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행어처럼 자주 들리던 “쏘나타 사려다 그랜저 샀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형 세단인 쏘나타를 사러 갔다가 그랜저 하위 트림과의 가격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것을 보고 결국 그랜저를 구매하는 고객들이 많아서 나오게 된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은 한체급을 더 뛰어넘어서 “아반떼를 사려 했는데 그랜저를 사버렸다”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있다. 그랜저와 아반떼 사이에는 쏘나타가 있으며, 두 차의 가격 차이는 천만 원 수준인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현실적으로 아반떼를 사려던 사람이 그랜저를 살 수 있을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현대 아반떼와 그랜저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박준영 기자
최소 2,500만 원은
있어야 쏘나타를 살 수 있다
국민차로 대변되는 쏘나타와 중산층에겐 성공의 상징과도 같은 그랜저, 두 자동차는 모두 현대자동차에서 판매하고 있는 세단이다. 금전적인 여유가 충분한 부유층에게 두 자동차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평범한 직장인들에겐 쏘나타 마저도 쉽게 구매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부딪힐 때가 많다.
워낙 비싼 차가 많이 팔리는 요즘 시대이다 보니 쏘나타는 비싼 차에 속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이차를 새 차로 사려면 최소 2,500만 원은 준비해야 무리 없이 기본 사양을 구매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쏘나타의 중간등급 정도를 구매하려면 3천만 원은 거뜬히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이 정도 돈을 지불하기란 사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는 쏘나타보다 더 비싼 그랜저다. 기본 가격이 3,212만 원부터 시작하며 최고 사양의 실구매가격은 5천만 원에 가까운 그랜저가 월 1만 대 이상 판매되고 있다니 “이제 정말 대한민국 사람들도 평균 소득이 높아져서 부자가 많아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쏘나타를 살바에 조금 더 돈을 지불해서 그랜저를 사는 게 낫다”라는 소리도 쉽게 들을 수 있으며 쏘나타를 보러 현대자동차 매장에 방문하면 카마스터가 그랜저 구입을 권유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쏘나타의 중간등급 이상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은 몇백만 원을 추가하면 그랜저 기본 사양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혹할 수 있다.
쏘나타가 아닌
아반떼를 사려다
그랜저를 산다?
쏘나타 중간급 이상은 그랜저의 최하위 트림과 가격 격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으니 그랜저를 구매한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요즘은 “아반떼를 사려다 결국 그랜저를 샀다”라는 이야기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반떼를 구매하려 전시장에 방문했다가 그랜저를 계약한 모 유튜버의 사연은 화제가 되기도 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거듭하며 같은 일을 겪었다고 사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쏘나타보다 금액적인 갭이 훨씬 커지는 아반떼를 사려다 그랜저를 사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리고 이렇게 그랜저를 구매하려면 원래 아반떼를 사려던 금액에 얼마를 더 지불해야 할까? 돈이 얼마나 더 드는지 확인해 보았다.
아반떼 인스퍼레이션 2,555만 원
그랜저 기본 사양 3,442만 원
사회 초년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반떼는 개별소비세 인하분이 적용되어 자동변속기 기준 1,674만 원부터 시작하며 중간급으로 구매하려면 2천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1.6 가솔린 모던의 최저 실구매가격은 2,029만 원부터 시작하며 모든 옵션을 추가하면 오히려 상위 등급인 인스퍼레이션보다 더 비싸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옵션을 어느 정도 추가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인스퍼레이션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은 구조인 것이다. 최상위 트림인 인스퍼레이션을 선택한다면 차량 가격은 2,392만 원, 세금을 포함한 실구매 가격은 2,555만 원까지 올라가 버린다. 인스퍼레이션 풀옵션은 실구매가격이 2,600만 원을 넘기 때문에 아반떼도 결코 저렴하지 않다.
비교 대상인 그랜저의 최하위 등급은 2.5 가솔린 프리미엄으로 가격은 3,212만 원이다. 세금과 취등록 세를 포함한 실구매가격은 3,400만 원 수준으로 아반떼의 최상위 트림인 인스퍼레이션과 비교해도 거의 천만 원 수준의 큰 차이가 난다.
금액만 놓고 비교해 보자면 누가 봐도 아반떼를 사려던 사람이 그 예산을 가지고 그랜저를 산다는 것은 무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랜저를 계약한 이유, 그랜저를 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금융 상품이 워낙
잘 되어 있다
첫 번째로 그들이 아반떼를 살 예산밖에 없었음에도 그랜저를 구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동차 금융상품이 워낙 잘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용도에 크게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금융 상품을 이용해 신차 할부를 낮은 금리로 진행할 수 있다.
