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마니아라면 꼭 보고 와야 할 영화가 개봉했다. 포드의 르망 레이싱 출전기를 담아낸 ‘포드 v 페라리’가 주인공이다. 사실 자동차 영화가 나왔다고 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먼저 보는 스타일인지라 “뻔한 스토리일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이번 영화도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대부분의 레이싱 영화들은 진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드 v 페라리는 단순한 레이싱 이야기뿐만 아닌 두 남자의 스토리, 포드 GT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레이싱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왜 레이싱을 하게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많은 의미가 담긴 영화였다. 오랜만에 역사플러스를 부활시켜 오늘은 ‘포드 v 페라리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박준영 기자

사실 이 영화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요즘 자동차 영화랍시고 개봉하는 영화들 치고 제대로 된 스토리를 가진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자동차 영화들이 ‘달리고 서고 부수다 끝나버리는’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가 되어버리는 실정이다 보니 진정한 자동차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순수한 장면들은 보기 힘들어진지 오래다.

기름을 묻혀가며 자동차를 튜닝하고 레이싱 대회에 나가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겪게 되는 예전의 분노의 질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때문에 포드 v 페라리 역시 “열심히 레이싱 장면을 보여주다 끝나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기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순수한 재미를 잃어버린 자동차 영화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분노의 질주’다. 1편과 2편에서 볼 수 있었던 폴 워커와 빈 디젤의 순수한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그들의 카라이프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점점 영화의 스케일이 커지더니 최근 개봉하는 시리즈들은 이제는 더 이상 ‘자동차 영화’가 아닌 ‘할리우드 액션 영화’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자동차는 주인공이 아닌 부수적인 존재일 뿐이다.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부서지며 브라질의 은행 금고를 터는 등 스케일이 큰 액션 영화로 변한 요즘 분노의 질주에선 더 이상 1편과 2편에서 볼 수 있었던 순수하게 자동차를 튜닝하고 즐기는 모습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 주인공 ‘폴 워커’의 부재도 아쉬움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자동차 영화 보단 할리우드 액션 영화로 변질된 것이 크다.

예전 분노의 질주 영화를 보았을 때 느낄 수 있었던 “누구나 한 번쯤은 저렇게 레이싱을 해보고 싶을 수도”라는 마음을 포드 v 페라리를 보고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캔 마일스와 캐롤 쉘비는 자동차에 미쳐있었고 그들의 순수함과 열정은 영화 곳곳에서 묻어나기 때문에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봐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단순한 레이싱 영화가 아닌 하나의 스토리를 담아내었기에 ‘포드 v 페라리’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는 어디까지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해도 재미를 위하여 픽션을 추가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포드 v 페라리 영화에 나왔던 장면들 중 실제와는 달랐던 이야기들을 짚어보자. 영화를 보고 왔다면 흥미로운 내용일 수 있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이 바로 포드 마케팅 이사 ‘레오 비브’다. 그는 시종일관 캔 마일스를 싫어하고 어떻게 하면 그를 르망 레이싱 경기 출전 명단에서 배제시킬지만 연구하고 있는 악역으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실존 인물인 레오 비브는 캔 마일스를 싫어하는 인물이 아니었으며 그의 생전 인터뷰 내용을 보면 “나는 레이싱팀의 책임자로 일하며 쉘비가 추천한 캔 마일스를 승인했다. 그는 무모한 선수였지만 뛰어난 레이싱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기록도 남아있다.

(실존 인물인 레오 비브 이사. 영화 속 주인공과 너무 닮았다)
또한 그는 뛰어난 사업가로 알려져 있었으며 영화 속 이미지는 재미를 위해 연출된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캐롤 쉘비는 레오 비브와 캔 마일스의 사이를 묻는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을 하지 않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는 건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또한 르망 레이싱의 피니시 장면에서 캔 마일스의 차량에 의도적으로 반칙을 행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포드 GT의 개발 과정 속에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개발 내용들을 수시로 점검했으며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기록을 보면 그의 성격이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예측해 볼 순 있겠다.

