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말, 자동차 마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영화 한 편이 개봉됐다. 바로 ‘포드 V 페라리’이다. ‘포드 V 페라리’는 1960년대 자동차 레이싱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포드’가 지옥의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 24 레이스에 출전해 당시 6연패를 달리는 ‘페라리’에 대항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그런데 최근 이 영화가 다시금 재조명 받고 있다고 한다. 바로 영화의 한 장면에서 캐롤 셸비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이 한 한국어 대사 때문인데, 무슨 이유로 한국어가 나왔을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미국의 자동차 영화 포드 V 페라리에 한국어 대사가 나온 이유에 한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김민창 수습기자
‘안녕하세요’
‘Shelby American’의 한국인 디자이너
영화의 중반 한 장면에서 캐롤 셸비 역을 맡은 맷 데이먼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맷 데이먼은 나지막하게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을 한다. 갑자기 맷 데이먼이 한국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맷 데이먼이 연기한 ‘캐롤 셸비’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캐롤 셸비가 설립한 “Shelby American’이란 회사 내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John chun’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John chun이 바로 한국인 이였기 때문이다.
영어 이름 ‘John chun’
한국 이름 ‘전명준’
이북 출신인 그는 당시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의 삼촌댁에 지내며 학업에 몰두한 그는 서울대 공과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발발했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그는 1957년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떠난다.
처음 입학한 ‘Junior college’에서 기계를 다루는 능력과 디자인 감각을 인정받은 그에게 교수들이 자동차 디자이너를 권유하며 ‘아트 센트 디자인 대학교(이하 ACCD)’를 추천했다. ACCD는 산업과 관련된 모든 디자인을 가르쳐주는 학교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디자인 학과가 있다. 현대차 디자인센터 전무로 있는 이상엽 전무도 이 학교 출신이다. ACCD에 진학한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농업장비 회사에서 정비사로 일하며 학업을 병행한다. 졸업 이후 많은 나이로 인해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Shelby American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Fred Goodell이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채용한다.
미국의 레이싱 선수가
설립한 자동차 제조업체
‘Shelby American’이란 회사는 영화에서 맷 데이먼이 연기한 캐롤 셸비가 캘리포니아주 산타페에 창립한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이자 튜닝업체이다. 캐롤 셸비는 레이싱 선수이자 자동차 디자이너 또한 겸업했다.
당시의 ‘Shelby American’에서는 한창 포드 엔진을 얹은 셸비 코브라와 머스탱의 고성능 버전을 개발하던 시기였는데, 그가 들어가면서 머스탱의 디자인은 변혁을 이루게 된다. 차 디자인 이외에 엠블럼도 변화를 주었는데, 기존의 셸비 코브라 엠블럼 디자인은 완성도가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그는 6개월간 코브라의 움직임을 연구해 완전히 새로운 셸비 코브라 엠블럼 디자인을 완성시켰다.
Shelby American에서
그의 활약은?
회사에서는 그에게 머스탱 바디 한 대를 주며 “어떻게든, 뭐든 해봐라”라고 주문했다. 미국의 대표 머슬카인 머스탱의 고성능 버전을 위해서는 엔진뿐만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미국스러운 멋이 담긴 머슬카 이미지를 가져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정비사로 일한 경력을 살린 그는 기계 쪽으로도 능통해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데 있어 다른 디자이너에 비해 차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이를 높게 평가한 회사는 그에게 GT 카의 디자인 전권을 위임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1967년부터 1969년형까지의 GT350과 GT500을 완성시켰다. 그가 완성 시킨 셸비 GT 카들은 당시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고 현재까지도 명차로 남는다.
‘닷지 챌린저’
‘로드 러너’
그는 Shelby American에서의 업적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 내에서 높게 평가돼 크라이슬러로 이직하게 된다. 크라이슬러에서도 이름있는 ‘닷지 챌린저’와 ‘로드 러너’같이 중요 모델들을 작업하며, 당시 포니를 개발하던 현대자동차에게 디자인 자문을 주기도 했다.
80년대 판매 부진이 지속되던 크라이슬러는 결국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그는 이 시기에 크라이슬러를 나오게 된다. 이후 미네소타 주의 한 장난감 회사에서 장난감 트럭의 디자인을 하고 은퇴를 했다. 그리고 미네소타에 자리를 잡고 중식당을 열어 여생을 보냈다.
가장 미국스러운 미를
디자인한 한국인
셸비 머스탱과 닷지 챌린저 등을 디자인한 사람이 한국인이란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이 소식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거냐”, “아메리칸 머슬의 상징이 한국인 작품이라니”, “다시 보니 머스탱 디자인이 뭔가 친근감 있다”, “당시 힘든 시대 상황 속에서 대단하다”라며 그의 업적에 놀라움을 표했다.
60년 전, 가장 미국스러운 미를 디자인 한 한국인 ‘전명준’ 당시 그가 디자인한 차를 보면, 요즘 나오는 신차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디자인을 자랑한다. 영화에서도 잠깐이지만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한국어 대사를 사용한 것을 보면 그가 남긴 발자국은 실로 대단해 보인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