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차가 다시 나와야합니다” 부족했지만 역대급이었던 국산 슈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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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네이버 남차카페 ‘송우진’님 제보)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국내 제작 미드쉽 스포츠카가 있었다. 국토교통부에 등록된 정식 허가업체였으며, 여섯 번째의 국내 생산 업체였다. 그 차는 바로 어울림 모터스의 스피라다. 과거 투스카니 엘리사의 2.7L V6 델타 엔진을 사용하여, 기본 모델부터 고성능 모델까지 두루 갖춰 판매를 했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어울림모터스 스피라의 탄생은 그들의 전신인 프로토모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 초창기에 공개한 컨셉트카 PS-II로부터 시작되는데, 첫 등장만 하더라도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수많은 국내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다. 100% 수제작임을 밝히며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였고, 여기에 튜닝의 문화가 성숙하지 못한 대한민국 이 땅에, 백야드빌더 및 튜닝에 대한 정서적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려고 노력했던 이들은 지금 왜, 행방이 묘연한지 오늘 이 시간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권영범 수습 에디터

쌍용차 디자이너와
현대차 연구원의 만남
원래 어울림 모터스의 시작점은 김한철 사장이 스타트를 끊었다. 그는 대학시절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며 유럽의 ‘카로체리아’ (자동차 공방)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한국에서 내가 하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이후, 아시아 자동차와 쌍용차 기술연구소에서 및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는 1994년 쌍용차에서 나와 현대차 연구원 출신인 최지선 대표와 함께 프로토모터스란 자동차 개발 회사를 차렸고, 컨셉트카 용역을 담당하며 업무적 성과를 내거나, 국내 생산 차량의 디자인 리파인을 받아 차량을 손보던 회사였다.

이후 2001년 그동안의 쌓아온 경력으로 제작한 본격적인 수제 스포츠카 프로젝트에 돌입하게 되었고, 프로토 타입인 PS-II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프로토 타입을 1년가량 다듬어 2002년 드디어 완성본이 나오게 되었고, 양산형인 스피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후 금방이라도 출시될 것만 같은 기세로 스피라를 발표했다.

(사진 = 스피라 공식 아카이브)

한 사람은 돈이 없었고
한 사람은 기술이 없었다.
출고 지연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어울림 모터스의 대표 박동혁 씨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간혹 이런 질문을 받는다. “어울림 모터스인데 왜 뉴스에서 생뚱맞게 정보통신 얘기가 나와요?”

공동 창업주였던 박동혁 씨는, 원래 자동차 쪽 사람이 아니었다. 원래 IT 계열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보안 1세대 기업으로 활약해온 어울림 정보기술의 사장이었다. 국내 방화벽 시장의 강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그는 자동차를 워낙에 좋아해 차를 만들고 싶단 일념 하나로 어울림 모터스를 출범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동혁 씨는 기술이 없었고, 김한철 사장은 돈이 없었다. 돈이 없던 프로토모터스는 업계에서 “쟤네 망했다”라는 소문까지 들려올 정도로 사정이 좋질 못했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던가 이 소식을 접한 어울림모터스는 프로토모터스를 인수하기로 맘먹게 된다.

결국 2007년 프로토모터스는 어울림모터스에 인수합병되면서 사명 또한 어울림모터스로 변경되었고, 2008년 3월경 부터 주문 제작을 받아 동년도 7월에는 차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밝혔었다.

지속되는 출고 지연
계약했던 고객들은 천불
금방이라도 출시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으나, 스피라는 2009년까지 개발 중이란 소식만 전했을 뿐이지 양산형을 내놓지 않았다. 심지어 2008년 3월경에 주문 제작을 받았다던 고객 또한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 소식이 묘연해졌다.

어울림모터스 측은 한국의 자동차 관련 법규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원인은 자동차를 판매하기 위해선 차량 안전검사인데, 국내의 자동차 법규는 어울림모터스 같은 소량 생산 자동차 업체만을 위한 인증 절차가 전무하며, 오직 대량생산 인증 절차밖에 없었다.

자동차를 인증받기 위해선 9대의 자동차가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개발 초기 품질로 인해 자동차 트러블 및 품질 문제로 인해 인증 절차를 밟아야 하는 자동차는 9대 그 이상이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돈이 제일 큰 문제였으며, 인증을 받으려면 그동안 스피라에 썼던 개발 투자비 이상이 들어가기 때문에 중소기업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결국 국내인에 차질을 빚어 해외 진출을 노리던 시기를 앞당겨 해외 판매를 먼저 시작하였다.

(사진 = 머니투데이)

동년도 3월 30일부터
판매 시작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출시가 확정이 되었다. 근 10년 만에 차가 출시가 되었으며 이에 따른 스펙 또한 공개되었다. 현대차의 2.7L V6 델타 엔진을 사용하여 셋팅과 튠업을 달리해 트림별로 차별점을 두었다. 175마력 25kg.m, 330마력 48kg.m, 420마력 50kg.m의 사양으로 나뉘며 175마력 트림은 N, 330마력 트림은 S, 500마력 트림은 EX로 나뉘었다.

당시의 가격은 스피라 N은 9,408만 원, 스피라 S는 1억 508만 원, 스피라 EX는 1억 831만 원을 호가했던 엄청난 가격대를 자랑했다. 심지어 국산차 최초로 300km/h가 넘는 속도를 주파했을 정도로 성능은 정말 뛰어났다.

(사진=네이버 남차카페 ‘송우진’님 제보)

빛과 어두운
그림자
그렇게 승승장구 잘나가던 어울림 모터스는 각종 논란화 고소 고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게 된다. 2012년 5월 분식회계 및 횡력, 배임으로 인해 주식거래가 정지되었고, KT렌탈 (구-금호렌터카)과 돌려 막기식 차량 대여를 한 논란, 이후 2012년 10월, 어울림네트웍스의 상장폐지 루머가 돌고 있었다.

하지만, 동년도 11월 어울림모터스는 해당 내용 일체를 부정하며 근거 없는 루머일 뿐이라며 후속작 스피라 2의 개발과 생산은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 입장문을 내놨지만 결국 같은 달 11월 상장폐지 처분을 받고 대부분의 어울림 모터스 임직원들은 회사를 떠났다. 여기에 스피라의 아버지 김한철 사장 및 최지선 대표도 어울림 모터스를 떠나며 과거 자동차용품과 디자이너의 경력과 역량을 살려 현) 노블 클라쎄를 설립해 잘 살고 있다.

(사진 = 스피라 TV)

자동차 사업은 결국 실패 스피라 TV라는
커뮤니티 사이트만 존재한다.
결국 스피라는 기구한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 힘든 고난 속에서도 계속하여 개발을 이어 나갔다. 2016년 5월 기존 어울림모터스에서 스피라 EV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이후 몇 년간의 저작권 및 횡령 배임 관련해 법정싸움에서 간신히 승리하였지만 그동안의 출혈이 너무 컸었던 탓에 후속작 개발은 부진한 상태였고, 현재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는 건 없었다. 이후 스피라 TV라는 커뮤니티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사업 (인터넷 방송국)을 하려는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4년 전 영상이 마지막 어울림그룹 관련 흔적이다.

어울림모터스의 역사는 다소 산으로 올라가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수제작 스포츠카의 1호라는 기록은 변치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제작되어 판매되었던 스피라들은 중고시장에서 꾸준히 1~2대씩은 거래가 되고 있다. 옛날의 출고가 대비 스피라의 가치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지만, Made In Korea로 스피라 같은 완전한 퓨어 스포츠카를 앞으로 또 만날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면서 글을 마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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