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출시 초기에는 실제 판매량보다 대기 수요가 훨씬 많았다. 한국 시장에서 꾸준히 판매량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현대 그랜저’의 대항마 이미지로 등장하였고, 정식 출시 전 소비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쉐보레 임팔라’ 이야기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 하나가 떠오른다. 임팔라는 그 반대다.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리라”에 가깝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쉐보레 임팔라’가 한국 시장에서 창대하게 시작하여 미약하게 끝나버린 이유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김승현 기자
“임팔라 더 이상 안 판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일, 한국지엠이 ‘쉐보레 임팔라’를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한다. ‘스테이츠맨’, ‘알페온’에 이어 임팔라도 쉐보레 플래그십 세단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올해 1월 임팔라 판매량은 고작 1대에 불과했다.
분명 출시되기 전부터 출시 초기까지 임팔라를 향한 소비자의 반응과 수요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등장한지 4년 만에 한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랜저의 대항마로 불렸던 임팔라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 GM에서도
단종 설이 계속 나왔었다
임팔라의 판매량이 수직으로 추락한 이유가 여럿 있다. 크게 다섯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GM에서도 임팔라 단종 설이 계속 나왔었다는 것이다. 본진인 미국에서도 단종 설이 나왔으니, 한국 시장에선 오죽할까.
지난 2017년, 제너럴모터스가 미국 내에서 SUV를 제외한 승용차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2020년 이후 6종의 5인승 이하 승용차를 단종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었다.
당시 거론되던 미래가 불투명한 6종의 자동차 목록에는 ‘쉐보레 임팔라’와 더불어 ‘볼트’도 있었다. 현행 2세대 볼트는 2022년 즈음 세대교체가 이뤄질 예정인데, 세단 형태를 버리고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 모델로 나올 것이라 외신들은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UAW 노조 위원장 데니스 윌리엄스는 가동률이 낮은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자동차들을 크로스오버와 같은 차종으로 교체할 수 있는지 GM과 논의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 내에서 단종될 가능성이 높거나 위태로운 자동차로 거론되던 자동차 리스트를 자세히 언급하자면 헴트램크 공장에서 생산되는 ‘쉐보레 임팔라’, ‘쉐보레 볼트’, ‘뷰익 라크로스’, ‘캐딜락 CT6’, ‘캐딜락 XTS’, ‘쉐보레 소닉(아베오)’ 등이었다. 캐딜락은 보도 직후 CT6의 단종 가능성을 부인했고, 쉐보레는 따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대기 물량만 8,000대
대기 기간 만 4개월
둘째는 초기 수요 물량 예측을 실패했다는 것이다. 임팔라는 한국 출시 초기부터 잡음이 많았다. 이는 전적으로 한국지엠의 잘못이다. 수요 예측을 실패하여 대기수요만 8,000대에 달했고, 대기 기간은 무려 4개월가량이었다.
단순히 생각해보자. ‘그랜저’를 4개월이나 기다려야 한다면 몇 명이나 계약을 유지하겠는가.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해 소비자 이탈이 발생했고, 쉐보레의 보기 드문 초기 가격 경쟁력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미국에서 전량 수입 판매되는 ‘수입차’라는 점과 ‘빗나간 수요 예측’ 두 가지 요인이 겹치면서 시장 공략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상 계속 찬밥 신세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쉐보레는 ‘스파크’와 ‘말리부’다. 지난해 쉐보레 전체 판매량에서 ‘스파크’의 점유율은 31.5%, ‘말리부’의 점유율은 18.3%였다. ‘임팔라’는 1.7%에 불과했다. 다른 제조사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말이 달라지겠으나, 쉐보레만 놓고 보았을 때는 스파크와 말리부가 가장 적극적으로 시장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델들로 통한다. 부분변경이던, 연식변경이던 말이다. 브랜드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이니 당연하다.
주력 모델인 말리부, 스파크 등에 밀려 임팔라는 사실상 한국 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다. 현대차로 치면 초기에만 마케팅이 활발했던 ‘아슬란’과 같았다고나 할까. 임팔라와 관련된 가장 최근 소식으로 기억나는 것 중 하나가 ‘미드나이트 블랙 에디션’ 출시 기사다. 무려 2017년 10월의 일이다.
