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카는 말 그대로 꿈의 자동차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속에 드림카 한대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드림카의 범위는 제한이 없는데 슈퍼카는 물론이고 세단, SUV 등 자신이 갖고 싶은 차라면 그 무엇이든지 드림카가 될 수 있다.
시간을 되돌려 20~3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에는 국내에 수입차가 거의 없었던 데다 인터넷도 많이 발달되지 않아 수입차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국산차를 드림카로 꼽았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에서는 20~30년 전 아빠들이 갖고 싶었던 그 시절 국산 드림카에 대해 한걸음 더 들어가 보자.
글 이진웅 기자
승차감이 일품
현대 다이너스티
현대 다이너스티는 1996년, 뉴 그랜저의 고급화 모델로 출시한 플래그십 세단이다. 뉴 그랜저의 차체에 보닛, 라디에이터 그릴, 테일램프를 바꿨다.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 봐도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엔진은 V6 2.5리터, 3.0리터, 3.5리터 3가지가 있었다. 이후 3.5리터 모델을 바탕으로 뒷좌석 길이를 150mm 늘린 롱휠베이스형 리무진이 추가되었다가 1999년 에쿠스 출시로 인해 3.5리터 라인업과 리무진이 단종되었다.
LPG를 제외한 전 라인업에 전자제어식 에어 서스펜션이 들어갔으며, 소프트하게 세팅되어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승차감을 선사했다. 이 때문에 쇼퍼 드리븐으로 상당히 인기가 많았다.
옵션으로는 AV 시스템, 글라스 안테나, 우드 기어, 슈퍼비전 클러스터, 후방 주차 보조 센서 등이 탑재되었다. 다이너스티는 그랜저 TG가 출시된 이후인 2005년 7월까지 계속 생산되었다 단종되었으며, 현재 다이너스티의 포지션은 제네시스 G80이 이어받았다.
주행성능이 우수했던
대우 아카디아
1980년대, 대우자동차는 로얄 시리즈를 통해 크게 흥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1986년 그랜저 출시 이후 상황이 역전되었으며, 그랜저에 대적하기 위해 출시한 임페리얼도 초라한 성적으로 단종되었다. 이후 브로엄 3.0이 플래그십을 맡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느낀 대우자동차는 1994년, 혼다 레전드 2세대를 들여와 아카디아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대우 로고와 아카디아라는 이름만 빼면 사실상 수입차와 다름없었으며, 보수적이었던 그랜저와 달리 세련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휠베이스가 무려 2,910mm에 달해 뒷좌석 공간이 상당히 넓었다. 그랜저보다 전장은 30mm 짧았지만 휠베이스는 무려 165mm 길다.
아카디아는 당시 경쟁 대형 세단보다 우수한 성능으로 호평받았다. 220마력을 발휘하는 3.2리터 엔진을 탑재했으며, 전륜임에도 불구하고 엔진을 세로로 배치했다. 게다가 엔진 위치가 전륜 바로 뒤에 위치했다. 엔진룸에는 스트럿바를 장착했으며, 4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을 장착해 안정성이 뛰어났다. 결정적으로 공차중량이 1,580kg에 불과해 중형차 수준으로 가벼웠다.
시대를 뛰어넘는 차로 평가받았지만 가격이 매우 비싼 점이 단점이었다. 출시 당시 무려 4,230만 원이었다. 참고로 중형차인 대우 프린스 풀옵션 가격이 1,500만 원이었다. 현재도 4,230만 원이면 그랜저 상위모델인 캘리그래피 트림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다. 1998년 대우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면서 체어맨을 얻자 남은 재고를 1,000~2,000만 원가량 할인 판매하고 1999년 최종 단종되었다.
출시 당시 가장 큰 국산차
기아자동차 엔터프라이즈
앞서 언급한 현대 다이너스티에 대항하기 위해 마쓰다 센티아 2세대 모델을 바탕으로 국내 취향에 맞게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후드 탑 엠블럼, 범퍼들을 좀 더 웅장하고 권위적인 스타일로 다듬어 1997년 출시했다. 전륜구동이었던 다이너스티와 아카디아와 달리 쌍용 체어맨과 함께 후륜구동을 채택했다.
