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긴급 제동 시스템
현실과 동떨어진 테스트 기준
실제 상황 가정하니 결과 처참
요즘 판매되는 자동차들이 옛날보다 훨씬 안전해졌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2000년대 초에 생산된 자동차와 최신형 자동차의 차체 강성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크며 각종 능동적 안전 장비는 운전자보다 빠르게 위기를 감지해 사고를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는 각국의 신차 안전성 평가 기관들이 엄격한 평가 기준을 제시한 덕이 컸다. 테스트 통과 여부는 물론이며 당시의 세부 점수가 신차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자동차 제조사는 신차 안전성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평가 기준을 벗어난 상황에서는 능동형 안전 장비들이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완성차 업계에 비난의 화살이 꽂히고 있다.
글 이정현 에디터
교차로 충돌 상황
모든 차종 불합격
현재 IIHS(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는 25mph(약 40km/h)의 속도에서 긴급 제동 테스트를 시행하며 거의 모든 신차들이 무난하게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은 실제 주행 상황과 거리가 멀어 난이도 상향의 필요성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 한편 AAA(미국 자동차 연합)은 최근 실제 주행 상황을 가정한 긴급 제동 시스템 테스트를 진행했다. 테스트 차량은 포드 익스플로러, 쉐보레 이쿼녹스, 혼다 CR-V, 토요타 RAV4까지 총 4대였으며 모두 긴급 제동 시스템이 탑재된 모델이다.
AAA는 먼저 교차로에서 직진하는 시험 차량이 교차로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동하는 상대 차량을 감지할 수 있는지, 교차로에서 좌회전하는 시험 차량이 맞은편에서 오는 상대 차량을 감지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이 두 가지 사고 유형은 미국에서 높은 빈도로 발생하며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39.2%를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 위험도 높다. 그만큼 중요성이 강조되는 항목이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20회 테스트 중 모든 차량이 충돌 사고를 냈다. 운전자에게 위험 상황을 경고하지 않았으며 약간의 감속조차 없었다.
64km/h 긴급제동 테스트
20회 중 6회만 정상 작동
전방 차량을 인지해 감속하는 긴급 제동 테스트는 IIHS의 기준보다 높은 30mph(약 48km/h)와 40mph(약 64km/h)로 상향 조정했다. 30mph에서는 20회 중 17회 테스트에서 긴급 제동 기능이 정상 작동했다. 추돌 사고가 발생한 3회의 경우 충격 속도는 8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40mph 테스트에서는 사고율이 급증했다. 20회 테스트 중 단 6회만 사고를 피했으며 추돌 시 충격 속도 감소율도 62%로 눈에 띄게 줄었다. 쉐보레 이쿼녹스는 전방 차량을 감지하지 못한 채 주행 속도를 유지하며 그대로 밀고 나갔고 혼다 CR-V는 정상적으로 제동하던 중 갑자기 제동이 풀리며 전방 차량을 추돌했다.
사실상 기술 발전 없어
보다 까다로운 기준 필요
AAA 엔지니어링 담당 그렉 브래넌(Greg Brannon)은 “긴급 제동 시스템은 제한된 상횡에서만 사고를 방지한다. 테스트 기관이 진행하는 시험 방식 외 기준에서는 전혀 발전이 없었다”며 비판했다. 또한 “제조사는 운전자에게 보다 안전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IIHS는 기존 25mph에서 진행하던 긴급 제동 테스트를 최고 45mph(약 72km/h)까지 상향할 방침이다. 속도별 긴급 제동 시스템의 작동 여부 세분화와 함께 더욱 까다로운 평가 기준도 준비 중이다. 최고 45mph까지 속도를 높인 이유는 미국에서 발생한 후방 추돌 사고의 43%, 치명적 부상 가능성이 있는 후방 추돌 사고의 12%가 이 속도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험 기관 테스트만 통과할 수 있도록 준비해온 자동차 제조사들은 신설될 긴급 제동 테스트에서 당분간 낙제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