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가 최근 근황을 알리는 소식을 내놨다. 그런데, 좀 안 좋은 소식이다. 쌍용차의 살아있는 역사인 평택공장을 매각시키기 위해 나놨단 소식인데, 실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식은 곧 정말 조금만 삐끗하는 순간 회사가 완전히 없어질 수 있는 소식인데, 전 직원 1년 순차적인 무급휴직이라는 키워드 또한 마냥 좋게만 보이진 않는다.
과거 쌍용은, IMF 위기 때 대우자동차에 인수되었다가 대우마저 파산하는 바람에 도로 뱉어내었고, 이후 쌍용은 독자적인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으나, 돌연 급작스럽게 체리 자동차(상해기차)에 매각이 되었고, 핵심 기술 및 개발 인원만 홀랑 빼앗겨, 엄청난 타격과 자력으로 회생이 가능할까 할 정도로 회사가 무너졌던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 이후, 마힌드라에게 인수되었으나, 마힌드라 마저 쌍용에게 고개를 저으며 매각의 절차를 밟았다. 이후 쌍용의 행보는 어찌 될지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겠다.
글 권영범 수습 에디터
쌍용의 역사는 1954년 하동환 제작소부터 시작이 된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에는 미군이 버리고 간 지프가 정말 많았던 시기였는데, 시-발 자동차과 비슷한 맥락으로 버려진 폐차들을 활용하여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의 기술력은 1950년대 서울시 시내버스 70%가 그의 손에서 나올 정도로 대단했으며, 이후 지프와 버스를 만드는 노하우가 축적되어, 1962년 동방 자동차 공업에 합병되어 공장의 부지를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으로 이전한다.
후 1967년 상공부의 자동차 산업 계열화 정책으로 인해 당시 도요타 자동차들을 라이센스 생산하여 판매하던 신진 자동차에 인수되었고, 신진의 계열사로 편입되어 그 당시 신진 자동차가 판매하던 도요타 FB100LK 및 DB102LC를 위탁 생산하다가, 당시 중국의 총리였던 저우언라이의 “저우 4원칙”을 발표하면서 중국 시장을 노리기 위해 도요타는 신진을 배신했다.
도요타의 배신으로 인해 신진이 이리 팔리고 저리 팔리는 걸 바라본 동방 자동차 공업은 1975년 신진 자동차와 독립을 하였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시켰다. 이후, 1977년 동아 자동차로 상호를 변경하여 이때부터 옛날 사람들에게 선대 코란도로 잘 알려진 동아 지프가 탄생하게 된다.
사업의 탄력을 받아 1979년 지금의 쌍용의 본사이자 생산기지인 평택공장이 탄생하게 되었다. 1980년 신진 자동차는 AMC (아메리칸 모터스)와 함께 신진지프라는 브랜드로 따로 활동하다가, 수출 문제로 인해 관계가 악화되어 지프의 지분이 빠지자, 상호명을 변경하여 거화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고, 거화 자동차가 우리가 알고 있는 코란도라는 브랜드를 내었다.
1984년 연말에 거화는 흑자도산을 하였지만, 부자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인해 결국 부도처리 되어 거화를 처분하였고, 처분한 거화의 지분을 동아 자동차가 인수하여 본격적인 4WD 자동차를 생산하였다. 당시의 하동환 회장은 창업 이래 ‘무차입 경영’을 선호하였지만,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신차를 개발해야 할 상황에 놓여지자 이에 큰 부담을 느꼈고, 결국 개발 여력이 있는 쌍용에게 그룹을 넘겼다. 이후 동아 자동차는 1988년 3월 상호를 쌍용자동차로 변경하게 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쌍용이 무너지는 건 이미
예견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소 복잡하고 얽혀있는 과거사를 알아봤다. 이후 쌍용차는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하고, 기존의 코란도 또한 잘 팔리면서, 대한민국의 원조 4WD 생산의 업체로 자리를 잡으며 입지를 다졌다. 또한 1993년 ‘이노베이션 원년’을 선포하며 메르세데스-벤츠의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하였고, 벤츠의 기술력으로 탄생하게 된 SUV 무쏘는 가히 성공적이었다. 1996년에는 뉴 코란도를 출시하며 연이은 대박 행진을 이어갔지만, 이 두 대만으로 쌍용의 미래를 바꾸진 못했다.
그 이유는, 1992년 체어맨의 개발에 막대한 투자비용으로 인해 3조 4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빚과 당시 쌍용차의 회장 김석원은 무리한 정계 활동으로 인한 경영 소홀까지 더해져 쌍용그룹 전체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못 넘겼고, 쌍용차의 불행의 시작이 된 계기가 된다.
