 등 당시 쉽게 볼 수 없던 상품성과 디자인의 자동차를 출시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에 한 획을 그은 쌍용자동차 얘기다.
그런데 이런 쌍용차가 최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쌍용차의 적자 혹은 판매 부진 소식은 새로운 이슈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더 큰일이 일어난 것 같다. 법정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10년 전 사건이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쌍용차가 걸어온 파란만장한 역사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정지현 에디터
지난 1986년, 쌍용차는 쌍용그룹에 인수됐다. 쌍용차는 당시 안정된 대주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코란도훼미리, 9인승 코란도9디럭스 등 연이어 대박을 터뜨렸다. 뒤이어 1993년, 전설적 모델로 불리는 무쏘를 출시하며 SUV 명가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이후에는 일명 ’90년대 회장님 차‘라고 불리는 대형 세단, 체어맨까지 출시하며 라인업을 넓혀갔다. 판매 부진에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최후의 보루로 내놓은 렉스턴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동안의 굴욕을 씻는 듯했다. 하지만 명성이 드높은 만큼 쌍용차는 그동안 파란만장한 나날들을 겪어왔다고 한다. 무슨 일이었을까?
외환 위기 직격탄
대우그룹에 인수되다
1996년엔 매출 1조 클럽에도 가입했던 쌍용차는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으면서 1998년 대우그룹에 팔렸다. 그해 국내 자동차 내수 판매는 전년 대비 48.5%나 급감했다. 회사 매출액 역시 7,942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대우그룹이 부도 사태를 맞게 됐다. 그로 인해 쌍용차는 12월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는 기구한 운명을 맞이했다. 그리고 5년 후인 2004년에 중국 상하이차에 매각됐다. 당시 중국의 2위 자동차 업체였던 상하이차는 자체 기술 습득과 중국 RV 시장 개척을 위해 쌍용차 인수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상하이차 기술 도둑질 논란
2009년에는 법정관리를 진행했다
그러나 2004년 중국 상하이차 인수 이후 쌍용차는 시장 존재감을 점점 잃어갔다. 그 와중에 상하이차의 기술 도둑질 논란과 대량 해고 사태까지 벌어져 큰 이슈가 됐었다. 이는 다시 말해, 중국에 쌍용차의 기술이 유출됐다는 것이다. 일명 ’먹튀 논란‘ 끝에 2009년, 쌍용차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 만은 않았다. 당시 구조조정 단행에 반발한 노조원들이 2009년 5월 22일부터 77일간 위험 물질이 산재한 평택 쌍용차 공장을 점거하고 화염병을 투척하는 등 폭력을 행사하며 불법 농성을 했던 사건이 벌어졌다. 고무 새총으로 발사한 볼트가 날아다니던 쌍용차 평택공장은 전장을 방불케 했었다.
파업 결과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파업 이후 2018년 7월까지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을 포함해 총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고 노동자들은 사측, 경찰, 보험사 등으로부터 손배가압류에 시달리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동종 기업에 재취업마저 불가능했다.
완성차 노조는 완전히 붕괴됐으며, 업계 임금은 완전히 동결됐다. 본 사건은 이후 상당수의 해당 노조가 무너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 쌍용차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2009년 법정관리 당시 벌어졌던 대규모 구조조정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중이다.
간신히 회생했지만
악순환이 반복됐다
쌍용자동차는 꾸준히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고 간신히 회생한 바 있다. 실제로 2010년 주인이 마힌드라 그룹으로 바뀐 뒤 소형 SUV 티볼리 등을 앞세워 2016년엔 인수 이후 처음으로 279억 원이라는 영업흑자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기아차와의 SUV 신차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다시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 게다가 대주주의 투자 결단 부진에 따른 기술력 부재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쌍용차의 대주주 지위 포기 의사를 밝힌 인도 마힌드라는 미국 자동차 유통회사 등과 매각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인수 후보자들의 기업 규모가 크지 않아 쌍용차 내부적으로도 인수에 회의론이 많은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쌍용차의 새 주인 찾기는 난항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사실 장기간 계속된 재무구조 악화와 코로나19의 타격이 상당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쌍용차는 평택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법인 회생 절차 신청을 결의했다고 한다. 회생 법원에 신청 서류도 접수한 상태이다. 만기가 도래한 차입금 600억 원의 연체가 회생 절차 신청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쌍용자동차는 회생 절차 개시 ARS 프로그램도 동시에 접수했다. ARS 프로그램이란 법원이 채권자들의 의사를 확인한 후 회생 절차 개시를 최대 3개월까지 연기해 주는 제도다. 이는 회생 절차가 개시되기 전에 현 유동성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겠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단기차입금이 2,241억 원
네티즌 반응은 냉담했다
쌍용차는 올 3분기 기준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2,241억 원에 육박한다. 이 와중에 3분기 영업손실은 932억 원이나 되니 눈앞이 깜깜할 것이다. 2017년 이후 15분기 연속 적자가 이어졌기 때문에 연초 대비 판매량이 일부 회복됐다고 해도 자금난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게다가 이미 쌍용차는 지난 4월과 6월 부산 물류센터와 구로 서비스센터를 각각 매각한 바 있다. 이미 팔 수 있는 자산을 모두 매각해 추가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동안 쌍용차가 부활하기를 바라왔던 소비자들도 이번만큼은 “쌍용차도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이제 놓아줄 때가 온 것 같다”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선 “아쉽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할 듯하다”, “지난 10년간 5년이라도 흑자였으면 그래도 희망이 있는데, 난 모르겠다”라며 현실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죽음을 맞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은 전쟁이다. 당장의 전쟁 같은 삶에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지 계획하는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일일 수도 있겠다.
생명체는 아니지만, 기업도 마찬가지다. 여러 삶이 한곳에 모여있다 보니 그만큼 역동적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는 게 기업이다. 한때 국민의 발이 되어주던 쌍용자동차 역시 지금은 전쟁 같은 삶의 한 가운데에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기적처럼 또 다른 막을 열게 될지 아직은 섣불리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쌍용차가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