아반떼 상위 등급 인스퍼레이션을 살 돈인 2,600만 원을 선납금으로 지불하고 그랜저 기본 사양을 구매한다면 기타 비용을 포함한 나머지 842만 원 정도를 할부로 지불하면 된다. 36개월 할부 시 월 30만 원 내외의 납입금이 발생하며 만약 60개월로 진행한다면 월 20만 원도 되지 않는 납입금이 발생하기 때문에 크게 부담 없이 아반떼를 살 돈으로 그랜저를 사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만약 아반떼 중간 트림인 모던을 구매할 돈 2천만 원을 선납금으로 지불한다면 할부금은 1,442만 원 정도가 된다. 할부금이 천만 원을 넘어가므로 36개월로 진행할 시 월 40만 원 수준의 납입금이 발생하며 60개월로 진행할 땐 26만 원 정도를 지불하게 된다.
그래도 일정한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이 정도 할부금은 어떻게 마련해서 충분히 지불할 수 있을 수준이기 때문에 아반떼를 사려다가도 그랜저를 사는 사람들이 충분히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아반떼조차도 일시불이 아닌 할부로 사야 할 소비자라면 이 경우엔 그랜저가 가시권에 들어오긴 어렵다.
2. 주변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할부를 진행해서라도 그랜저를 구매하게 되는 현실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변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크다. 보통 신차를 구매할 땐 직장동료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한 번씩 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동차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부터 차를 잘 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사람들조차도 꼭 차를 사기 전엔 주변에 한 번씩 조언을 구한다.
“아반떼를 살 생각이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부분의 동료들은 “조금 더 보태서 쏘나타 사, 나중에 후회 안 한다”,”가격 차이 얼마 없으니 조금 무리해서라도 무조건 한 등급 높게 사는 게 좋다”라며 상위 등급 차량 구매를 부추긴다. 그들이 제시하는 주장은 나름 합리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소비자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 어려워진다. 괜히 주변에 자문을 구했다가 고민만 더 늘어나게 되는 상황이다.
3. 미래를 생각하면
그랜저를 사는 게 좋다는 생각
주변 입김의 연장선으로 계속해서 아반떼를 사느니 더 높은 등급의 차를 구매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제는 소비자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하게 된다. 특히 30대 정도의 남성이라면 이제는 결혼과 미래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하기 때문에”내가 지금 아반떼를 타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들며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이다. 못해도 최소한 쏘나타는 타야 할 거 같은 마음이 점점 굳어지며 기왕 쏘나타를 사려면 조금 더 주고 그랜저를 사는 게 나은 거 같기도 한 욕심도 생기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현실적인 소비자들은 “내 분수에 무슨 그랜저야”라는 생각에 한 등급만 올려서 쏘나타를 사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전시장으로 방문한다.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보니 아반떼에서 쏘나타로 넘어가는 건 그렇게 큰 무리는 아니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하기에도 좋다.
그렇게 쏘나타를 사겠다는 마음다짐을 한 뒤 전시장에 도착하니 아반떼와 쏘나타, 그랜저 세대가 모두 다 전시되어 있다. 그러면 안 볼 수가 없는 게 사람의 심리다. 아반떼에도 한번 앉아보고 쏘나타에도 앉아보고 그러면 확실히 급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실내공간부터 고급감까지 아반떼와 쏘나타는 확실히 급차이가 느껴져 “이 정도면 확실히 쏘나타를 사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근데 옆에서 그랜저가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악마의 유혹이다. 소비자는 “기왕 온 거 그랜저에 한번 앉아만 보자, 사지도 못할 차 어떤지 비교나 해보자”라는 심산으로 그랜저에 앉아본다. 갑자기 기분이 달라진다. 무언가 그랜저를 꼭 사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내비게이션도 옆으로 쭉 펼쳐져 있고 쏘나타와는 한 차원 다른 고급감이 물씬 묻어난다.
쏘나타를 타다가 그랜저에 앉아보니 또 차가 너무 좋은 게 체감이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어차피 조금 더 주고 쏘나타살 거 차라리 그랜저를 사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원래 예산보단 한참 오버되는 선택이지만 이미 그랜저는 나를 푹신하게 감싸고 있다. 옆에 있는 카마스터 역시 “기왕 쏘나타 사실 거면 미래를 생각해서 그랜저를 사시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죠”라며 유혹한다.
그랜저를 구매한다는 자체가 스스로에게 무리라는 걸 머릿속으론 분명 알고 있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다면 이성보단 감성이 앞선 상태이기 때문에 무엇에 홀린 듯 그랜저를 사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반떼 살 돈을 선납금으로 치르고 나니 할부금 부담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이 정도면 중복투자 없이 아주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라는 알 수 없는 만족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수많은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이 아반떼를 사려다 그랜저까지 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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