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명 뽑는 기아 생산직 공채에 5만명 가량 몰려
기아 노조 일부, 조항을 근거로 자녀 우선채용 논란
현대차그룹에서도 사문화된 문화, 업계 관계자 “시대착오적인 요구”
모두가 선망하는 기업인 대기업, 급여가 높고 각종 복지혜택이 좋다 보니 구직자들이 많이 몰린다. 하지만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경쟁률이 상당히 높다. 특히 신입 공채의 경쟁률은 수십대 1은 물론이고 수백대 1 경쟁률을 자랑하는 사례가 많다.
최근 기아차가 5년 만에 생산직 공개채용을 시작했는데, 대략 100여 명을 뽑는 소규모 채용에 무려 5만 명 정도가 지원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쟁률이 약 500:1이다. 하지만 노조 일부에서는 정년퇴직자와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우선 채용을 요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단체협약에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에 관련된 조항이 존재한다.
글 이진웅 에디터
그동안 연구직 등만 뽑다가
5년 만에 생산직 뽑는다
기아는 사내 하도급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정체, 미래차 경쟁력 확보 등으로 인해 생산직 직원은 뽑지 않고, 연구직 등만 지속적으로 채용해왔다. 그러다 2016년 이후 5년 만에 생산직 직원을 신규 채용한다고 공고를 냈다.
지난 몇 년 사이 정년퇴직자가 늘면서 신차 생산 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이번 생산직 신규채용은 100여 명 정도를 선발할 예정인데, 지난 13일까지 무려 4만 9,432명이 지원했다. 거의 5만 명에 달하며, 경쟁률은 약 500:1 수준이다.
기아 생산직 직원은 여러 가지 수당 등을 포함하면 초봉이 6천만 원을 넘고, 기숙사 지원과 신차 구매 시 할인, 그 외 각종 복지혜택 등이 좋아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2012년 기아가 생산직 신입사원을 240명 정도 지원했을 때도 거의 6만여 명이 지원해 25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이번에 채용된 생산직 직원은 내년 1월에 입사해 광명 소하리공장과 화성공장, 광주 오토랜드 등에서 근무하게 된다.
현대판 음서제도?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조항
이 항목에 대해 살펴보기 앞서 기아 노조는 올해 6월에 열린 미래발전전략위원회 본 회의에서 생산직 신규 채용을 하지 않으면 산학 인턴 채용에 협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청년 일자리를 볼모로 밥그릇 챙기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은 적 있다. 본인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기 위해 신규채용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기아의 단체협약에는 정년퇴직자 및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우선 채용 관련 조항이 있다. 기아 소하지회 노조는 이 조항을 근거로 “신입 사원 채용에서 단협상 ‘우선 및 특별 채용’ 조항을 준수해야 한다”라고 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상당했다. 현대판 음서제도이며, 청년들이 극심한 취업난을 겪는 상황에서 한순간에 채용 공고에 지원한 5만여 명을 바보로 만드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대졸자의 고용률은 75.2%로 OECD 평균 82.9%보다 낮다. OECD 가입국 중 하위권인데 37개국 중 31위이다. 대졸 청년 비경제활동인구도 20.3%로 OECD에서 3번째로 높다.
자녀 우선 채용은 없어지는 추세
시대착오적인 요구
자녀 우선 채용은 점점 없어지는 추세다. 현대차는 자녀 우선 채용 단협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했다.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조항이 시행된 적이 없다고 한다., 금호타이어 노사도 정년퇴직자 조합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10년 사이 현대차그룹 내에서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의 자녀가 우선 채용된 사례는 없으며, 노조 내부에서도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평가를 받는 우선 채용 조항을 들고 나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인력을 뽑겠다고 하지만
이미 채용예정자 다 정해져있다는 지적
기아 노조 내부에서도 현대판 음서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공정한 절차를 통해 직원을 뽑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겉으로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직원을 뽑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미 채용예정자가 다 정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용과 관련된 비리가 많이 알려지다 보니 이러한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용 세습 조항을 삭제한 현대차와는 달리 기아는 여전히 조항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고용 세습 조항은 불법으로 규정
하지만 노사 자율 원칙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고용 세습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잇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과 직업안정법은 근로자를 채용할 때 성별, 연령, 신체조건은 물론이고 신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두 법을 어긴 단체협약을 시정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노사 자율 원칙을 고수하며 고용 세습 조항이 존재하는 기업이 아직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정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 고용부 역시 노사가 자율적으로 없애도록 유도하겠다는 입장만 밝히고 시정 명령이나 수사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정부가 개입하면 노사자율 원칙을 훼손한다는 이유다.
고용 세습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도 문제다. 고용부가 고용 세습 조항에 대해 시정 명령을 내리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노사 모두 기소돼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500만 원이면 고용 세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청년 고용이 얼어붙는 현시점에서 정부가 고용 세습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를 지켜보는 청년들의 박탈감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