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지금도 살 수 있다고?” 실물 본 사람은 거의 없는데 누구나 알고 있다는 신비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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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영화 중 백 투 더 퓨처라는 영화가 있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라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로 명작인 이 영화는, 자동차가 타임머신이란 모티브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타임머신은 괴짜 박사가 만들어내고, 집 한 채만 한 기계를 이용해 과거 혹은 미래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보통 우리들의 뇌리에 박혔다. 즉, 고정관념인 샘인데 이 고정관념을 깨준 영화가 무려 85년도에 데뷔를 하였다.

영화 내용을 보면, 박사와 주인공이 대화를 하는 도중 타임머신을 소개하는 부분을 기억해 본다. 드로리언으로 만든 타임머신을 보고 “많은 차 중 왜 드로리언이에요?” 라고 말한다. 왜 주인공은 이차를 보며 질색하게 될까? 이 차를 잘 모르는 이들은, “왜? 차 멋지기만 한데?”라고 말하며 의문스럽게 혼잣말을 하게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 오늘은 영화 주인공마저 굳이 이차를 타야 하는지 여엉 탐탁지 않아 했던 그 차, 드로이언 모터 컴퍼니 DMC-12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다.

글 권영범 수습 에디터

폰티악 부사장까지
올라갔던 그가 만든 자동차 회사
GM에서 엔지니어로 시작해 폰티악 부사장까지 고속 승진하여 승승장구하던 존 드로리언, 그가 근무하던 시절에는 굉장한 인물이었다.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 적응되어 있는 미국 자동차 시장에 파격적인 자동차를 내놓기도 했고, 미국의 머슬카 붐을 일으키기도 한 그 차, 폰티악 GTO가 그의 작품이다.

탁월한 사업감각으로 두려울 게 없던 그는, 도저히 보수적인 GM에서 근무할 수 없다고 판단해 1973년 홀연히 부사장직을 내려놓고 퇴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가 그가 늘 꿈꿔오던 스포츠카를 만들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주변 던머리라는 소도시에 공장부지를 짓게 된다.

제 아무리 부사장직으로 있었다 한들, 공장부지를 짓는 게 금액적으로 상당한 무리가 있었을 터, 그런 그에게 영국정부가 공장부지 무상 제공과 건설 비용 지원, 심지어 세금 감면까지 엄청난 파격적인 혜택을 받게 된다.

이 당시 북아일랜드가 영국령이었다는 점, 북아일랜드의 독립 세력들을 무마시키기 위한 영국의 치밀한 노림수가 숨어있었다.

영국정부의 압박으로
건너지 말아햐 할 강을 건넜다
첫 번째 프로토 타입 DMC-12는 1976년 10월 MR 구동계를 품고 제작되었다. 당시, 초호화 옵션인 에어백과, 실현되지 않았던 플라스틱 섀시, 10마일 범퍼 등등 시중에 나온 차들에서 시도되지 않은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플라스틱 구조의 Elastic Reservoir Moulding(ERM)은 당시 너무도 새로운 개념의 구조이기도 했고, 충분한 기술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기술이라 결국 폐기했다.

보다 못한 콜린 채프먼은, 로터스의 전매특허 유리섬유로 만든 백본 프레임을 적용하게 되었다. 엔진은 본래 포드의 쾰른 V6 엔진을 장착하려 했으나, 여러 문제로 인해 푸조, 르노, 볼보의 합작해 만든 PRV 연료 분사 장치가 달린 V6 엔진으로 바꿔 장착하게 된다.

여기에 외장 패널 역시 플라스틱으로 적용하려 했던 계획은 폐기하고, 스테인리스 스틸로 바꿨다. 아이러니 한건 바디 페인트 옵션은 제공을 하지도 않았다. 여하튼, 영국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에 힘입어 당시 자동차 디자이너의 최고봉 이탈리아의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DMC-12의 디자인을 맡았다.

GM 근무 시절 동료였던 빌 콜린즈와 로터스의 창시자이자 엔지니어링의 천재 콜린 채프먼까지 힘을 합쳐 성공적인 데뷔를 하였다. 원래 공장은 푸에르토리코에 지을 예정이었으나, 당시 실업난이 엄청났던 북아일랜드에 공장 유치를 하여 실업난을 타개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지속되는
출고 지연
원래의 예정이라면 DMC-12의 출시는 1979년에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기술 문제가 DMC-12의 발목을 잡았고, 당시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하여, 개발한 누구도 실현시키지 않았던 기술을 접목시키느라 특허권을 사들였다.

여기에, 앞서 서술한 개선되지 않은 트러블이 존재해 중복투자가 잦았다. 당시 엄청난 거금인 1억 파운드를 지원한 영국정부는 빨리 차를 내놓길 원했고, 드로리언은 이를 해결하고 내놓길 원했다. 결국, 영국정부의 압박을 못 견디고 섣부른 판단을 해버리고 만다.

물이 새는 건 기본이고
주행 중 차가 죽는 문제가 속출
출발은 좋았다. 당시의 끗발이 끝내주는 경영진 라인업과 시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다듬은 디자인, 거기에 유니크한 무지 상태의 스테인리스 바디, 멋짐이 폭발하는 걸 윙 도어는 이 차의 이갸기가 실리지 않은 신문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엄청난 핫이슈 거리였다.