영화 속 눈여겨봐야 할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포드가 페라리를 인수하러 이태리로 가는 장면이다. 영화 속 장면엔 포드가 페라리를 인수하려고 했으나 결렬이 되었고 페라리는 경쟁사인 피아트에 높은 값으로 팔수 있도록 포드를 이용한 것처럼 나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꾸준히 재정난을 겪어오던 페라리는 이미 1959년부터 피아트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었다. 레이싱 경주에만 몰두하던 엔초는 페라리의 모든 자금을 레이싱에만 쏟아부었고 그 결과 회사의 자금난이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1965년 피아트는 결국 페라리의 일부 지분을 인수하게 된다. 모든 지분이 피아트에게 넘어가는 영화 속 장면 역시 사실이 아니다.

또한 영화 속 포드가 페라리에게 레이싱 팀의 독립적인 관리 권한을 주지 않자 매우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며 협상이 결렬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엔초 페라리의 성격과 철학을 잘 드러내준 장면이었다. 그는 평소 유명한 독설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여러 가지 일화들이 존재한다.

경쟁사인 람보르기니 역시 ‘페라리 250’의 품질 문제를 지적하러 페라리를 방문했다가 “트랙터나 만들라”라며 독설을 듣고 람보르기니를 세운 역사를 생각하면 엔초 페라리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그에게 르망 레이싱에 출전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사형선고와도 같았을 것이다. 이 시절 엔초의 자존심을 긁는 자들은 독설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또한 영화에 나온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실제로 포드가 자신들의 차를 인디애나폴리스 55 경주에 포진시켜 페라리가 아예 출전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린 사건이 존재하기는 한다.

영화 속 엔초 페라리는 포드가 페라리를 인수하게 되면 더 이상 페라리는 르망 레이싱에 참가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독설을 퍼붓는다. 포드를 뚱뚱하다고 조롱하며 헨리 포드 2세는 할아버지가 아닌 2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헨리 포드 2세는 화가 나 르망 레이싱에 출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역시 영화의 재미를 위해 각색된 것이다. 협상의 결렬로 인해 포드 GT를 만든 것은 맞지만 포드는 페라리를 인수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으나 이를 그대로 날리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페라리가 그렇게 자존심을 세우는 레이싱으로 짓밟아 주자는 취지로 포드 GT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페라리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는 레이싱 경기가 바로 르망 24시였다. 차량의 우수한 성능도 입증하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어마어마한 효과를 가질 수 있으며 페라리가 독점하던 모터스포츠 계에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포드 GT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5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써 시행이 되었다. 영화 속에선 캐롤 쉘비가 사령탑을 맡아 시작하지만 실제론 존 와이어가 맡고 있었고 실적이 좋지 않아 중도에 캐롤 쉘비로 담당자가 바뀐 것이다. 포드 GT는 개발을 거치며 여러 변화가 있었고 영화 속 캔 마일스가 타고 르망 대회에서 우승한 차량은 ‘MK2 버전’이다. 65년과 65년 ‘MK1’을 가지고 르망에 도전했으나 이는 처절한 실패로 끝났고 쉘비와 캔 마일스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MK2’로 66년도 우승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캔 마일스가 1965년 데이토나 레이스에서 승리하는 장면과 함께 이 레이스에서 승리하면 르망에 출전을 보장하겠다는 것 역시 영화 속의 픽션이었다. 실제로 캔 마일스는 별다른 탈이 없이 르망 레이스에 출전이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가장 논란이 되고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것은 레이싱의 마지막에 캔 마일스가 속도를 줄여 세 차량이 나란히 들어온 장면이었다. 영화 속에선 포드 차량 3대가 나란히 질주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보고 싶다는 헨리 포드 2세의 요청에 레오 비브가 이를 지시한 것으로 나와있는데 실제로 왜 이렇게 한 것인지를 두곤 아직도 논란이 많다.

3대의 차량이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은 분명히 상징적인 일이다. 이런 기념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바로 ‘포토 피니시’라 부르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캔 마일스가 우승을 어이없게 뺏긴 것은 사실이다.

캔 마일스는 영화에서 나오던 것처럼 대회 종료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마지막 피트스탑을 하게 되고 캐롤 쉘비에게 ‘포토 피니시’를 제안받은 상황을 전해 듣게 된다. 실제로 캔 마일스는 이에 당연히 분개했고 영화 속에선 쉘비가 “너의 선택대로 하면 된다”라고 했지만 이는 영화적인 요소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마일스는 이를 거절하게 되면 더 이상 포드레이싱 팀의 일원으로 함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를 승낙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캔 마일스였기 때문에 우승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캔 마일스도 이를 승낙한 것일 것이다.

