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비난하는 ‘디스전’
자동차 업계에도 있었다
흥미로운 사례 살펴보니
힙합 장르에는 래퍼들끼리 서로의 약점을 찾아 비난하는 노래를 만들어내는 ‘디스전’이라는 문화가 존재한다. 힙합 팬이 아닌 이상 도대체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가장 재밌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는 말 외에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한때 이러한 ‘디스전’이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말 그대로 경쟁 업체나 차종의 단점을 공격해 도발하는 방식으로 자사 제품을 어필함과 동시에 주목받는 일종의 비교 광고라고 볼 수 있겠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광고 방식이 되었지만 한때 유명했던 비교 광고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았다.
글 이정현 기자
축하하는 척 도발한 BMW
아우디도 곧장 대응했다
지난 2006년 BMW가 공개한 3시리즈(E90) 지면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2006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정 올해의 차로 뽑힌 아우디에 축하 인사를 보냅니다”라는 내용으로 경쟁사를 축하해 주는 훈훈한 광고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래에 붙은 ‘2006 세계 올해의 차 수상자로부터’라는 문구는 광고를 ‘은근히 맥이는’ 분위기로 바꿔놓았다.
이에 아우디는 얼마 지나지 않아 ‘2006년 세계 올해의 자동차를 수상한 BMW에 축하드린다’라는 내용으로 A6 광고를 냈다. 그 아래에는 ‘6년 연속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우승한 아우디로부터’라는 문구를 더해 디스전 구도를 형성했고 두 회사 모두 소비자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재규어의 고수위 멘트
BMW 오너는 패배자?
재규어는 2009년 고성능 세단 XFR을 출시하며 BMW를 도발한 바 있다. ‘최근 M5를 사셨다고요? 걱정 마세요. 신은 여전히 패배자를 사랑한답니다’라는 다소 높은 수위의 문구였다. 당시 XFR은 5.0L V8 슈퍼차저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510마력을 발휘했는데, 경쟁 차종인 M5보다 10마력 높은 수준이었다.
자존심을 제대로 긁힌 BMW는 5시리즈(E60)와 재규어 XJ가 마주 보고 있는 사진을 앞세운 지면 광고로 대응했다. XJ의 보닛을 자세히 보면 앞을 향해야 할 재규어 로고가 뒤로 돌아가 마치 BMW를 보고 도망가는 듯한 모습이다. 겁에 질린 듯 동그란 XJ의 헤드램프와 눈꼬리가 한껏 올라간 느낌의 5시리즈 헤드램프 디자인도 대비된다.
현대차 vs 대우차 디스전
결국 공정위까지 개입했다
한편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도 이러한 비교 광고 사례가 여럿 있다. 현대차는 1990년 첫 쿠페 모델 ‘스쿠프’를 선보이며 ‘이제 스쿠프를 능가하려면 날개를 달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문구를 앞세웠다. 이후 3개월 뒤 대우차(현 한국GM)는 르망의 고성능 버전 ‘르망 임팩트’를 출시하며 ‘르망이 날개를 달았다‘라는 슬로건으로 스쿠프를 도발했다. 당시 스쿠프의 최고출력은 90마력이었지만 르망 임팩트는 120마력을 낼 수 있었다.
대우차는 1998년에도 현대차를 도발했다. 아반떼의 경쟁 차종인 누비라 2를 출시하며 ‘서울~부산, 누비라 2로 힘차게 왕복할 텐가? 아, 반대(아반떼를 노린 언어유희)로 힘없이 왕복할 텐가?’라는 문구로 눈길을 끌었다. 최고출력 107마력, 공인연비는 16km/L로 아반떼보다 우월한 출력과 연비 갖췄음을 어필하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를 보다 못한 공정거래위원회는 광고가 비방적이라며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국산차 업계의 광고 디스전은 막을 내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