타이밍과 시장성 반영
뫼비우스의 한국지엠
쉐보레 차를 타는 소비자들은 하나같이 ‘기본기’를 언급한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차가 있으나 그간 국산차만 타던 소비자들은 조금 다른 주행 감성을 느낄 수 있다. 한국지엠도 이와 관련된 마케팅을 전략적으로 많이 활용했었고, 임팔라 역시 성능 면에서 경쟁 차종들보다 조금씩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마케팅 전략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오래가지 못했다. 뫼비우스의 띠는 두 바퀴를 돌면 처음 위치로 돌아온다. 뫼비우스의 한국지엠이라는 말이 적절할까. 그간 실패했던 쉐보레 차종들처럼 임팔라 역시 변해가는 소비자 니즈를 적절한 시기에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렇다고 가격 측면에서 매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본기’만을 가지고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범위로 넘어가버렸다.
한국 철수 밑 작업 설
또한 군산 공장 사태 이후 적극적인 재도약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이쿼녹스’와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내놓았다. 이어 임팔라 판매 중단까지 선언하니 한국 소비자들은 “한국 시장 철수를 위해 밑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의심과 심증을 물증으로 만들어가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지난해에 열린 국회 ‘산업 통상 자원 중소 벤처기업 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 증인 신분으로 출석한 카젬 사장은 ‘향후 공장 폐쇄나 철수 계획’에 대한 질문에 “전혀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폐쇄한 군산 공장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재개발이나 이전 등 여러 대안을 고려하고 있고, 공장에 관심을 보이는 몇 주체들과 협상 및 논의 중에 있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달라”라고 말했다.
이 외에 ‘군산공장을 한국지엠의 물류공장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한 반응은 소극적이었고, ‘군산 공장 활용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MOU를 추가로 맺는 방안 제안’에 대해서는 “검토해보겠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철수 위기’, ‘철수 설’, 그리고 ‘단종 설’까지 나오는 자동차를 사고 싶은 소비자는 몇 없을 것이다.
수요는 넘쳐났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임팔라 출시 초기에는 대기 수요만 8,000대에 달할 정도로 소비자들의 선택이 결코 적지 않았다. 실제 판매 실적을 살펴보자. 2015년 8월 국내 첫 출시 이후 12월까지 임팔라는 총 6,913대가 판매되었다.
2016년에는 1만 1,347대를 판매하며 안정적인 판매량을 보였으나, 2017년에 3,603대로 곤두박질쳤다. 이후 2018년에는 1,549대, 2019년 1월에는 고작 1대를 판매하는 것에 그쳤다.
말리부, 크루즈 등
거의 모든 쉐보레가 그랬다
사실 쉐보레는 신차효과만 제대로 보거나, 아예 신차효과도 못 보는 결과를 여럿 보였었다. 신차효과도 못 본 대표적인 자동차는 ‘이쿼녹스’, 신차효과만 봤던 대표적인 자동차는 ‘말리부’가 아닐까 한다. 임팔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쉐보레 차량들이 출시 초기에만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였다는 이야기다. 르노삼성 ‘QM6’나 ‘SM6’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말리부’는 처음 출시되었던 2016년 5월부터 12월까지 3만 2,414대를 판매했다. 이어 2017년에는 3만 3,328대를 판매했는데, 바로 다음 해인 2018년에는 절반 수준인 1만 7,050대를 판매하는 것에 그쳤다. ‘올란도’ 역시 마찬가지로 출시 초기 2만여 대의 판매량을 유지했으나 2017년에 8,067대로 급감한 뒤 단종 수순을 밟았다. ‘이쿼녹스’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심증을 물증화하는 중
반복되는 실수도 실수로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 보는 사람이 실수라고 납득할 수 있을까. 그들은 군산 공장 사태 이후 재도약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지난해 부산모터쇼 이후 제대로 된 재도약을 이뤄내나 기대했으나 결과물은 이쿼녹스였다.
이제 기존에 판매되던 차종까지 판매 중단 선언을 하면서 사실상 소비자들의 한국 철수 설에 대한 합리적 의심과 심증을 스스로 물증으로 만들고 있다. 타이밍, 가격, 상품성… “재도약 할 것”이라 했던 그들이 이중 제대로 갖춘 것이 하나라도 있었는가. 반복되는 실수, 소비자에겐 실수가 아닌 고의로 보인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