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살테니까 제발 팔아주세요” 창고에 10년동안 박혀있던 전설의 차가 이렇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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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가버리고 말았다. / 사진 = 보배드림 ‘방방빵’님

전편에서 서술한 대전 엑스포 차량들의 근황 편을 이어서 적어내린다. 명절 연휴 동안에 이 차량들의 근황을 좀 더 면밀히 파악하고, 보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자료를 계속해서 대조하고 이야기를 이어 맞춰보았다. 결국 프라이드와 스포티지 2호 차는 폐차장의 이슬로 사라진 게 맞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실로 안타까운 부분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차량들도 아닌, 기아차만의 헤리티지가 깃든 프라이드와 스포티지는 올드카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꽤나 열광하는 모델임과 동시에, 최다 판매량과 최초의 타이틀을 거며 쥔 기념비적인 녀석들이다. 과연 이러한 선택에 기로에 놓이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오늘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보자.

 권영범 에디터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에 산역사들
프라이드와 스포티지로 말할 거 같으면, 1987년 자동차 산업합리화 조치가 풀린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 당시에 기아차는 정부 몰래 비밀리에 개발하던 월드카 프로젝트가 있었으니, 그 차가 바로 프라이드다.

미국의 포드, 일본의 마쯔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기아차 총 3사의 합작으로 만들어졌으며, 설계는 마쯔다, 세일즈는 포드, 생산은 기아차가 도맡았으며 이 당시 기아차는 이러한 대가로 포드 산하에 속한 머큐리의 세이블을 조립 생산 및 판매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기아차는 위험을 무릅쓰고 1983년 마쯔다와 (구 도요공업) 자본제휴가 이뤄지면서 개발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했다. 이후 1987년. 기아차는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내듯이 화려한 데뷔를 하였고, 차체의 규격은 FMVSS, 플랫폼은 마쯔다의 DA 전륜구동 플랫폼을 사용하여 작은 덩치에 알차고 안전한 녀석으로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졌다.

워낙에 플랫폼의 퀄리티가 훌륭하여 해외에선 이 DA 플랫폼을 활용하여 파생형 모델이 줄줄이 나오기도 했었다.

기아차의
자체 개발 준중형 SUV 스포티지
기아차가 자체적인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첫 4WD 차량이 자 SUV인 스포티지는, 1991년 도쿄 국제 모터쇼에서 한참 개발 중이던 컨셉카를 발표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SUV는 자고로 깍둑 썰은듯한 각진 바디 다지인과, 대배기량의 엔진, 그리고 이에 수반하는 넓고 쾌적한 전천후 자동차란 인식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기아차는 이러한 모습을 지우기 위해 세단에서나 볼법한 유선형 디자인과 더불어 콤팩트하고, 조작이 편한 스위치와 기어 레버, 소재의 개선과 함께 승용차 감각이 물씬 풍기는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세계 어느 누가 도전하지 않았던 디자인을 내세워 유수의 메이커들이 스포티지를 주목했다.

본래 마쯔다의 기술협력을 통하여 언더바디를 들여와 조립 판매를 할 생각이었던 기아차. 하지만 세피아 때부터 기술제휴를 거부하였다. 이유는 잠시 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해가 간다.

본래 세피아는 독자 개발로 할 생각이 없었다. 과거 프라이드 때 연이 맺어진 마쯔다에게 323 언더바디 공급을 요청하였지만, 굉장히 빠른 습득력과 엔지니어 출신인 경영진들의 깐깐함이 더해져 마쯔다는 꽤나 큰 위협을 느꼈었고, 결국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스포티지도 마찬가지였다. 스포티지도 언더바디 공급을 요청하였지만 이마저도 거절하였고, 이때부터 기아차의 회장이었던 김선홍 회장은 “우덜끼리 하자.”라는 마인드로 세피아부터 시작하여 스포티지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폐차전 마지막 모습 / 사진 = 보배드림 ‘대전sm3오너’님

사겠다는 사람
꽤나 많았는데 말이죠
대전교통문화연수원에 전시되었던 차량들 중, 가장 먼저 가버린 녀석은 스포티지 생산 2호 차인 자주색 스포티지다.

이 녀석이 디젤인지 가솔린인지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 하나 보닛을 열어본 이가 없었다. 다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초기형 스포티지란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완전히 순수한 초기형 스포티지는 개체 수가 없어 질대로 없어졌다. 귀하디 귀한 이 녀석은 구하고 싶어도 사실상 없다시피한 녀석이다 보니 옛날 기아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꽤나 바이블 같은 녀석이다.

실제로, 구) 기아차와 관련된 동호회 혹은 클래식카 동호회의 반응을 보면 이렇다. “이럴 거면 팔아라, 살 사람 줄을 섰다.”라는 반응이었다. 과연 이런 녀석들이 실제로 인수가 가능할까?

폐차전 마지막 모습 / 사진 = 보배드림 ‘NFN20S’님

미등록 차량이라
행정상으로 등록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서로 간의 의지가 있다면 가능하다. 이미 프라이드와 스포티지를 통해 인수 의지를 밝힌 이들이 실제로 줄을 섰으니 구매자에 대한 걱정은 덜어도 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차들의 주인이었던 대전시의 의지였다. 이 차를 판매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이질 않았다. 무언가 문제를 들먹이기에도 행정상으로 문제 될 부분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폐차전 마지막 모습 / 사진 = 보배드림 ‘NFN20S’님

차량을 기증하는 목적이라 하여도, 기본적으로 차대번호는 찍어져서 나오게 된다. 차대번호가 살아있다면, 신차로 등록하면 그만인 부분이며, 기아차에서 제작 인증 서류가 나온다면 전혀 문제 될 부분이 없다.

허나, 이 부분도 기업에서 의욕적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상황이긴 하다. 심지어 현대차 그룹으로 넘어간 이후로 서류 구비가 될지도 의문인 부분이다.

결국 가버리고 말았다. / 사진 = 보배드림 ‘방방빵’님

이미 가버렸다
두고두고 아쉬워할
그런 차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무도 안타까운 부분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이 차들을 누군가가 가져가도 유지가 될까?” 잔인한 이야기지만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고서야 유지하기는 힘든 차들이다. 온전하게 운행했던 차량들도 아닐뿐더러,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덤벼들기엔 위험요소들이 다분히 존재한다.

안타까움과 냉정함이 만날 때, 앞서나간 감정을 잠시 넣어두고 머리를 식히면 비로소 보이는 제약되는 부분들이 보일 것이다. 이미 떠나간 차들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미 용광로에 녹아 없어졌을 수도 있다. 사뭇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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