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조짐”, “인기몰이”… 팰리세이드 출시 전후로 매체들이 많이 쓰던 기사 제목 키워드다. 판매량만 보면 팰리세이드는 성공했다. 뒤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현대차가 스스로 말한 연간 판매량을 불과 몇 개월 만에 달성했고, 지금은 대기 수요까지 넘쳐나는 상태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냥 밝지만은 않다. 어떤 매체는 팰리세이드가 현대차의 민낯을 들춰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최근 계약 취소 사태까지 벌어진 팰리세이드 그림자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김승현 기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기 물량만 3만 5,000대라는 말을 들었고, 나는 이에 대한 비판 칼럼을 비하인드 뉴스에 실었다. 이 글을 내보낸지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2만 대 계약 취소 사태가 벌어졌다는 소식이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정확히 말하면 2만 1,700대 정도, 모두 국내 계약 취소 건이다.
문제는 계약 취소가 2만 1,700건이나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대기 물량은 3만 5,000대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1년 가까이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소비자들이 계약을 취소한 것인데, 여전히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인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에서 수습 불가한 포화상태까지 오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 기업의 수요 예측 실패
초기 판매 목표 2만 5,000대
갑자기 9만 5,000대로 상향 조정
첫째는 기업의 수요 예측 실패다. 노조 문제만 짚는 경우가 많은데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기업에게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출시 초기 연간 판매 목표를 2만 5,000대로 잡았다. 그러나 출시 후 6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누적 판매량이 연간 판매 목표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판매된 물량이 3만 대를 넘어서면서 현대차는 연간 판매 목표를 9만 5,000대로 늘렸다. 4배 가까이 늘린 것이다. 일각에서는 출시 초기부터 차량 생산 수요 예측 실패뿐 아니라 알콘 브레이크, 타이어 등 부품 수요 예측도 실패했다고 지적했었다. 사실상 출시 초기부터 공급 차질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탓도 없지 않다.
2. 말 그대로 비상인데
증산 동의는 어려운 노조
둘째는 노조의 비협조다. 현대차는 지난해 11월 팰리세이드 출시 이후 2개월 만인 올해 1월 노조에 증산을 제안했다. 노조는 4월이 되어서야 증산 제안을 수용했다. 월간 생산량이 이때부터 6,200대에서 8,600대로 늘었다. 최근 현대차는 그럼에도 대기 물량이 줄어들지 않자 노조에게 울산 2공장 추가 증산을 제안했다. 그러나 4공장 노조원들이 반발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에는 노사 고용안정 위원회 증산 합의가 실패되었고, 국내 계약 취소 2만 1,700대와 대기 물량 3만 5,000대라는 결과물을 낳게 되었다. 노조 집행부 측은 증산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4공장 노조 대의원들이 반대하면서 합의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생산량을 2개 공장이 나눠 가지면 4공장 근로자의 특근 일수가 줄어 임금이 감소한다”라는 것이 이유라 한다.
해외에서 생산되는 현대기아차가 국내에 판매되려면 노조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독소 조항’의 존재를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것 같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공장별 생산 모델을 조정하는 것도 노조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한 ‘단체 협약’도 존재한다.
이 단체 협약에는 ‘차량을 생산하는 공장을 조정하려면 노조 동의를 구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팰리세이드 사례처럼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포화 상태에도 기업은 노조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3. 한국 물량에 미국 출시까지
이미 포화상태 넘어섰다
셋째는 북미 시장 출시다. 한국 물량이 이미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미국 출시까지 겹쳤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팰리세이드는 이미 수습 불가 수준으로 포화상태인 울산 4공장에서 생산된다. 증산 합의에 따라 월 8,600대를 생산하고, 이중 5,000대는 미국으로 수출하며, 나머지는 국내 시장에 공급한다.
즉, 국내 공급 물량은 월 3,600대 정도가 생산된다는 이야기인데 지금 대기 물량은 3만 5,000대다. 단순히 계산해봐도 대기 물량이 모두 소화되려면 10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 매일 새롭게 들어오는 계약건까지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10개월로는 모자라고 “1년 대기”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북미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쪽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터. 북미와 한국 시장 모두 해결하기 어려운 총체적 난국이다.