출시 당시 국내에서 가장 큰 차였다. 국산차 최초로 전장이 5미터를 넘었으며, 엔진은 V6 2.5리터, 3.0리터 3.6리터 3종이 존재했다. 3.6리터 엔진은 국내에서 가장 큰 배기량을 가진 엔진이었다.
그랜저 XG와 마찬가지로 주로 스포츠카에 존재하는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하여 멋을 부여했으며, 국내 최초로 뒷좌석 안마 기능이 탑재되었다. 이외에 AV 시스템에는 TV가 포함되었으며, 조수석 워크인, 뒷좌석 열선시트, 전후방 센서 등 다양한 옵션을 갖췄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B필러를 늘린 리무진 모델이 6대 정도 생산 판매했다고 한다. 국산차 최대의 크기와 최고의 옵션을 갖춰 주목받았지만 1997년 발생한 IMF로 인해 기아그룹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이미지가 중요했던 대형 세단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런 악재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다가 2002년 오피러스에 자리를 넘겨줬고 현재는 K9이 엔터프라이즈의 뒤를 잇고 있다.
전 세계가 인정한 국산 스포츠카
현대자동차 티뷰론
현대 티뷰론은 젊은이뿐만 아니라 스포츠카를 즐기고자 하는 중년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티뷰론은 스페인어로 상어를 뜻하는데, 이름에 걸맞은 공격적인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공식 판매 5일 만에 1,700대가 계약되었으며, 당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티뷰론에 대한 해외 반응 역시 긍정적이었다. 미국 JD 파워는 “성능과 품질만이 자동차 회사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데, 현대자동차의 경우 티뷰론이 그 처방전이 될 것이다”라고 호평했으며, 1996년 파리 모터쇼에서는 ‘관람객이 뽑은 최고 디자인’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세계에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린 티뷰론은 1996년 18,600대가 수출되었으며, 밀려있는 수출 물량만 7,000대에 달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티뷰론에는 1.8리터, 2.0리터 두 가지 엔진이 탑재되었다. 이외에도 스포츠카 다운 서스펜션 구현이 필요하다는 고객의 목소리에 응답해, 포르쉐와 공동 개발한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적용해 기존 국산차와는 확연히 다른 주행 안정성 및 H&H 성능을 확보했다.
1999년에는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티뷰론 터뷸런스가 출시되었다. 외관이 상당 부분 바뀌었으며, 1.8 기본형, 2.0 타입-S, 2.0 타입-R로 세분화하여 고객들의 선택 폭을 넓혔다. 타입-R은 레이스 사양의 엔진 튜닝, 알루미늄 휠, 레이싱 타이어 등 다양한 옵션을 추가했다. 티뷰론은 WRC에 참가해 놀라운 성과를 얻어 세계에 현대자동차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티뷰론은 2001년까지 생산되고 투스카니에 자리를 몰려줬다.
영국 태생의 로드스터
기아자동차 엘란
세피아의 개발 이후 국내 시장에 스포츠카를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기아자동차는 당시 경영난으로 인해 자금 사정이 좋지 못하던 영국의 로터스로부터 엘란의 생산라인과 설계를 인수해 1996년 국내에 출시했다.
엘란에는 기아 세피아와 크레도스의 1.8리터 엔진을 개량해 탑재했으며, 당시 130마력이었던 엔진을 151마력으로 끌어오렸다. 변속기는 세피아에 탑재된 것을 기반으로 한 5단 수동변속기만 존재했다. 이외에도 외관과 내장, 하체 등 많은 부분이 로터스 엘란과 다른 부분이 많다.
당시 스쿠프나 티뷰론 등 국내에 스포츠카가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2인승 로드스터로 나온 엘란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자동차가 되었다. 지붕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컨버터블이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드림카로 손꼽혔다.
엘란은 모든 생산과정을 수제로 진행해 원가가 3천만 원 이상으로 매우 비싼데 기아자동차는 이를 2,750만 원에 판매했다. 부가세와 특별소비세(현재 개별소비세) 등을 합하면 4천만 원에 달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 대당 천만 원 넘게 손해 보면서 판매한 셈이다. 게다가 출시 1년 만에 IMF가 발생하는 바람에 수요가 많이 줄어들었고, 단종까지 1,055대 생산되었다고 한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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