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재작년 세타 II 엔진의 연이은 화재 사건으로 인해 미국에서 집단 소송에 휘말렸다. 소송은 현대차그룹이 엔진 평생 보증을 약속하면서 작년 10월 막을 내렸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소비자에게도 동일한 보상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세부적인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다.
최근 현대차그룹이 국내 소비자들에 대한 보상안을 발표했다. 내용은 미국에서와 같은 평생 보증으로 총 52만 대가 해당된다. 이로써 평생 보증 대상은 국내 약 52만 대, 미국 약 417만 대로 총 469만 대 정도가 되었다. 오늘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는 현대차그룹의 세타 II 엔진 평생 보증에 숨은 불편한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글 이원섭 인턴
2015년과 2017년
미국 내 연이은 리콜
2011년부터 미국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현대차 화재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화재 사고를 겪은 차량의 공통점은 세타 II GDi 엔진이 장착되었다는 것이었다. 현대차그룹은 화재 사고 조사 과정에서 세타 II GDi 엔진의 결함을 발견하였고 곧바로 리콜에 돌입했다. 2015년 9월에는 차량 약 47만 대를 리콜했으며 2017년 3월 약 119만 대를 추가적으로 리콜했다.
현대차그룹은 “제작 공정에서 크랭크 축 근처의 금속 잔해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아 엔진 오일의 흐름을 막는 현상이 발견되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로 인해 엔진의 냉각에 문제가 생겨 시동이 꺼지거나 심하면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라며 리콜의 이유에 대해 밝혔다.
뿔난 미국 소비자들
집단 소송 제기
그러나 미국 소비자들의 생각은 달랐고 이후 집단소송에 돌입했다. 도로안전교통국(NHTSA)에 접수된 민원은 약 350건에 달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화재 사고의 원인은 금속 잔해가 아닌 엔진 설계의 문제다”라고 반박하며 조기 점화와 커넥팅 로드 베어링의 저항을 문제 삼았다.
엔진 오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조기 점화 및 커넥팅 로드 베어링의 저항이 발생해 실린더 내부에 균열과 마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실린더 내부의 균열과 마모는 엔진 오일의 누유를 일으키고 이것이 화재 발생의 원인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세타 II GDi 엔진에 대한 평생 보증을 약속하면서 작년 10월 소송은 막을 내렸다.
같은 과정 거쳤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국내에서도 세타 II GDi 엔진의 연이은 화재 사고와 소음 발생 등의 사건이 잦았다. 해외와 같은 경우였지만 현대차그룹은 “해외 공장에서 발생한 문제로 국내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라고 일관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이 굉장히 심했고 이는 내수 차별 논란에 불씨를 지핀 계기가 되었다.
논란이 지속되자 현대차그룹은 국내에서도 약 17만 대에 대한 리콜 조치를 시행했다. 2017년 4월이 되어서야 시행된 조치로 미국에서는 이미 2차 리콜이 진행 중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현대차의 늑장 대응과 불성실한 사후 처리 태도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차주 스스로 파악 쉬울 것”
황당한 국토부의 말
논란과 동시에 현대차그룹이 비용 감축을 이유로 이를 은폐 및 축소하려고 했다는 내부 고발이 있었다. 내부고발자는 내부 문건을 내세우며 “정식 결함 조사를 차단하기 위해 해당 차량 만의 예외적인 문제인 것으로 대응하라”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소비자들의 정보가 부족하니 해당 차량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해 엔진 결함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는 것이다.
결국 국토부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내부고발자의 주장이 명확하지 않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국토부는 “엔진에서 경운기처럼 큰 소리가 나고 진동이 있을 것이다”라는 예시를 들며 “차주는 결함이 있는지 스스로 파악하기 쉽다”라고 밝혔다.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는 말이다. 제조사의 책임인 엔진 결함을 소비자들이 직접 확인하라는 소리니 말이다.
엔진 진동 감지센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필요
작년 10월 미국 소비자들과 합의한 현대차그룹은 “국내에도 같은 보상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발표까지 9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국내 세타 II GDi 엔진에 대해서도 평생 보증을 시행하겠다”라고 밝혔다. 평생 보증의 대상이 될 차량은 약 52만 대인 것으로로 알려졌다.
평생 보증의 대상 차량은 서비스센터에서 엔진 진동 감지센서(KSDS)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받아야 한다. 20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다. 소비자들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받으러 서비스센터에 가야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또 가야 한다”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왜 제조사도 아닌 운전자가 스스로 엔진 문제를 인식해야 하냐”라는 비판도 줄을 이었다.
“평생 보증”이라는
말속에 숨은 빈틈
일부 소비자들은 “평생 보증이라는 말에 빈틈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평생 보증이어서 서비스센터를 방문해도 시간이 지나 부품이 없으면 조치를 받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한 소비자는 “10년간 사용한 세탁기가 있는데 버튼이 고장 나서 고치려니 부속이 없어 새 제품을 구입했다”라며 이를 비꼬았다.
일각에서는 “평생 보증이 아니라 전 차량 리콜을 했어야 한다”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평생 보증이어도 서비스센터에서 문제가 없다고 돌려보내면 그만이다”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7년 4월 세타 II 엔진 결함으로 리콜된 약 17만 대의 차량 중 엔진을 교체한 차량은 약 5,100대에 불과하다. 3% 밖에 안 되는 수치다.
GDi만 해당되고
MPI는 해당 사항 없다
세타 II 엔진은 크게 GDi와 MPI로 나뉜다. 두 엔진은 연료 분사의 방식만 다를 뿐 동일한 부품을 공유한다. 실제로 MPI 엔진에서도 소음이 발생하고 실린더 내부에 균열과 마모가 발견되는 등 동일한 문제가 자주 발생했다. 미국 내에서도 결함 신고 건수는 GDi와 MPI에 큰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불만을 표하며 세타 II 엔진 전체에 대한 리콜 및 평생 보증을 원하고 있다. 세타 II MPI 엔진에 대한 불만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다수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리콜과 평생 보증은 GDi만 해당됐다. 일각에서는 MPI 엔진의 문제를 인식하고도 비용을 축소하기 위해 GDi 엔진만 평생 보증에 포함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다”
자동차에는 해당 없다
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국내와 해외에서 각기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먼저 법과 제도에 빈틈이 많다는 것이다. 레몬법과 징벌적 손해배상 모두 해외에 비해 턱없이 약하다. 소비자 중심적인 해외에 비해 유독 우리나라가 제조사 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다. 자동차 산업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만큼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제조사는 더욱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소비자 앞에 나서야 할 것이다. 소비자와 제조사의 관계는 신뢰를 기반으로 다져지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는 제조사는 신뢰를 잃을 것이며 신뢰를 잃은 제조사에게 미래는 없다.
소비자들도 더 똑똑해져야 한다. 미국은 소비자 연맹의 힘이 무척이나 강하다. 정부와 제조사 모두 소비자 중심적인 태도를 가지고 움직이는 이유다. 법과 제도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고 문화는 소비자들이 만들어 나간다. 소비자들이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더 나은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면 제조사가 소비자 중심적 태도를 갖추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결국 정답은 하나다. 법과 제도, 올바른 문화, 제조사의 책임감이 한 데 모여 완벽한 삼각형을 이룰 때 국내 자동차 산업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법과 제도는 정부의 몫이고 책임감은 기업의 몫이다. 이미 고착되어 있는 사회문화를 바꾸는 것은 결국 자발적인 시민들의 움직임으로부터 나온다. 오토포스트 이슈플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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