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배기량 6,000cc 12기통 엔진, 5미터가 넘는 거구. 신차가는 3억 이상. 많은 자동차 매니아들에게 드림카로 불리는 벤틀리의 대형 세단 1세대 플라잉스퍼의 스펙이다. 마이바흐, 롤스로이스와 함께 세계 3대 명차로도 손꼽히는 벤틀리는 기본 가격이 2억 원을 넘으며 최근 단종을 맞이한 플래그십 모델 뮬산은 5억 원이 넘는 가격을 가지고 있어 일반인은 구매할 엄두조차 내기 힘든 자동차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중고차 시장을 살펴보면 연식이 꽤 지난 중고 벤틀리가 2천만 원 대로도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벤틀리뿐만 아니라 다른 수입 명차들 또한 마찬가지로 3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대로 올라온 매물들이 꽤 많은데 이런 차를 중고로 구매해서 타도 문제가 없을까?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중고시장에 등장한 2천만 원짜리 벤틀리를 사면 생기는 일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박준영 기자

마이바흐부터 페라리까지
누구나 드림카를 꿈꾸며 살아간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마음속에 언젠가는 타보고 싶은 드림카를 품고 살아갈 것이다. 드림카는 비단길을 수놓는 듯한 승차감과 고급스러움을 자랑하는 ‘메르세데스 벤츠 마이바흐’가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디자인과 파워풀한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자동차들의 공통점은 기본 가격이 억 단위로 형성되어 있는 고가의 자동차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대중들은 이런 억 단위를 호가하는 자동차들을 살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언젠간 성공하면 하나쯤 사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수많은 드림카들 중에서도 조금 더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차는 벤틀리다. 롤스로이스, 메르세데스 벤츠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 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묵묵히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엔 주력으로 판매하는 모델들의 풀체인지가 이루어져 역대급 디자인과 사양을 갖추었다는 평을 듣고 있기도 하다.

기본 가격이 2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고급차임에도 한국인들의 벤틀리 사랑은 남다르다. 이 작은 나라에서 벤틀리는 매년 수백 대 이상 판매되고 있으며 2015년엔 전 세계 시장을 통틀어 서울이 벤틀리 판매량 세계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프리미엄 자동차로 인식되는 벤츠 S클래스보다 더 고급스럽고 특별하지만 롤스로이스처럼 지나치게 비싸지는 않은 딱 중간 역할을 수행하는 브랜드가 벤틀리였기 때문에 현재도 한국의 부호들에게 많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중고 벤틀리가 2,590만 원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금액이다
하지만 이렇게 인기가 많은 벤틀리도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었다. 차량 가액이 억대에 달하는 모델인 만큼 중고차 시장에서의 감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1년마다 몇천만 원 이상의 감가가 진행되는 건 기본이며 5년이 지나지 않은 상태가 좋은 중고차들도 신차 가격 대비 1억 원 이상 감가가 진행된 차량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10년 정도 지난 구형 모델들은 국산 준대형 차 그랜저를 살 돈 정도로도 구매할 수 있는 가격 수준까지 내려왔다. 지금 당장 중고차 사이트에 들어가서 벤틀리 매물을 찾아보면 3천~4천만 원 대로 가격이 형성된 벤틀리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랜저 살 돈으로 벤틀리를 한 번 사볼까?”라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순간이다.

(사진=Encar)

몇 대의 벤틀리 매물 중 눈에 띄는 차량이 있었으니 2,590만 원에 올라온 2007년 벤틀리 플라잉스퍼 1세대 6.0 이었다. 킬로수가 21만을 넘었지만 여러 가지 정비가 완료된 상태라 그대로 차만 가져가서 타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적혀있다.

차주가 애정을 가지며 소중하게 아끼면서 타온 차량의 상품성이나 가치를 깎아내릴 의도는 전혀 없다. 객관적으로 이런 오래된 수입 명차를 저렴하다고 혹해서 구매하면 어떤 일이 펼쳐지는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1. 연간 자동차세는
779,740원을 내야 한다
예시로 등장한 2007년식 벤틀리 플라잉스퍼 1세대 모델을 구매했다고 가정해보자. 우선 자동차를 구매했으면 자동차세를 지불해야 한다. 자동차세는 연식이 지나면 조금씩 할인이 적용되는데 3년 차에 5% 할인이 적용되며 그 뒤로는 1년이 지날 때마다 5%가 추가 할인된다.

그러다 12년 이상 기간이 지나면 50%로 고정 할인이 적용되어 중고로 구매한 배기량 5,998cc 짜리 벤틀리 플라잉스퍼는 50% 감면을 받아 연간 자동차세 779,740원을 지불해야 한다. 국산 3,000cc 준대형 차와 비슷한 수준의 세금을 지불하면 된다.