국내 공장 가동률 100%
실적은 1974년 이래 처음 적자
“국내 공장 가동률 100%”, 그리고 “국내 공장 실적 상장 후 첫 연간 적자”… 서로 다른 제조사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모두 현대차 국내 공장을 말한다. 공장 가동률은 100% 지만 실적은 적자라는 이야기, 즉, 공장 효율이 그만큼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공장 가동률은 106%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공장 실적은 적자, 영업 손실은 593억 원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장 가동률과 수익성 비례 관계가 깨졌다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인건비 상승, 중국 시장 부진으로 인한 유동성 지원 등 고비용 구조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공장 가동률, 공장 실적, 영업손실, 팰리세이드 대기 물량, 그리고 계약 취소 건수가 현재 현대자동차 국내 공장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 공장 가동률은 그 어느 곳보다 높지만 실적은 적자에 영업 손실까지 보이고 있다.
이미 어떤 병이 있고, 어떤 약을 써야 한다는 진단까지 나온 상태지만 정작 약 처방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다. 어딘가로 문제를 분산시켜 해결해야 하지만 계속해서 막히고 있다. 그들은 앞서 계속 말했듯 “생산 물량 나누면 임금 깎인다”라는 이유로 약 처방을 거부하고 있다.
해외 공장은 가동률 하락
중국은 구조조정 사태까지
반면 해외에 있는 현대차 공장은 가동률이 저조하다. 미국 공장은 2011년 이후 최저 가동률을 기록했다. 2011년 112.7%, 2012년 111.9%를 기록하던 것이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다가 지난해에는 87.2%까지 떨어졌다.
중국 베이징 공장도 상황이 나쁘다. 베이징 3공장은 올해 4월 15만 대 규모를 감산했다. 이 당시 연간 30만 대 생산이 가능한 1공장은 ‘셧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한국 공장은 높은 가동률과 낮은 효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해외 공장은 오히려 일감이 없어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글로벌 생산해야 한다”
이미 수입차 제조사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간단하다. 국내 공장은 포화상태, 해외 공장은 가동률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포화상태로 있는 국내 생산 물량을 가동률 저조한 해외 공장으로 넘겨주면 된다. 애초에 한국에 판매되는 모든 모델을 국내 공장에서만 생산하고, 해외에서 판매되는 일부 모델만 해외 공장에 맡긴다는 것이 적절한 대응과 수요 추세에 전혀 맞지 않는 구조다.
많은 이들이 “현대차도 이제 글로벌 생산 체제로 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미 다른 제조사들은 글로벌 생산 체계를 잡은 지 오래다. BMW는 모든 SUV 모델을 독일이 아닌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토요타, 혼다 등 일본 제조사들도 북미에서 주력 모델들을 생산한다. 독일에서 판매하는 차라고 독일 공장에서만 생산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차라고 일본 공장에서만 생산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차라고 한국 공장에서만 생산하라는 법도 없다는 이야기다.
에바 가루를 비롯한
품질 결함 논란 확산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2만 대 계약 취소 사태가 단순히 대기 기간 때문만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에바 가루를 비롯한 품질 결함 논란도 계약 취소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팰리세이드는 에바 가루 논란을 비롯하여 변속기 결함 논란, 계기판 블랙아웃 논란 등 여러 품질 논란이 현재진행형에 있다.
계약 취소라는 것이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은 단순히 대기 기간이 긴 것만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문제로 삼는다. 이미 결함 논란에 대한 여론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으나 크게 이슈 되지는 않고 있다. 조만간 이 문제에 대해서도 한 걸음 더 들어가 볼 예정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밝은 빛을 위해 치열하게 다투는 중이다. 서로 더 밝은 빛을 내기 위해, 더 밝은 빛을 보기 위해 더욱 강경하고 단호하게 맞대응을 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이 옳은 것인지, 자동차 회사로서 발전을 위한 것인지는 훗날 결과가 말해줄 것이라 본다. 모든 피해는 결국 돌고 돌아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은 이미 명백하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 현대차와 팰리세이드, 그리고 공장과 노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여러 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내 방식대로 글을 표현하다 보니 경제와 정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 어떤 작가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