(결국 1등을 차지한 브루스 맥라렌의 2번 차량)
하지만 피트를 떠난 캔 마일스는 자신의 차량에 이상이 있음을 직감했고 브레이크 로터가 엉망인 것을 감지한 마일스는 의심을 제기했으나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받고 결국 레이싱을 계속하게 된다. 브루스 맥라렌의 크루들과는 의도적인 차별을 받은 마일스와 맥라렌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었으며 결국 마지막 순간을 8미터 앞서 달리게 된 맥라렌 레이싱팀이 우승을 거머지게 된다.

이 때문에 캔 마일스는 르망 레이싱 최초 미국차 우승자와 데이토나, 세브링 트리플크라운을 한 번에 놓치게 되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캔 마일스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후일에 테스트카 J-CAR를 테스트하던 중 차량 전복 사고로 즉사하게 된다. “암에 걸려 죽기 보다 레이싱 카에서 죽고 싶다”라고 한 그의 말이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영화 속에서 캔 마일스는 정비사로 일생을 지내다 캐롤 쉘비의 제안에 포드 레이싱팀에 입단하는 스토리로 진행이 된다. 실존하는 인물인 캔 마일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의 탱크 지휘관이었다.

그는 레이싱뿐만 아니라 정비사로써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영화 속 장면처럼 과감한 레이싱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 “웨스트 코스트의 스털링 모스”라는 별명을 가지기도 했었다.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포드 경영진들과의 마찰이 모두 사실은 아니었겠지만 개발 과정에 있어 많은 부분을 기여한 캐롤 쉘비와 캔 마일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겪었을 애로사항들이 영화 속에 잘 녹아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과 짙은 여운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부당한 르망 레이싱 결과를 맞이하고 결국 차에서 죽음을 맞이한 캔 마일스의 결말이 더 짙은 여운을 남기게 된다. 약 5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영화로 각색되어 다시금 재조명 받을 수 있는 레이싱 영웅이 바로 캔 마일스다.

영화 속 페라리는 ‘모터스포츠의 황제’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었다. 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페라리 창업자 엔초 페라리는 레이싱에 미쳐있었으며 회사가 재정난이 올 때까지도 레이싱에만 몰두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F1부터 르망 24시간 내구 레이스까지 거의 모든 대회를 압도적으로 휩쓸던 페라리이기 때문에 페라리를 레이싱 경기에서 누른다는 것은 어느 브랜드에게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966년 르망 레이스 당시 페라리 레이싱 팀은 이미 큰 내부 분열이 있었다. 결과로도 모두 DNF를 하였고 선수들의 레이싱 불참 등으로 엔초 페라리는 66년 르망 레이싱 관람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66년 설욕을 겪은 페라리는 이후 67년도에 330P4를 제작하여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에서 원 투쓰리 피니시로 포드에게 설욕전을 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중간에 희미하게 지나가는 한국어 대사 “안녕하세요”를 들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혹시 잘못 들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희미하게 들리던 안녕하세요는 실제로 존재하는 한국어 대사였다.

캐롤 쉘비를 연기한 맷 데이먼은 포드 머스탱의 출시 행사에 연설을 하러 가기 전 한국인 팬에게 사인을 건네며 “안녕하세요”라는 대사를 하게 된다. 이는 쉘비가 개발한 차 코브라의 디자이너가 한국인 존 전(전명준) 이었기 때문에 연출된 장면이라고 한다.

“영화와 실화가 얼마나 달라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다”라고 따지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포드 v 페라리는 자동차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흥미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훌륭한 영화로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태 관람했던 어느 자동차 영화들보다도 여운이 깊게 남았던 좋은 영화였다.

같이 관람한 일행은 평소 레이싱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니 나도 한 번쯤은 달려보고 싶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필자도 ‘포드 GT’와 ‘페라리 330P’ 다이캐스트를 찾아보며 웹사이트를 뒤적거리고 있었으니 이 영화는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자동차 마니아라면 꼭,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한 번쯤 볼만한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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