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가격은 4천만 원이 넘는 신형 그랜저는 지난달 국내 자동차 시장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그것도 역대급 수치인 월 1만 대가 넘는 판매가 이루어졌으며 최근 출시한 제네시스 G80은 첫날 계약한 고객들이 2만 명을 넘어섰다. 기본 5천만 원이 넘는 G80을 사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줄을 섰다니 일반적인 서민 입장에선 “우리나라에 정말 부자가 많구나”라고 느낄 수밖에 없겠다.
매번 경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국산차뿐만 아니라 비싼 수입차 판매량도 해가 지날수록 점점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엔 정말 부자가 많아서 고급차들이 이렇게 잘 팔리는 것일까. 오늘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는 ‘그랜저와 제네시스가 유독 잘 팔리는 이유’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박준영 기자
월 1만 6,600대 판매
경기 불황을 모르는 그랜저
현대 신형 그랜저는 정말로 ‘역대급 판매 기록’을 세웠다. 지난 3월 국내에서 한 달 동안 판매된 그랜저는 1만 3,568대. 여기에 3,032대 판매된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더하면 무려 1만 6,600대가 판매되었다. 한 달 만에 단일 차종을 이 정도로 팔았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 요즘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되는 수치라 이는 더욱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역대 그랜저 판매량을 살펴보면 2016년 12월 1만 7,247대를 판매한 이후 약 3년 만에 최다 판매를 기록하였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로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이 정도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현대기아차 역대 최고 기록
제네시스 신형 G80
그랜저의 호황에 이어 최근 출시된 3세대 제네시스 G80은 첫날부터 2만 명이 넘는 계약자가 몰리며 현대기아차 역사상 ‘최단기간 최대 계약건’을 달성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대중적인 자동차가 아닌 기본 5천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 세단이 이렇게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 경기 침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올해 초 출시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 역시 현재 기본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많은 계약이 이루어져 현대차는 물량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랜저는 빠른 출고를 위해 생산량을 늘렸으며 기존 쏘나타와 1:1 비율로 생산되던 량을 2:1 수준으로 바꾸어 그랜저의 빠른 출고를 이어가고 있다.
이전보다 비싸졌다고 불평
하지만 잘 팔리는 신차들
현대기아차는 신차를 출시할 때마다 가격을 조금씩 인상해 왔는데 최근엔 그 가격 인상폭이 조금 더 커졌다. 티가 안 나게 옵션 구성으로 상위 트림으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차가 있는가 하면 어떤 차는 이전 모델보다 몇백만 원 정도 인상이 되어 “신차 구매가 부담스러워질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불만들을 비웃듯이 최근 출시하는 현대기아차는 매번 역대급 판매 대수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이다. 기아 신형 쏘렌토는 구형보다 비싸졌다는 평과 함께 하이브리드 인증 논란까지 벌어졌으나 별문제 없이 대기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최고 사양은 5천만 원에 가까운 대형 SUV 현대 팰리세이드 역시 없어서 못 사는 수준이라고 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1.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으로
고급차를 사기 좋은 시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랜저와 제네시스 같은 비싼 자동차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이유가 존재했다. 최근 자동차 판매량이 급상승하면서 그랜저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 많은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 때문이다.
경기 불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에서 내놓은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 덕분에 올해 6월까지 출고가 이루어지는 차량들은 개별소비세 인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퍼센트율로 적용되기 때문에 3천만 원 이상 고가의 자동차를 구매할수록 많은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그랜저와 그 이상의 고급차들을 사기 좋은 시기인 것이다.
현재 그랜저를 구매하게 될 시 개별소비세 혜택을 적용받아 최대 143만 원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어 실구매자들이라면 신차 구매에 혹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랜저보다 더 비싼 차량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어떻게든 6월 안으로 출고를 받으려는 소비자들이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제조사들 역시 인기가 많은 차종은 생산대수를 조정하는 등 최대한 고객들이 원하는 출고일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오는 6월까지 그랜저와 제네시스의 출고량은 계속해서 상위권을 유지할 전망이다.
