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With프로젝트 “저거 우리 아빠 차네요” 고속도로에서 포착되자마자 네티즌들 난리난 자동차

“저거 우리 아빠 차네요” 고속도로에서 포착되자마자 네티즌들 난리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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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전륜구동
승용차 프레스토
그 시절 그 차는
과연 어떤 차였을까?

광주에서 발견된 현대 프레스토 / 사진 = 네이버 남차카페 ‘임재혁’님 제보

1980년대 자동차 산업을 돌이켜보면, 자동차를 제작하는 데 있어 상당히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 계기가 존재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자동차들의 대부분은 후륜구동을 채택하여 생산과 판매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1985년 7월,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가 탄생하게 되는데 그 차의 이름은 바로 ‘프레스토’다.

현대차 불멸의 히트작 포니의 후속작으로 야심 차게 공개한 프레스토는, 현대차 최초의 미국 수출을 함께한 자동차로도 그 의미가 남다르다. 아울러 최초의 전륜구동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승용차답게,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뒤바뀔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프레스토를 오늘 이 시간 함께 알아보도록 해보자.

 권영범 에디터

3저 호황이 부른
1세대 마이카-붐

프레스토를 알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둬야 할 자동차 한 대가 있다. 그 차의 이름은 바로 ‘포니 엑셀’, 앞서 전술했던 현대차 불멸의 히트작인 ‘포니’의 후속작으로 탄생한 이 차는 승용차 버전인 프레스토보다 5달 먼저 출시하였다.

쉽게 말해 포니 엑셀이 1985년 2월에 먼저 출시하고, 세단형 모델은 프레스토가 7월에 출시한 것이다. 여담이긴 하지만, 포니 엑셀의 작명 센스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들이 있을 듯 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후속작임을 어필하기 위해서 전작의 이름을 계승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상당히 흔했다. 이는 비단 자동차뿐만 아니라 각종 오디오와 전자기기 같은 공산품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5도어 해치백 스타일, 깍두기 스러운 각진 외모, 컴팩트한 바디와 다양한 컬러는 당시 젊은 소비자층에게 어필이 되었고, “대한민국 최초의 전륜구동 승용차”라는 마케팅은 노면이 불규칙하고 4계절이 뚜렷하며, 언덕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에 알맞은 승용차라는 이유로 출시 초반부터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

아울러 포니에 이어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는 1세대 마이카-붐에 일조한 모델로도 손꼽히는데, 당시 1980년대 중~후반기의 대한민국은 아시안게임을 비롯한 각종 올림픽까지 개최 예정이던 시기였기에 3저 호황에 힘을 입어, 대한민국 역사상 경제성장률 최고치를 기록하며 1가구 1 자동차의 더욱 박차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오른쪽 : 미쯔비시 미라지 1세대

고유 승용차라는
타이틀이 맞나?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는 사실, 미쯔비시의 손길이 많이 들어간 차량이었다. 과거 포니에서부터 비롯된 고질적인 문제였는데, 이 부분은 현대자동차 내부적으로도 제대로 건설된 주행 시험장은 고사하고 부품 설계의 노하우가 전무했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잠시일지라도 미쓰비시에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쯔비시가 현대차에 건네준 플랫폼은 미라지라는 차량의 플랫폼을 건네줬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오일쇼크를 경험했던 터라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부터 비롯해, 자동차의 성지라고 불리던 미국과 독일에서도 염가형 자동차들은 전륜구동을 채택하던 시절이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우리의 차를 볼 수 있다는 게 참 서글프다.

아무튼, 미쯔비시의 미라지의 플랫폼을 건네받음과 동시에 미쯔비시의 소형차 라인업에 적용되는 오리온 엔진도 함께 제공받았다. 배기량은 1.3L와 1.5L 총 두 가지를 받았으며, 1.3L는 최대 출력 77마력, 최대 토크 11kg.m, 1.5L는 최대 출력 87마력, 최대 토크 12.5kg.m라는 성능을 발휘하였다.

당시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는 현대차에서 말하길, 우리 기술로 만든 2번째 고유의 승용차라고 발표하긴 하였으나, 그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빌려온 기술들이 많다는 점이 내심 씁쓸한 부분이다.

영업용으로도
선풍적인 인기

당시 포니 엑셀과 프레스토는 북미 수출에 힘입어 이를 기념하는 개념으로, 북미 수출형 모델과 동일한 사양인 AMX 트림을 신설하게 된다. 이때 장착된 옵션으로는 안전의 대명사로 손꼽혔던 5마일 범퍼, 타코미터, 오토 리버스 카 스테레오, 전자시계 등등 지금 시선에서 바라보면 그냥 그런 사양들이 이때 당시에는 파격적인 고급 옵션이었다. 이때가 1986년 9월이었다.

아울러 동년 10월에는 오리온 엔진에 기화기를 장착하여 LPG 모델을 출시하게 된다. 이는 영업용 택시 수요를 노린 현대차의 전략이었으며, 그 큰 그림은 적중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국내 소형차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한자리에 3대가 모인 프레스토 택시 뒤편에 식당 간판으로 미뤄볼 때 기사 식당인 듯 하다. / 사진 = MBC 강원영동
다양한 색깔의 프레스토 택시들 / 사진 = MBC 강원영동

이 밖에도 포니 엑셀은 경쟁사인 대우자동차의 ‘르망’이 출시됨에 따라, 3도어인 포니 엑셀 스포티를 출시하게 되며, 이듬해 1987년 2월에는 무려 전동식 선루프와 AMX에 적용된 오토 리버스 카 스테레오가 장착된 ETR 트림을 신설하여 고객들의 선택 폭을 넓히는 데 일조한다.

이후, 이때 당시 현대차의 화룡점정 ’88 올림픽 에디션’이 등장하게 되는데, 정확한 명칭은 ‘올림픽 팩’이었다. 이때 프레스토는 88 올림픽 한정판을 1만 대로 판매량에 제한을 두게 되었고, 블랙 알로이 휠, 크롬 도금이 들어간 몰딩, 늘어난 휠베이스를 통한 실내 공간 확보 등을 어필하여 성공적인 판매 성과를 거둬들였고, 이때 내수 누적 판매량은 100만 대를 기록하면서 1989년 2월에 단종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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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발 왜곡 좀 하지 맙시다. ‘우리 기술로 만든 2번째 고유 승용차’라는 말을 도대체 누가 했어요?

    팩트
    (1) 포니엑셀/프레스토는 현대의 ‘3번째’ 고유모델 (두번째 아님!!!!!!)
    (2)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차라고 광고한 것은 저게 아니라 훨씬 나중에 나온 ‘엑센트’.

    사람들이 기억 잘 못 한다고 왜곡 좀 하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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