2.8L PRV V6 엔진을 얹은 DMC-12는 3단 자동변속기와 5단 수동변속기를 제공하였고, 유럽 버전은 150마력, 북미 버전은 배출가스 규제로 디튠되어 130마력을 내었고, 백본 프레임 덕분에 스테인리스 패널을 가졌음에도 1,230kg의 가벼운 공차중량을 자랑한다.

존 드로리언은 완벽하게 테스트하고 내놓길 원했지만, 영국정부의 압박으로 그러지 못한 탓에 차는 엉망진창인 상태로 출고가 이뤄졌다. 시제품 그대로 내놓다 보니 공장에서 출고 대기하는 DMC-12 또한 온전한 녀석들이 없었을 터다.

웨더 스트립 사이로 빗물이 새는 것은 기본이었다. 출고분 대부분이 빗물이 새는 컴플레인이었을 정도였다. 여기에 스테인리스 스틸 바디 일부분은, 제대로 공정 처리가 되질 않아 부식 혹은 산화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ECU 연산속도와 용량이 한참 모자란 탓에 운행 도중 셧다운 되는 일이 발생되기도 했다.

생김새와 달리
운동성능 많이 떨어졌다
북미판 DMC-12는 북미 법규를 맞추다 보니, 범퍼 높이를 맞추기 위한 리프트 업이 이뤄져 전고가 높아졌다. 이러한 이유로 운전 감각이 상상 이상으로 안 좋았고, 당시 염가판 브랜드 닷선도 저렴한 가격으로 닷선 280Z를 내놨지만, 이차조차도 판매가 저조해 전전긍긍하던 시절이었다.

북아일랜드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들여오는 방식인 DMC-12는 영국 파운드화의 환율이 폭등하면서 가격도 비싸졌다. 트러블 메이커가 쉐보레 콜벳과 포르쉐 911 터보 같은 고성능 스포츠카와 동등한 가격대를 형성했기에 찾는 이는 더더욱 없었다.

영국의 힘이 빠지자
바로 무너지는 DMC
차량의 만족도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다 보니, 자금줄이었던 영국정부는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다 결국 해당 사업에서 손을 땠다. DMC 측은 영국이 사업에 손을 때기 직전, 급하게 개선한 DMC-12를 재출시 하였지만, 이미 민심은 뒤돌아 선지 오래였다.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DMC는 사방팔방으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금을 구하러 다녔지만 이마저 쉽지 않았고, 사람이 무너지면 약해진다 하지 않았던가? 결국 드로이언은 그릇된 판단을 하게 된다.

바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2년 후에 무혐의로 풀려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FBI의 실적을 올리기 위한 부당한 함정 수사였던 것이 밝혀지며 씁쓸함을 더했다. DMC-12의 역사는 81년에 태어나 83년 초라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때 판매량은 영국과 미국 판매량 도합 9,200여 대였다.

이후, 드로이언은 DMC를 파산하기로 한다. 파산 이후 손해를 고스란히 끌고 가야 했으며, 당시 투자자들의 독촉과 거액의 배상 판결이 끊임없이 줄지었고 하염없이 몰락했다. 결국 2005년 향년 80세로 존 드로이언도 생을 마감했다.

영화를 통한
뒤늦은 인기몰이
영화를 통해 뒤늦은 인기몰이를 한 DMC-12는, 회사가 없어지고 2년 뒤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 사람들은 이런 굴곡진 비하인드스토리를 알게 되었으며, 이미 귀해질 대로 귀해진 DMC-12를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때는 이미 차량의 가치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있을 때였다.

이후, 2007년 DMC-12는 부활했다. 스티븐 와인이라는 사업가가 DMC 공장에 남아있는 부품 모두를 사들이며 회사 자체를 새롭게 경영해 나갔다. 첫 시작은 DMC 정품 부품 생산과 공급망을 자처해 리스토어 및 수리의 목적성을 띄웠다. 그러나 당시 차량 생산 관련 규제로 생산 사업을 접었다가, 2016년 소규모 기업의 자동차 생산 법안이 개정되어, 다시 신차 생산이 가능해졌다.

바로 사업에 착수한 스티븐 와인은 2017년부터 300대 한정으로 DMC-12를 재생산하였다. 이후 완판을 이뤄낸 그는 현재 중고 DMC-12의 판매와 부품 그리고 자동차 수리를 위한 서비스 망을 구축해 3개의 지점을 내어 사업을 운영하는 중이다.

오늘 이 시간은 DMC-12에 대해 알아봤다. 참으로 기구한 역사를 가진 DMC는 결국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로 인해 다시 한정판으로 재생산되어 재평가되는 가치에 꽤나 좋은 말년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존 드로리언이 이것을 본다면 그저 눈물만 흘릴것 같단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 안에서도 DMC-12 같은 기념비적인 모델들도 참 많고 명차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국산 올드카를 운용하는데, 다른 나라보다 어려움이 많이 존재하며, 운행할 때마다 노심초사하며 운행한다. 언젠가 훗날 대한민국 땅에도 이같은 기업이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치도록 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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