짱룡자동차 혹은 X놈자동차라
불리기 시작한 계기
IMF 외환 위기 때 잠시 동안 대우자동차는 쌍용을 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 또한 경영부실로 인해 무너지면서, 쌍용은 다시 대우와 독립하여 워크아웃에 나선다. 같은 시기 해외매각설도 잠시 사실인 것 마냥 떠돌았다. 이런 풍문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대우자동차 산하 시절에 개발하였던 렉스턴이 대박을 치면서 꾸준한 흑자전환으로 잘 회생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흑자로 쌍용을 잘 꾸려가나 싶더니, 2004년 10월 갑작스레 중국 상해기차에게 매각되었다. 매각 이후 신차 개발은 전무했으며, 정신 차려보니 쌍용의 주력인 SUV 마저 현대자동차에게 추월을 당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상하이 자동차 경영진은 전형적인 먹고 튀려는 움직임이 대놓고 보이기 시작하면서, 쌍용은 자력으로 회생이 불가능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각에서 “알맹이 기술만 뺏기고 버려지는 거 아니냐?”라는 논란이 지속되었고, 이 논란은 결국 현실로 닥쳐왔다.
쌍용차 매각은 중국이 기술 자립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도움을 준 행위로 되었고, 한동안 뉴스에서 기술유출 여부 문제로 핫이슈 거리였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기술유출 여부 부분은 결국, 2009년 11월 11일 사실로 밝혀졌다. 당연히 상하이 자동차의 처벌을 원하는 국민들을 비롯한 쌍용차 임직원들의 바람과는 달리, 국내에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홀연히 한국을 떠났다.
악재는 끝나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사태
2009년 쌍용차 파업을 기억하실 것이다. 2009년 5월부터 8월 초까지 약 두 달 반 동안 진행된 무력을 행사하는 파업은 결국 사상자를 만들어냈다. 쌍용차가 경영 정상화 방침이라고 내놓은 방안은 말이 좋아 그럴싸한 방안이지, 결국 2,600명이 넘는 인원을 정리해고하는 방안이었고, 이에 반발하여 노조원들이 들고 일어선 사건이다.
옥쇄파업이라고도 불리는 이 파업은 결국, 두 달 반가량 공장이 셧다운이 되어 모든 공장이 운영이 되질 않아 한동안 차량 판매가 원활하게 이뤄지질 않았다. 이 장기간의 파업으로 차량만의 손실만 3천억 원이었고, 여기에 서비스망, 판매망, 품질 관리, 이미지의 붕괴가 심각하게 되어 예전의 쌍용으로 못 돌아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네티즌들은 쌍용차에게
왜 등을 돌렸을까
과거, 쌍용차의 안타까운 기사들이 나오면 네티즌들은 하나같이 쌍용의 복귀를 희망하며, 힘내라는 반응이 정말로 많았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옛일이 되어, 오늘날은 쌍용의 소식이 들려오기만 하면 비난의 목소리가 커진다. 신기술 개발의 미온적인 태도와 노조의 임금협상으로 인한 잦은 파업이 문제였다. 독자적인 기술이라곤 바디 온 프레임 플랫폼 기술인데, 이 기술마저 너무 오래됐다.
여기에 엔진과 미션은 과거 벤츠에서 받아온 기술을 조금씩 개량에 개량을 통한 국산화 외엔 없는데, “기술은 사 오면 된다” 식의 가치관으로 인하여, 연구개발팀 보다 생산 노동직의 임금이 더 높다. 연구개발팀의 턱없이 낮은 연봉 탓에 기술 개발 또한 미온적이었다.
해외 원천기술을 개량하여 국산화시키는 게 대부분인 업무 패턴이다 보니, 쌍용의 기술 개발진의 대규모 이탈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쌍용의 입장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파워트레인 외 전장 및 전자제어 부분의 개발은 필연적으로 필요했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기술 개발진은 필요로 한 상황이다.
여기에 추가로 쌍용차 노조의 태도 및 차량 가격의 상승보다 인건비 상승 폭이 너무 높았고, 결국 이는 생산성의 하락으로 이어졌다. 끝내 쌍용은 경쟁력이 없는 회사로 전략해버렸고, 잔인한 현실 앞에 그저 부정만 하며 봄날만 기다리는듯하다.
인수 의사를 내놓은 회사들 또한
시원찮은 회사들
최근 케이팝 모터스 그리고 에디슨 모터스가 쌍용차의 인수를 밝힌 바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조금만 알아본다면, 그들은 쌍용차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디슨 모터스는 과거 신소재 전문 기업이던 한국화이바의 전신이며 상용차 외적으론 만들어본 이력이 없는 회사이며, 과거 90~2000년대 대우버스 기술진들이 모여서 만든 회시다. 케이팝 모터스 또한 전동 스쿠터를 주력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일 뿐, 본격적인 자동차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다.
일각에선 “그냥 회사 홍보하기 위한 언론플레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는 정도며, 여기에 쌍용의 모든 역사가 담긴 평택공장 부지마저 처분이 확정된 상황, 자본이 많이 달리는 쌍용의 입장에서 전 직원을 돌아가며 1년간 무급휴직까지 감행하며 자구책을 시작하는 부분에 더 이상 할 말 없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정말로 갈 때까지 가버린 쌍용은 국민의 혈세를 얼마나 더 부어줘야 할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정말 살고 싶은지, 그리고 살 생각은 있는지 말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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