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백처럼 한국 시장은
픽업트럭이 안 통하는 줄
한국 자동차 시장은 해치백의 불모지로 통한다. 한때 ‘폭스바겐 골프’가 조금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으나, 디젤 사태 이후 이마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유럽에서만큼은 ‘실용적인 자동차’, ‘국민 자동차’로 통하지만 한국에서는 문화적, 정서적 이유로 인기가 시들하다.
해치백처럼 픽업트럭도 자동차 제조사들에겐 모험의 대상이었다. 특히 수입 픽업트럭이라는 것이 한국 소비자들에게 익숙해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국내에서 정식 판매되고 있는 유일한 픽업트럭은 ‘렉스턴 스포츠’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렉스턴 스포츠가 증명한 한국 픽업트럭 시장의 잠재력, 그리고 검증된 잠재력을 배경으로 앞으로 국내에 출시될 미국 픽업트럭 소식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김승현 기자
티볼리와 함께
쌍용차의 베스트셀링 모델
한국 자동차 제조사 중에서 유일하게 픽업트럭을 만들고 있는 쌍용차다. ‘무쏘 스포츠’를 시작으로 ‘액티언 스포츠’, ‘코란도 스포츠’, 그리고 지금은 ‘렉스턴 스포츠’로 픽업트럭 라인업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중 지금 판매되고 있는 렉스턴 스포츠는 한국 픽업트럭 시장의 잠재력을 증명해준 존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렉스턴 스포츠는 ‘티볼리’와 함께 쌍용차의 베스트셀링 모델로 자리한다. 지난 한 해 ‘티볼리’가 4만 3,897대 판매되는 동안 ‘렉스턴 스포츠’는 4만 1,717대가 판매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세 번째로 많이 팔린 ‘G4 렉스턴’이 1만 6,674대가 판매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수치가 압도적이다.
잘 팔리는 이유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세 가지 정도가 나온다
렉스턴 스포츠가 판매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가격이다. 최하위 트림부터 최상위 트림 풀옵션까지 고려한다면 2,600만 원부터 4,293만 원까지 가격 범위가 다양하다. 중간 옵션, 중간 트림 정도를 생각한다면 3,000만 원 중반쯤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둘째는 독점 시장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계속 언급했듯 한국에서 정식으로 구입 가능한 픽업트럭은 렉스턴 스포츠가 유일했다. 소비자들이 대안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셋째는 사회적 요인이다. 자가용으로 많이 이용하지만 트럭에 해당되기 때문에 세금 혜택 등을 받을 수 있으며, 소비자들의 레저 활동이 늘어났다는 점도 수요 증가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판매 실적은 아직 모르지만
초기 반응은 매우 긍정적
렉스턴 스포츠가 유일했고, 렉스턴 스포츠가 증명한 한국 픽업트럭 시장에 ‘쉐보레 콜로라도’가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비록 눈에 보이는 성적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초기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간 ‘가격’에 대한 호평이 많지 않았던 한국지엠인데, 콜로라도는 이례적으로 가격으로 호평받고 있다.
3.6리터 V6 가솔린 모델, 그리고 미국 기준 미드 사이즈 픽업트럭임에도 가격이 3,000만 원대에서 시작된다. 세 가지 트림으로 나뉘며, 취득세를 포함한 실구매 가격 범위는 4,030만 원부터 4,690만 원 사이다. 최대 옵션 가격은 133만 원이다. 길이만 5,415mm에 달하는 수입 픽업트럭이 3,000만 원대에 시작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 있다는 것이 소비자들의 반응이다.
콜로라도 사양을 보면
레저 활동 즐기는 소비자를 겨냥
콜로라도에 적용되는 사양들을 보면 레저 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를 겨냥했다고 파악할 수 있다. 카라반, 트레일러 등 요즘 한국 소비자들이 많이 찾고 있는 레저 활동에 최적화된 사양들이 몇 있다. 4WD 시스템과 더불어 트레일러 스웨이 컨트롤, 디퍼렌셜 잠금장치, LSD, 트레일러 어시스트 가이드라인 등 오프로드와 캠핑에 최적화된 것들이 대표적이다.
비록 렉스턴 스포츠와 구매층이 아예 다르다고 보기도 하지만 목적 자체는 충분히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나 가평 등 카라반 라이프가 활성화되어있는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카라반을 끌고 다니는 직수입한 미국 픽업트럭과 더불어 렉스턴 스포츠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렉스턴 스포츠가 증명한 시장
점점 크기가 커질 예정이다
렉스턴 스포츠가 증명한 한국 픽업트럭 시장… 콜로라도는 시작일뿐이다. 시장이 충분히 검증되었다고 판단했는지 수입차 제조사들이 한국에 픽업트럭을 도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오늘 내용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현대자동차도 픽업트럭을 개발 중이다.
지금부터 소개되는 픽업트럭들은 내년 상반기쯤 출시될 예정이다. 콜로라도처럼 미드사이즈 픽업트럭에 속하며, 레저 활동에 최적화된 좋은 대안들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을 시작으로 한국 픽업트럭 시장의 크기가 커질 뿐 아니라 가격대와 성격도 매우 다양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7년 만에 부활한
‘포드 레인저’
포드는 7년 만에 부활한 미드 사이즈 픽업트럭 ‘레인저’를 한국 시장에 도입할 예정이다. 2018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최초로 공개된 레인저는 2011년 이후로 북미 시장에서는 판매되지 않다가, 2014년 이후 미국 시장 픽업트럭 수요가 83% 증가함에 따라 7년 만에 미국 내 판매를 다시 시작했다.