2. 자차를 추가하면
보험료만 천만 원 이상 나올 수도
세금을 지불했다면 두 번째는 자동차 보험료다. 연식이 오래되었으며 차량 가액이 비싼 벤틀리인 만큼 자차보험료가 어마 무시한 수준이다. 만약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직장인이 이 차를 구매한다면 자차보험을 추가할 시 보험료만 천만 원 이상이 나올 수도 있다.

자차 보험을 제외하면 200만 원 내외로 부담스럽지 않은 보험료를 지불하면 되지만 혹시라도 차를 타고 다니다가 사고가 나면 벤틀리의 수리비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벤틀리에 자차를 빼는 것은 매우 리스크가 크다. 혹시라도 차가 반파되는 큰 사고가 난다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폐차를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

3. 매월 차를 타면서
들어가는 유지비
자동차 보험 가입까지 마쳤다면 이제는 벤틀리를 타고 다닐 준비가 다 되었다. 구매한 플라잉스퍼는 V12 6,0 엔진을 장착하고 있으며 무게는 무려 2,475kg이나 나가는 헤비급 덩치를 자랑한다. 당연히 고급유를 넣어줘야 하며 연비는 서울 시내에서 주행할 시 리터당 5km를 넘기기 어렵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플라잉스퍼의 연료탱크는 90리터로 2020년 6월 11일 기준 고급 휘발유의 평균 가격인 1,606원을 곱해보면 한 번 기름을 가득 채울 때마다 약 14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 14만 원 정도를 주유하고 평균적으로 450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는 어마 무시한 먹성을 자랑하니 혹시나 데일리카로 이 차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주유소 사장과 친분을 돈독히 쌓을 수 있을 것이다.

4. 벤틀리의 고질병
잔고장이 발생하면 벌어지는 일
기름을 넣고 잘 타고 다니던 내 벤틀리의 어딘가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서스펜션 경고등이 갑자기 점등되고 승차감이 이상해지며 정상적인 주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으로 정비소를 찾으니 에어서스펜션이 고장 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뿔싸.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수입 명차들이 수리비로 가장 골머리를 앓는다는 그 에어 서스펜션이 고장 난 것이다. 재생부품을 사용하면 조금 저렴하게 고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벤틀리는 벤틀리였다. 서스펜션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 고장이 나더라도 수백만 원의 수리비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항상 명심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벤틀리는 의외로 고질병도 몇 가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바로 로어암인데 차량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보니 로어암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주 나간다. 만약 로어암 볼조인트가 같이 운명했다 하는 순간엔 또 몇십에서 몇백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12기통 엔진의 배기 온도 센서도 고질병으로 잘 알려져 있다.

거기에 2열에 적용된 이중 접합유리가 변색되는 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고질병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품 유리로 교체할 시 유리 4개의 가격만 800만 원에 달한다. 이 정도면 더 이상의 언급이 무의미하다. 그나마 플라잉스퍼는 아우디 A8과 호환되는 부품도 많고 재생부품을 쓰면 괜찮다고는 하지만 큰 고장이 한번 생기면 중고차로 지불한 차값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건 예삿일이 될 수 있다.

5. 엔진오일 같은 소모품
교체 비용도 훨씬 비싸다
주기적으로 교환을 해줘야 하는 엔진오일 같은 소모품 교체 비용도 일반 자동차들보다 훨씬 비싸다. 벤틀리 공식 서비스센터를 가면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가격만 공임을 포함해서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래서 보증기간이 끝난 벤틀리들은 대부분 사설업체를 가게 되는데 그래도 엔진 오일과 오일 필터, 에어클리너 필터도 갈고 그러면 3~4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12기통 엔진이기 때문에 엔진 오일도 일반 자동차들 대비 많이 들어간다. 13.5 리터 정도를 넣어줘야 하니 6리터짜리 큰 오일통 두 개를 다 넣어야 하는 수준이다.

부품이 없다면
한 달 이상 정비소에
서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자동차를 구매하는 건 소비자의 몫이다. 사고 싶은 차는 사야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차를 구매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그것을 말리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드림카를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오래된 중고 수입 명차들을 구매하고 싶다면 현실적으로 한 가지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데일리카가 아닌 세컨드카로 구매하라는 것이다. 오래된 수입차들은 그만큼 손이 많이 갈 확률이 크고, 수리에 들어가면 일부 부품들은 재고가 없어서 수리 기간만 해도 적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매일 데일리카로 타고 다니는 차를 한 달 이상 정비를 맡겨놓기는 리스크가 매우 크다.

그래서 막연히 오래된 중고 수입명차들을 저렴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구매했다가는 금방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자동차를 구매하고 싶다면 그 차의 고질병이나 유지 보수 비용에 얼마 정도를 써야 무난하게 차를 탈 수 있을지를 미리 잘 계산해 보고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오늘 예시로 등장한 건 벤틀리이지만 포르쉐나 슈퍼카 브랜드들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10년 이상 지난 중고 페라리는 가끔씩 4~5천만 원대로 거래되기도 하지만 클러치를 한번 교환하는 데만 천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 수준이니 유지비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autopost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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