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과 같은 목조 구조물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병충해는 무엇일까? 바로 흰개미로 인한 부식이다. 자연재해나 외부 환경으로 인한 물리적인 손상은 쉽게 식별 가능하고 빠르게 조치도 취할 수 있지만, 구조 내부에서부터 침식하는 흰개미 떼는 식별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치명적인 손상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최근, 자동차 제조업계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 뜨거운 시장 반응을 일으키며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있는 아이오닉5의 생산이 내부 문제로 인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회사와 마찰을 빚고 있는 “이 집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는데, 무슨 연유일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신차 생산 일정에 차질을 일으키는 노사 갈등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이충의 에디터
현재 전 세계 자동차 업계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용 반도체 수급난이 일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자동차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에 따라 수요가 줄어들면서 반도체 생산 업체 측에선 관련 설비를 확충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 시장에서 코로나 영향력이 감소함에 따라 자동차 생산량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수급난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 잇단 신차를 출시하며 생산에 박차를 가해야 할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아이오닉5의 생산 지연은
반도체 탓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놀라운 사전 계약 건수를 기록하며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있는 아이오닉5의 생산 지연 소식이 전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이 어려운 상황인지라, 사람들은 이번 생산 지연 사태도 글로벌 반도체 이슈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미 삼성 전자, DB하이텍 등 반도체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 공급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을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이오닉5의 생산 라인이 멈추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전기차 생산 시간당 전문 인력 배치 문제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 때문이었다.
전기차 생산 관련
노동 인력 배치 규모에 대한
노조의 반발 때문이었다
전기차는 구조 특성상, 내연 기관에 비해 배기 라인이나 전선 배치 등이 간결하게 되어 있으므로, 내연 기관 차량에 비해 필요한 전문 인력의 수가 많지 않다. 때문에 아이오닉5를 시작으로 전기차가 내연 기관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면, 그만큼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의 수가 줄어들게 되며,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이에 노조는 일자리 확보를 위해 전기차 핵심 부품을 생산 라인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차 측에선 관련 부품을 외주화하기로 결정했고 해당 결정에 노조가 반발하면서 생산에 차질이 생기게 된 것이다.
팰리세이드 생산 당시에도
노사 간 갈등으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사실 노사 간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아 신차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 사례는 이번 아이오닉5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현대차의 첫 대형 SUV 팰리세이드가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계약 건수를 기록했을 때에도, 생산 일정에 대한 노조의 반발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초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출시 당시, 연간 판매 목표를 2만 5천 대로 상정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팰리세이드가 일으킨 바람은 생각보다 거셌고, 출시된 지 약 6개월 정도 만에 누적 판매량이 목표 판매량을 넘겨 버리는 상황을 연출해냈다.
이에 현대차 측에선 연간 판매 목표를 9만 5천여 대로 상향 조정했으며, 생산 일정 조율에 나섰다. 하지만 차량 증산에 대해 노조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비 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심각한 출고 지연 현상이 야기되었다.
결국 노조 측과의 증산 합의 실패로 출고 대기 기간이 비약적으로 길어지면서, 국내에서만 2만 1,700여 건의 계약이 취소되었다. 2만여 대의 차량이 취소되었음에도 지연 물량만 3만 5천 대에 달하여, 계약 후 1년 뒤에 겨우 차량을 받아볼 수 있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노사 간 불협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팰리세이드 사태 당시 증산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공장별 생산 모델, 규모를 조정하는 데 있어 노조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노조와 현대차 간의 “단체 협약” 내용 때문이었다. 아이오닉5의 경우도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생산 일정에 차질을 준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일이 발생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해외 시장 대비 노사 간 협의 주기가 짧은 국내 제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미의 노사 협상 주기는 4년이지만, 국내의 경우 1년으로 짧다. 매년 근무 처우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 소식이 끊이지 않고 전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오닉5 소식으로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해지고 있다
한편 네티즌들은 끊이지 않고 대두되는 노사 갈등 문제에 지겹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노조 문제냐?”,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집단”, “도대체 언제쯤 조용해질지 궁금하다” 등, 거듭되는 노사 갈등 문제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처우 개선을 이유로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모습을 비판하는 의견도 찾아볼 수 있었다. “노조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자기 일부터 제대로 하고 나서 권리를 요구해야 할 것”, “자기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등 네티즌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눈앞의 이익을 좇기보단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것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획기적인 마케팅으로 시장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정작 판매할 차량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이익은 창출되지 않는다. 이는 다시 말해, 해당 성과를 발휘하기 위한 각 구성원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시기마다 권리를 주장하며 쟁의를 벌이는 일은 사람들에게 기업을 상대로 협박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인 전략을 위해선 먼저,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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