북미형 레인저는 주말이면 도심 밖으로 레저를 즐기는 활동적인 도시인들을 타깃으로 개발되었다. 엔지니어링은 호주에서 진행됐고, 생산은 미국 미시간주에서 이뤄진다. 유럽형과 다르게 섀시와 파워 트레인이 북미 소비자들 취향에 맞게 변형되었고, 디자인도 일부 변경되었다.
북미형 레인저에는 디젤 엔진 대신 2.3리터 4기통 터보 가솔린 엔진과 자동 10단 변속기가 장착된다. 머스탱과 같은 엔진이다. 실내는 5인승 구조다. 애플 카 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는 ‘Sync 3’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으며, 8인치 터치스크린이 장착된다. 모든 모델에는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이 기본으로 적용된다.
오프로드 패키지를 통해 ‘F-150 랩터’로부터 파생된 ‘터레인 매니지먼트 시스템(Terrain Management System)’을 적용할 수 있다. Normal, Grass, Gravel, Snow, Mud, Ruts, Sand 등 주행 모드 선택이 지원되고, 오프로드 튠 쇼크업소버, 전지형 타이어, 스틸 스키드 플레이트, 비포장도로용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인 ‘트레인 컨트롤(Trail Control)’ 등이 구성품으로 제공된다.
랭글러 픽업트럭 버전
‘지프 글래디에이터’
‘지프 랭글러’ 픽업트럭 버전인 ‘글래디에이터’도 국내 출시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8 LA 오토쇼에서 공개된 글래디에이터는 랭글러의 4륜 구동 성능을 그대로 갖춘 미드 사이즈 픽업트럭이다. 랭글러 4도어 모델에 짧은 적재함을 붙여놓은 것 같은 외관이 특징이다.
차체 길이는 5,539mm로, 쉐보레 콜로라도 크루 캡 숏 베드 모델과 롱 베드 모델 사이에 속한다. 랭글러와 비교했을 때는 차체가 750mm 정도 길고, 휠베이스도 480mm 정도 길다. 루비콘 모델을 기준으로 진입각 43.6도, 램프각 20.3도, 이탈각 26도, 지상고는 283mm, 그리고 적재함 길이는 1,531mm다.
실내 구성과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랭글러와 공유한다. 뒷좌석 다리 공간은 966mm로 랭글러보다 약간 좁다. 지프에 따르면 동급 경쟁 모델들과 비교했을 때는 가장 넓다고 한다.
뒷좌석 시트 엉덩이 부분을 위로 젖히면 비밀 수납공간이 등장한다. 뒷좌석 시트 등받이를 앞으로 평평하게 접는 것도 가능하다. 시트를 앞으로 젖히면 시트와 벽 사이에서 또 다른 수납공간과 네트가 등장한다.
글래디에이터는 285마력, 36kg.m 토크를 내는 3.6리터 V6 펜타스타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6단 수동 또는 8단 자동변속기와 조화를 이루며, 2020년에는 3.0리터 V6 터보 디젤 엔진이 후속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랭글러에 장착되고 있는 4기통 터보 엔진 투입 계획은 없으며, 랭글러와 더불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에서 판매되는 글래디에이터의 트림 종류는 Sport, Sport S, Overland, Rubicon 등 총 네 가지다. Sport 트림에는 수동식 롤 업 윈도, 5.0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기본 적용된다.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은 최대 8.4인치까지 준비되어 있다. 지붕은 폴딩 소프트톱과 3분할 하드톱 두 가지 중 선택할 수 있다. 도어와 더불어 완전히 제거 가능하고, 앞 유리는 보닛 쪽으로 젖힐 수 있다.
“크게 영향 없을걸?”
vs
“쌍용 긴장해야 될 거야”
렉스턴 스포츠가 유일했던 한국 시장에 새로운 픽업트럭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렉스턴 스포츠 판매량에는 크게 영향 없을 것이다”라는 시선이다. 국내에 출시되는 미국 픽업트럭들은 배기량부터 다른 가솔린 모델이며, 구매하는 목적도 렉스턴 스포츠와 크게 다르다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또 다른 쪽에서는 “쌍용차가 긴장해야 할 것이다”라는 시선이 나온다. 기존에는 렉스턴 스포츠가 유일한 선택지였지만, 미국 픽업트럭들이 다양해지면서 대안이 여럿 생긴다면 수요가 충분히 분산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다.
쌍용차의 중요한 주력 모델
미국 픽업트럭으로 수요 나뉘나
기사 말머리쯤에서 언급했듯 렉스턴 스포츠는 쌍용차의 베스트셀링 카다. 판매량 견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주요 수익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모델이다. “티볼리가 있으니 괜찮지 않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지난번 인터뷰에서 관계자에게 이와 관련된 내용을 물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작은 차보다는 큰 차가 매출과 순이익에 도움이 된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콜로라도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성공 여부를 판단하긴 이르다. 그러나 단 하나밖에 없던 선택지가 여럿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과 ‘국산차’라는 점 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렉스턴 스포츠’는 국산 픽업트럭의 가격 상승을 막으면서 경쟁 모델들 간의 합리적인 경쟁력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콜로라도’는 수입 픽업트럭의 터무니없는 가격 상승을 막는 것과 동시에 합리적인 경쟁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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