2. 그랜저, 제네시스는
법인 출고 비율이 매우 높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개인 구매 고객들보다 법인 출고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그랜저와 제네시스는 국내에서 법인 차로 꾸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많이 팔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제네시스 G80은 완전한 신형 모델이 출시되었기 때문에 많은 회사에서 이차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나마 제네시스보다는 개인 출고 비율이 높다는 그랜저 역시 법인차로 많이 활용되기 때문에 매월 1만 대에 가까운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 명의 차량이 아닌 사업자 법인차량으로 이용 시 비용처리가 가능하다는 사회적 제도 덕분에 고급차 수요는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3. 요즘은 신차를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생겼다
세 번째 이유는 요즘은 신차를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자동차를 현금 일시불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예산이나 재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할부와 제조사의 금융제도를 이용하여 신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카푸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본인이 살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차를 무리해서 할부로 구매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연봉 3천만 원을 받는 직장인, 또는 신용 불량자까지도 수입차를 탈 수 있다”라는 인터넷 광고에 혹해 무리하여 자동차 할부 제도를 이용해 비싼 차를 타지만 대부분 차를 유지할 능력이 되지 않아 오래가지 않고 차를 되파는 경우들이 많다.
물론 그들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그에 대한 책임 역시 본인이 지는 것이 맞다. 어쨌든 결론은 꼭 신차를 구매하는 방법이 현금 일시불만은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할부와 금융상품을 이용하여 그랜저급 또는 그 이상의 고급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들은 “젊을 때 한번 좋은 차 타보자”라며 비싼 자동차를 구매한다.
아반떼를 구매할 돈으로
무리해서 그랜저를 살 수 있을까?
말이 나온 김에 카푸어를 자처해서 한번 단순 계산을 실행해 보았다. 만약 사회 초년생이 아반떼를 구매하기 위해 모아놓은 돈 2,500만 원 정도면 신형 아반떼의 상위 등급인 인스퍼레이션을 구매할 수 있다. 이 돈을 이용해서 그랜저를 구매하게 되면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게 될까.
2,500만 원을 선납금으로 지불한 뒤 36개월 할부로 그랜저 2.5 가솔린을 구매하게 되면 발생하게 되는 비용은 다음과 같았다. 신차를 구매할 때 적용받을 수 있는 낮은 금리에 속하는 2.9%를 적용했다. 먼저 그랜저 가솔린 2.5의 기본 트림인 프리미엄은 월 납입금이 20만 원 수준이며 최상위 트림인 캘리그래피의 월 납입금은 두 배인 44만 원 수준이었다.
아반떼를 살 돈으로 갑자기 그랜저를 산다니 너무 극단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아반떼를 살 2,500만 원을 지불하면 월 20만 원씩 3년을 내고 그랜저 기본형을 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겉으로 보기엔 저렴해 보이는 월 납입금 때문에 충분히 더 좋은 차에 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쏘나타를 사려다 조금 더 무리해서 그랜저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다. 기왕 새 차를 사는 김에 할부 제도를 이용하면 그랜저를 살 수 있으니 소비자들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수입차는 무이자에 가까운 할부 제도를 제시하기도 하며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등 다양한 구매 방법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한다.
3. 실제로 우리 주변에
정말 부자들이 많아졌다
마지막 이유는 정말 우리나라에 잘 사는 소위 말하는 ‘부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소득의 양극화가 더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인 서민층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투 중인 사람들이라면 여전히 그랜저급 자동차를 구매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자동차 소비 자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꾸준한 생활을 이어온 중산층들은 자동차 소비에 큰 거부감이 없어진 편이다. 여기에 본인에게 맞는 적절한 금융상품을 이용하면 능력보다 조금 더 무리를 해서 좋은 차를 구매할 수 있으니 쏘나타보다는 그랜저급 이상의 차를 구매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경차를 사려던 사람들은 준중형 세단으로, 중형 세단을 사려던 사람들은 그랜저급으로, 그렇게 세그먼트를 넘나들게 된다. 오토포스트 비하인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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